사복음교회 박경호목사의 헬라어번역성경 마가복음 강해 112절



112.

그분이 배에서 나오시자 곧바로 더러운 영 안에 있는 사람이 무덤들에서 나와 그분을 만났는데, 그는 무덤들 안에 거처를 갖고있었습니다.

[그분이]

예수님이십니다.

[배에서 나오시자]

배는 구원의 방주를 의미합니다.

[곧바로 더러운 영 안에 있는 사람이]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랐는데 수만명 군중 앞에서 제자들이 있는데, 바람이 지나가고 밤새 풍랑이 고생하다가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을 만났습니다. 더러운 영이 들린이 아니고 갖고 있는안에있는 것입니다. 귀신이 장악한 것이죠. 우리는 귀신의 영을 다 가지고 있는데, 그것이 아니라 이것은 귀신의 영이 장악한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님을 소유하지만 성령님 안에라는 것은 성령이 충만하여라는 의미입니다. 누구라도 귀신이 안에 다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귀신의 영이 그를 장악한 상태, 귀신이 사로잡은 상태입니다. 거꾸로 성령님을 갖고 있는데, 엔프뉴마 뭡니까? 성령님이 나에게 충만한 상태이죠. 지금은 귀신이 충만한 상 사람입니다. 결국은 일반적인 사람이 아니라 아주 치료하기 어려운 치료 불가능한 사람입니다.

제자들이 왜 이런 일을 만날까요? 제자들이 산상수훈에서 수많은 말씀을 들을 때 꿈을 키웠겠죠. 나도 예수님처럼 설교하며 수만 명을 인도하겠다. 그런 꿈으로 따라간 자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밤새 고생한 다음에 십자가의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네 하고 믿었는데 세상의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수만 명이 아니라 달랑 두 사람 그것도 귀신 장악한 사람을 만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의 길을 따라갈 때 많은 사람들이 오해합니다. 부흥을 꿈꾸고 번성을 꿈꿉니다. 그러나 모든 번성과 부흥의 꿈은 사실은 일장춘몽에 불과합니다. 실제 모든 사역들은 그게 아닙니다. 지금처럼 아무도 알지 못하고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 더 나아가서 정말로 사역의 밑바닥, 귀신 들린 사람을 상대하는 것입니다. 이게 중환자 사역입니다. 누구든지 미래를 꿈꿀때 번성을 꿈꿉니다. ‘내가 큰 교회를 이루어야지인간의 본성입니다.

 

그러나 막상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내신 이유는 중환자를 만나게 해주십니다. 도저히 답이 없는 사람들..... 왜일까요? 이게 진짜 사역이기 때문입니다. 사역은 다수가 아닙니다. 사역은 한 명입니다. 소수입니다. 사역은 화려한 것이 아닙니다. 제가 20년 동안 사역을 했습니다. 저도 옛날에는 의문이 많았습니다. 저도 꿈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어릴 때 대학교 4학년 때 꿈을 꿨는데 선교의 꿈을 꾸었습니다. 그런 마음도 갖게 되었습니다. 또 꿈속에서도 제 사역이 보였습니다. 그런 꿈이 없을 수가 없습니다. 다 꿈을 꿉니다. 그러나 막상 이루어진 현실은 중환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거기에 올인하게 됩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꿈은 야망이고, 야망이 무너지게 됩니다.

아마 제자들이 지금 따라왔는데 거라사인들의 지역은 정통적인 유대인들의 지방이 아니고 약간 섞인 지방입니다. 헬라 문화가 있는 지역과 이방 문화가 섞인 곳입니다. 아마 제자들이 깜짝 놀랐을 것입니다. 이거 하러 제자의 길을 택했나 그러나 이게 진짜 제자인 것입니다. 제자는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내가 뭘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자라는 것은 내가 이루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하는 일을 따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거야 하면 하는 것이 제자입니다. ‘저거야하면 하는 것이 제자입니다. 재미있게도 예수님의 제자들 중 야고보는 3년 배운 다음에 써먹지도 못하고 바로 순교당합니다. 얼마나 아깝습니까? 베드로는 거꾸로 십자가에 못 박히죠 사도 요한만 오래 살면서 터키권에서 사역을 합니다.

우리가 예측이 안 되는데 우리는 내가 무엇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버리고 예수님이 원하는 대로 가는 것이 제자입니다. “중환자 사역하면 하라하면 되는 것이고. 20년 동안 저도 중환자 사역을 하면서 많은 노하우들이 개발되었고 지금 저의 기초가 된 것입니다. 제가 그때 헬라어를 번역하고 많은 책들 수천 권을 읽고 그렇게 많은 경험을 했습니다. 그 것이 기초가 된 것입니다. 저는 영혼 한 명이 목표였습니다. 여기는 두 명이지만 저는 한 명이 목표였습니다. 한 명을 바꾸어 놓겠다는 마음을 갖고 있는 것이 바른 사역자의 마음입니다. 왜냐면, 사람들을 내가 못 바꿉니다. 왜 한 명이냐? 하면 사역은 남이 아닌 내가 우선입니다. 내가 변화가 안됩니다. 이사람이야 귀신들렸지만 나는 야망덩어리, 음란 덩어리 똑같은 사람이죠. 귀신 들릴 정도로 심하지 않다는 것이지. 정도는 다 가지고 있습니다.

사역자라는 것이 뭐가 다릅니까 귀신이 강하냐? 적느냐 하는 차이지 내가 누구를 사역합니까? 난 내가 나를 사역해야 합니다. 내 안에 있는 귀신이 가만히 있습니까? 이것과 싸우는 것입니다. 나는 나를 구원시키고 한 명 구원시키면 성공한 것입니다. 지구 인구가 75억이면 기독교인이 만약에 1억이 참 기독교인이면 한 명이 한 명을 전도하면 두 명, 2억이 구원 받고 4억이 되고, 8억이 됩니다. 진짜 사역이라는 것은 진짜가 이루어지면 사실은 세계복음화는 거저 먹기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내가 구원받고 남을 구원받으면 두 배씩 되는 것입니다. 그다음 때에는 4배수 그다음엔 8배수 그리고 전 세계가 구원받는 것입니다. 근데 하나님 보시기엔 이렇게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맨날 100만 명 꿈이 있죠. 우리들에게는 100만 명 꿈을 꾸지만 처음 출발은 한 명이었습니다. 이유는 나도 내가 생각하기에 천국 갈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내 안의 귀신 때문에, 내 귀신 때문에 힘들어 했습니다. 남의 귀신은 두 번째이고 내 귀신이 먼저입니다. 내 안의 귀신도 보통 힘이 센 게 아닙니다. 내 안의 귀신도 머리가 두 개 달린 놈인데 나가지도 않고 미치겠는 것입니다. 그래도 내쫓겠다는 꿈을 가지고 축사합니다. 제가 오죽하면 하나님 앞에 열두 명을 구원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게 됩니다. 제가 20년 동안 기도 생활해 보니까, 열두 명이 어마어마하게 큰 수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정말 큰 숫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할 때 밖을 보는 것이 아니라 나를 봐야 합니다. 내 안을 보면 정말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귀신이 잡느냐 못 잡느냐 하는 차이지 귀신에게 사로잡혀서 힘들어합니다. 그럴 때 스스로 귀신 충만한 나를 보면서 나를 때리면서 귀신을 쫓아내려고 노력합니다. 내가 천국 가기 어려운데 누구를 천국으로 인도하겠습니까? 지금 제자들에게 밤새 야욕을 가졌을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들을 훈련시키고 만나게 한 사람은 귀신 들린 두 사람입니다. 이것이 사역이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사역할 때 소수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실제로 수만 명 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처음 몇 사람의 소수가 큰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한 명의 영혼이 작은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 못하면 숫자에 익숙한 사람 숫자만 생각하면 사건에 불과합니다. 숫자가 중요합니까? 내 옆에 있는 사람이 지옥 가는게 안타까운 것이지. 그게 마음 아픈 것입니다. 안 만난 사람이 지옥 가는 것은 모르겠지만, 옆에 있는 사람 지옥 가는 것이 얼마나 마음 아픕니까? 그게 본질이 되어야 합니다. 나중은 필요없어요. 오늘 내 앞에 있는 사람이 천국 가야 합니다. 그런데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의 영이 안 좋으면 마음이 아픈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귀신 더러운 영 안에 있는 사람을 만나게 될 때 제자들이 정신이 번쩍 들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무덤들에서 나와]

무덤들! 원래 두 사람이었죠. 무덤들은 동굴들이죠.

[그분을 만났는데]

두 명이 무덤에서 나온 것입니다. 귀신 들린 사람들이 지금 예수님이 그들을 만난 게 아니고 그들이 예수님을 만났다는 게 중요한 것입니다. ! 이것은 뭐냐 하면, 귀신 들린 사람이 고침받는 방법은 예배에 나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물론 중보자가 있으면 되지만 귀신 들린 사람이 예배에 나오지 않고 예수님이 찾아오시겠지!” 이런 경우는 역사적으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찾아간다고 말씀을 하지만 말은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을 감동시켜 주셔서 예수님께 나오게 한다는 것이지. 오해되어서 하나님 나를 한번 해 보세요. 나 고쳐주세요.” 하고 교회도 안나와! 그건 영원히 지옥갑니다. 이들이 예수님을 만들어 만나러 나온 것입니다.

귀신이 씌였다면서요? 귀신이 씌여도 예수님을 만나려는 마음이 없으면 치료가 되지 않습니다. 제가 어릴 때는 축사가 많았습니다. 왜냐하면, 귀신의 활동이 많았거든요. 함께 모여 축사를 하는데 원칙이 있습니다. 나중에 물어봅니다. 정신이 오락가락 하잖아요. “순종하겠습니까?”라고 물어봅니다. 나중에 축사하다가 목사님 말씀에 따르겠다고 본정신으로 시인하지 않으면 절대 치료가 되지 않습니다. 자기가 자기 안의 귀신을 인정하고 나도 쫓을게요하고 하지 않으면 축사가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내 영도 있고 귀신의 영이 있는데, 내 영은 압니다. 모든 상황을 그런데 자기 영으로 끝까지 거부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귀신 들려서 하는 것처럼 나는 귀신 있었으니까. 나는 안 돼요.” 하면 결국은 그대로 끝나버립니다. 반대로 아무리 귀신이 세게 들려도 자기 영으로 목사님 말씀에 순종하겠습니다. 하는 경우는 치료가 됩니다. 결국은 귀신의 사이즈 문제가 아니라 본인의 영의 결단 문제입니다. 사람들이 자기가 결단을 하지 않고 나는 죄 씻었으니까. 한번 해 보세요. 나는 목사님 말 안 들을게요하면 결국 안 됩니다. 실패합니다. 무조건 실패합니다. 많은 분들이 귀신 탓으로 돌립니다. 그건 귀신 때문 맞습니다. 그러나 본인의 영에 결정되는 것임을 알지 못합니다.

예수님이 오는 얘기를 들을 수도 있고 영의 필링일 수도 있고 예수님께서 도착했고 예수님께 배에서 나오셨습니다. 두 사람이 귀신 들렸지만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 나가는 결단이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귀신 들렸다 할지라도 사람은 결단할 수 있는 것입니다. 거꾸로예요. 아무리 우리가 성령 충만해도 내가 귀신 들리면 죄를 짓습니다. 우리는 너무 핑계를 댑니다. “귀신 때문이야거꾸로 성령님이 도와주시면 그건 핑계입니다. 성령이 충만해 있다가도 죄 짓는 것이 인간입니다.

인간의 영은 방향키를 잡습니다. 배가 있으면 방향키가 있잖아요. 그것은 악령이나 성령이 아니라 키는 인간 개인의 영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중요한 것입니다. 본인의 영에 의해서 모든 것이 좌우됩니다. 현상적으로 귀신이 세서 타락하지만 그러나 그것조차도 본인이 내가 나아야겠다. 내가 회복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예수님께 나오면 그것도 극복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아무리 성령이 충만해도 능력이 아무리 많아도 하나님 이제 나는 따르기 싫어요하면 금세 타락합니다. 우리 인간 개인의 영이 중요합니다.

그것을 말씀이 결정하고 말씀을 평소에 많이 들었던 사람일수록 회복이 쉽습니다 이 사람이 그런 사람일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전혀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을 알고 있다가 귀신 들린 상태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또는 귀신 들렸다 할지라도 예수님을 알 수 있는 것이고요. 우리 사람은 영적인 현상에 대해서 다 누리기 좋아하죠. 사실은 그 모든 상황을 잡는 것은 본인의 개인의 영이기 때문에 축사할 때 어떤 경우라도 목사님 말씀에 순종하겠습니다.”그래서 그러면 손을 모으십시오.” 하고 손을 모으고, 어떤 사람은 불순종합니다. 그러면 치료가 안 됩니다. 귀신 들려서 인간의 영은 이럴 때 하지 말아야지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걸 하지 않는 사람이 많습니다. 결국 지옥 갑니다. 그런데 뿌리치고 싶은 욕망이 일어나지만 그래도 순종하면 놀랍게도 아무리 발작이 많은 귀신도 낫게 됩니다. 지금 이들이 귀신이 충만함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만나러 왔습니다. 어떡합니까?

[그는 무덤들 안에 거처를 갖고있었습니다.]

이쪽 무덤, 저쪽 무덤이 있는데, 무덤 올라 왔다 갔다 하며 사는 것인데 무덤은 동굴입니다. 동굴 가운데 무덤을 쓰는 것이죠. 이게 무엇을 의미합니까? 무덤은 당연히 지옥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무덤이라는 단어가 스올로 나오는데 무덤이라는 단어는 사실은 지옥에 대한 묘사의 단면입니다. 무덤들 즉 지옥 갈 사람을 건져낸다는 것입니다. 사역이 뭐냐? 사역은 그 사람을 교회로 인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역은 내가 뭘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사역은 찬송 몇 장 배우거나 사역이라는 게 사람에게 사역의 꿈을 꾸는 것이 아니라 지옥 갈 사람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것이 사역임을 제자들에게 알려줍니다. 무덤에 사는 사람들은 지금도 삶이 지옥이죠. 하지만 결국은 지옥에 떨어지는 사람들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다 선민의식이 있고 천국 간다고 믿고 있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이 사람들은 지옥 간다고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 무덤에 있는데, 100% 지옥이죠. 누가 봐도 지옥 갈 사람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것이 사역임을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제자들한테......

우리 사역의 목표는 건물이 아닙니다. 건물 짓는 게 아닙니다. 프로그램이 아닙니다. 지옥 갈 사람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것이 사역입니다. 이 목표에 의해서 교회는 움직여야 합니다. 교회는 단순하게 이 땅에 복지가 아닙니다. 어렵니? 도와줄게! 아프니? 고쳐줄게! 이런 게 아닙니다. 사람이 지옥 가는 무덤 속에 있습니다. 지금 놔두면 지옥 갑니다. 놔두면 지옥 가니까 이걸 알고 그를 끌어내는 것 현재 천국으로 끌어내는 것 미래 천국으로 인도하겠다가 아니고 현재 천국으로 이사람 영혼을 끌어내는 것 그것이 사역입니다. 그러므로, 사역은 현실적이고 미래가 아니고 현재입니다. 우린 심판대 앞에 서고 그때 아는 것이 아니고 지금 천국에 있어야 합니다. 미래가 아닙니다. 현재 천국에 있어야 합니다. 나중에 나이 먹어서 예수 믿겠다고 하지만 어림도 없는 이야기입다 지금 무덤에 있는데, 어떻게 천국 갑니까? 지금 나와서 천국에 가야지 미래 천국 가게 됩니다.

우리 영이 하나님께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사역은 미래를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책임져서 빨리 지옥에서 나오게 해서 구원 속에 있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지금 제자들만 따로 모아서 한 명 두 명을 데리고 교육하는 것입니다. “잘 봐라 너희들 내가 지금 귀신 들린 자들을 고쳐주는 거야. 너희들도 그렇게 해야 돼라는 것을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나중에 사도들을 뽑습니다. 사도들은 귀신들에 대한 권세를 줍니다. 예수님께서 사도는 영적인 파워를 주는 것입니다. “잘 봤지 너희들 귀신 들린 사람을 잘 인도해 봐 내가 하는 거 봤지그런 것입니다. 귀신이 우리를 지옥으로 끌고 가기 때문입니다. 귀신이 우리에게 있는 이유 지옥으로 끌고 가기 위해서 우리 안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귀신은 잘 압니다. 뭐를 잘 아느냐? 천국 지옥을 압니다. 꼭 악한 짓만 골라서 합니다.

사도는 귀신들에 대한 권세를 예수님께 받았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렇죠. 왜 그랬을까요? 이런 교육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한 번도 안 받았는데 이런 말씀을 주시겠습니까? 받았으니까. 거라사인의 지방에서 교육을 받은 것이 지금 적용할 때구나 하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됩니다. 우리는 앞으로 귀신 들린 사람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사역은 넓은 들판에서 수만 명의 앞에서 설교하는 것 아닙니다. 사역은 직접 맨투맨으로 한 명을 한 사람을 지옥에서 천국으로 인도하는 것이 사역이기 때문에 사역은 개인적입니다.

우리는 애기 때부터 지금까지 한 곳에서 예배를 드립니다. 담임 목사가 모든 사람을 지도합니다. 왜일까요? 하나님께 권세를 받은 자가 인도해야만 그 사람이 벗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른들은 담임 목사가 가르치고 초등학생은 전도사가 가르칩니다. 뭘 가르치겠습니까? 중고등부는 신학교 3, 4학년이 가르칩니다. 뭘 가르칠까요? 뻔하죠. 기껏해야 4영리 기껏해야 조직 신학, 기껏해야 자기 깨달은 것을 가르치지 않겠습니까? 그들을 천국으로 인도해야 되는데 어린 영혼들이 다 죽어나가는 것입니다. 어린 영혼들이 왜 죽느냐? 영을 고쳐줘야 되는데 그렇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역은 결국 파워 게임입니다. 귀신을 몰아내지 못하면 천국가지 못합니다. 나중에 장로 되면 뭐합니까? 지옥 가는데...... 어두움의 권세 있는 사람은 지옥갑니다. 전부 권세가 지식놀이입니다. 사도들이 많은 지식을 배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어둠의 권세를 깨뜨리는 권세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천국에 인도하는 것입니다. 어둠이 나가면 천국에 갈 수 있으니까. 더 이상 죄를 짓지 않으니까. 그들을 인도하는 것입니다.

우리 사역의 본질에 알아야 하는데 모든 교회마다 담임 목사는 주일날 설교 한번 하고 새벽 기도는 다른 사람에게 인도시키고 수요 예배 때 다른 사람 인도 시키고 어린애들은 교사들이 합니다. 그들이 뭐를 가르칠까요? 나중에 장로가 되어서는 장로네하고 자리 잡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한민국이 망가지는 것입니다. 인터넷 찾아보면 설교들이 쓰레기인데 이런 쓰레기가 없습니다. 성경을 1도 모릅니다. 알량한 지식으로 거대 거창하게 설교하는 척 합니다. 그것이 대한민국 기독교의 폐해입니다. 한 명을 사역해야 되고 무덤까지 관리해야 합니다. 그래서 영혼들이 다 천국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게 우리 베다니가 하는 일들입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왜 내가 만나는 분은 담임 목사가 아니고 전도사님일까? 또 나중에 또 바뀝니다. 또 신학교 신학생 높은 분이 가르치다가 설교가 다릅니다. 어떨 때는 총신에서 가르치다가 매년 가르치는 분들이 바뀌고 새로 옵니다. 그러니까 영적인 진보가 없습니다. 나중에 보면, 또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옛날 해석이 틀렸다고 이야기합니다. 그게 뭡니까? 10년 전이나 100년 전이나 하나님은 변화가 없기 때문에 설교가 같아야 합니다. 옛날 설교들은 버립니다. 그건 뭡니까? 순간적인 감동입니까? 성경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내용이 뭐냐면 성장 과정에서 있는 내용들을 설교하면 안 됩니다.

말씀은 하나님 말씀이기 때문에 진리가 되어야 합니다. 표현은 달라도 내용은 똑같아야 합니다. 나중에 진리화되어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바뀌어야 되는 것이고. 제자들은 알게 될 것입니다. 어떤 일을 해야 될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거창한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죽음 아래에 있는 사람들 무덤에 있는 사람들을 건져내는 것이 우리의 할 일입니다.

마치겠습니다.

thddycjf572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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