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복음교회 박경호목사의 헬라어번역성경 마가복음 강해 102절



102.

땅이 스스로가 열매맺기 때문인데, 처음에는 싹이며, 다음에는 이삭이며, 다음에는 이삭이 충만한 곡식이다.

[땅이 스스로 열매 맺기 때문인데]

예수님의 주장은 이런 것입니다 열매를 맺는 삶,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이 자연스럽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볼 때는 어렵게 느껴지는데 하나님은 그런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만들 때부터, 우리 마음을 만들 때부터 영광 돌리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제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는다는 것은 우리 마음 밭이 옥토가 되면, 누구든지 예수님 말씀이 들어가면 누구든지 구원을 받고 변화가 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회개의 열매라는 것이 새로운 것이 아니고 아주 자연스럽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싹이며]

열매는 아니죠 싹이라는 거죠 돌짝도 싹이 나고 가시 떨기도 싹이 납니다 처음에는...... 열매에 도달하는 과정 가운데 공통되는 사항입니다 싹으로는 열매를 말할 수 없습니다 처음 믿을 때 확신이 오고, 감동이 오고, 출석하고, 이런 것 가지고는 구원을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음은 이삭이며]

드디어 열매가 맺힙니다 돌짝은 이삭이 열리지 않습니다 가시 떨기는 이삭이 맺힙니다 그런데 가시 떨기는 이삭이 제대로 맺혀지지 않습니다 여기서 열매를 이해할 때 희한하게도 사과라든가 배라든가 이쪽으로 갈 줄 알았는데 이삭이 나옵니다 공유로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처음 이해할 때 여기서 열매가 맺힌다고 생각하겠지만 이삭입니다 우리 인간의 입장에서는 사과가 주식은 아닙니다 수박이 주식이 아닙니다 우리 주식은 쌀이 주식입니다 먹는 자가 누구냐? 먹는 것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런 면에서 이삭을 쓴 것입니다 표현할 때 왜 열매는 이런 과일들은 안 먹을 수 있지만 매일 밥을 먹어야 되는 것처럼, 매일 빵을 먹어야 되는 것처럼 쌀이 이삭이 라는 것입니다

[다음에는 이삭의 충만한 곡식이다]

옥토에만 곡식이 납니다 가시 떨기는 곡식이 맺히지 않습니다 곡식은 하나님이 드시는 빵입니다 예수님은 하늘의 하나님께 바쳐진 빵입니다 우리도 하나님께 바쳐지는 빵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먹는 것입니다 기쁘게 우리를 받으시는 것입니다 구약에서 보면 구약의 인물 모세가 자세히 안 나옵니다 과거의 스토리가...... 그리고 하나님께 쓰임 받는 스토리만 나옵니다 아브라함도 옛날 얘기가 나오지 않고 다음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실 때 변화되기 전의 상태에 대해서는 우리를 먹지 못합니다 그리고 변화된 다음부터는 자세하게 묘사됩니다 그리고 다시 또 영이 약해지면 묘사를 안 합니다 왜? 먹기 힘드니까......

우리는 목적이 하나님께 드려지기 위해서 태어난 것입니다 왜 살아야 하는가 부분에 있어서 가치관이 있는데 가치를 이해할 때 쾌락이냐 사랑이냐 그것은 무가치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존재 목적은 하나님을 위해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기쁘게 받아들여지는 사람이 구원을 받는 것이죠

최근에 글을 올리는데 신은 존재하는가? 인간은 왜 존재하는가? 구원이 무엇인가?에서 인간의 존재 목적은 하나님께서 나 때문에 기뻐하신다면 존재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가 존재의 목적이 아니라, ‘내가 어디 가고, 무엇을 하고, 무엇을 얻고가 목적이 아니라 내 존재 목적은 하나님을 향해서 존재하는 데........ 하나님께서 나를 향해서 이런 내용들이 마음에 든다는 것이 존재 목적입니다 세상적인 가치관들은 다 자기중심적입니다 자기 이름을 내고, 자기가 잘되고...... 그러나 우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안 돼도 좋습니다 망해도 좋습니다 죽 쒀도 좋습니다 죽어도 좋습니다 왜 좋으냐? 하나님이나 때문에 기쁨을 누릴 수 있다면 나는 가치가 있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천국에 가기 위하여 천국을 만듭니다 우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현재 이 땅에 사는 동안에 하나님께 가치가 있으면 천국에 갑니다 변화되지 아니하고 천국에 이르는 것은 가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내가 곡식이 되어야 되고 쌀이 돼야 됩니다 그래서 빵이 되어야 되는데 성막 모형에서 진설병은 우리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빛입니다 어디를 비춥니까? 등잔대를 비춥니다 성령님의 감동을 받아 빛이 되어야 하고 예수님처럼 빵이 되어야 됩니다 이것이 성막의 구원입니다

구원이라는 것은 내가 의외의 빛을 타오르는 등불처럼 빛이 되어야 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빵을 드려야 됩니다 그래서 이것이 존재 목적입니다 세상에 대해서는 빛을 발하고 하나님께 대해서는 빵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등잔대와 떡상의 의미입니다 빛을 비추는 것은 계명 에 순종하고 산상수훈을 지키는 것입니다 성령의 음성에 순종하여서 아브라함이 성령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이삭을 바쳐라이제까지 과정들은 평범한 스토리 였습니다 그런데 뭐가 어렵습니까? 마지막 순종은 정말 어려운 것입니다 이것이 빵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당하는 고난의 표현입니다 자기 아들 죽이는 것이 고난이죠 요 코스가 어려운 것입니다

남들에게 빛을 비추는 것 쉽습니다 그러나 뭐가 안 됩니까? 하나님 앞에 행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내가 죽어야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십자가를 감당해야만 하나님이 우리를 받으시는 것입니다 우리도 십자가가 목적입니다 우리가 왜 사느냐? 우리는 십자가를 지기 위해서 삽니다 그때 우리는 당황합니다 빛은 이해가 됩니다 죄를 짓지 않아야 된다 거룩해야 된다는 것인데 마지막에 가면 어렵습니다 내가 고난 당해야 하다니하고 그때부터 영적 위기를 느끼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룟 유다가 배반한 것입니다

막판에 나는 변화가 되었는데 이제 나한테 또 다른 걸 요구하십니다 왜냐하면 땅이 왜 존재 합니까? 땅은 곡식을 위해 존재합니다 내가 잘 사는가? 못 사는가?’ 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나의 이름이 날리는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날 위해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날 위해 존재한다면 내가 우상이 됩니다 날 위해서 형통을 구하고, 번성을 구하고, 날 위해서 쾌락을 구하고, 나 때문에 음란해지는 것이고..... 내가 날 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위한다면 이것이 목적일 때 나의 존재의 목적이 이뤄지는 것이고 그것이 구원입니다

거듭남이 구원이 아닙니다 성령 세례가 구원이 아닙니다 내가 아는 것을 체험하는 것, 음성 듣는 것이 구원이 아닙니다 구원은 하나님 앞에 대해서 기쁨을 드리는 존재로 변화되는 데 나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는 것입니다 곡식은 먹히는 것입니다 11사도가 순교 당했습니다 어릴 때 이런 얘기를 읽으면서 신앙의 결과가 무엇인가 회의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신앙의 목적이 무엇인가? ‘주님을 따라가다가 모든 걸 바쳤는데 결국은 죽는건가?’ 얼마나 회의감이 들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이 맞는 것이었습니다 왜 맞는거냐? 하나님께서 그것을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내용들 그 원함에 대해서 내가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죠 우리의 성공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나를 먹는 것, 아브라함에게 자식을 바쳐라하는 건 여호와 이레의 복을 주셨죠 아브라함은 최고의 복이었습니다

그 다음에 어떤 복입니까? 이것 때문에 바다의 모래 같고, 하늘의 별과 같은 축복을 주겠다 하셨습니다 그때 속죄의 은혜가 임하게 됩니다 드디어 여호와의 산에서 속죄의 어린 양으로서 준비되었다는 것이 이뤄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언제 구원이 임합니까? 예수님처럼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버리고, 나의 모든 것을 버리고 내가 다 버려져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존재하는 그때 구원이 임하게 됩니다 구원은 어둠이 나가고, 죄가 나가고, 물론 구원의 은혜에 들어가지만 그것은 영생은 아닙니다 생명, 분명히 생명입니다 영생은 그다음 단계입니다

구원받은 자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 때문에 완전하게 핍박을 받고 그때 영생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구원은 내가 모든 죄를 버리면 구원 받습니다 그건 맞습니다 하지만 영생은 그렇지 않습니다 영생은 모든 것을 다 버려야 영생의 복을 주는 것입니다 좀 다릅니다 물론 구원 안에 있으면 영생의 복을 받습니다 구원 안에 있을 때도 많은 요구를 하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생명을 요구합니다 ! 지금 그런 시대가 아니잖아요?“ 하지만 원리는 똑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시대에 똑같이 행동 하십니다 내가 생명의 순간을 바치는 때가 옵니다 그렇지 않다면 영생의 복을 주지 않고 버립니다 그래서 구원이 어렵습니다 구원이라는 큰 복을 주셨는데 자기를 안 바친다면......

예수님의 두 제자가 세베대의 두 아들이 좌우 자리를 구했죠! ”내 잔을 마칠 수 있겠느냐?“ 하시죠 이 잔을 마셔야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구원의 은혜를 한때는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다수가 구원에서 이탈됩니다 왜 이탈되느냐면 구원 가운데서 니나노 하면서 방만하니까 이탈됩니다 구원받으면 행복하고 평안한 것이 좋으니까, 건강하니까 좋다는 것입니다 근데 그것이 영생은 아닌 것입니다 내가 있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바쳐서 내가 완전히 없는 그것이 영생의 길인 것입니다

성 프란시스의 가사 중에 자기를 온전히 버리므로 영생을 얻는다그 가사를 이해를 못했지만 그것이 맞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완전히 부서져야 합니다 완전히 끝을 봐야 합니다 내 인생이...... 그것이 곡식입니다 곡식을 갈죠 빵 만드는 것입니다 부숴버리는 것입니다 이제 나는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 남는 것입니다 우리는 태어나서 죽으면서 자기 자신이 있습니다 내 인생입니다 그러나 내 인생 아닙니다 하나님 것입니다 인생은...... 우리가 태어나서 번 돈을 내 돈 아닙니다 하나님 것입니다 태어나서 건강이 있습니다 내 것 아닙니다 모두 하나님 것이며 모두 하나님 앞에 바쳐지는 순간 영생의 길이 열립니다

우리는 구원을 드디어 받게 되는데 우리의 구원관이 무엇입니까? 성령의 음성이 나오는 겁니다 왜 십계명만으로 안 되느냐? 산상수훈 만으로 안 되느냐? 성령이 음성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이제까지 구약에서 하나님의 음성에 불순종 하고 천국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엘리야가 850명을 물리친 다음에 하나님이 아합을 엘리야에게 계속 붙여 주십니다 그 때문에 엘리야가 고생을 많이 합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위대한 선지자들은 행복했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계속 고통을 얻습니다 우리는 고통을 싫어합니다 그러나 모든 신앙인들은 고통이 따라옵니다 아주 아픔이 따라옵니다 언제까지? 죽을 때까지 따라옵니다

그런 십자가를 우리에게 주시고 고난의 잔을 먹으면서 우리는 영생을 누리는 것입니다 때로는 중보 기도의 설명을 통해서 결국 우리는 우리 자신이 다 부서지는 일들이 남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잘했다하고 결과적으로 주는 것이 천국입니다 이 땅에서 잘했다하고 복 받는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뜻은 그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잘했다고 그 결과물로서 천국을 주시는 것입니다 천국은 고난의 결과이며 영생의 결과입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을 바치고 곡식처럼 부서져서 드린 자에 대한 결과물입니다 결코 지금 우리가 따놓은 결과가 아닌 것입니다 결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인도하실 때 가르침으로 끝나지 않고 우리를 모두 다 순교의 제물로 다 받게 됩니다 옛날에 이런 설교를 들으면 겁이 났습니다 나도 나중에 순교 당할 텐데...... 그런데 신기한 일이 일어납니다 제가 옛날에 하나님께 기도할 때 육 개월을 드린 기도가 있습니다 하나님 나도 십자가에서 죽게 해달라고 육 개월을 기도합니다 왜요? 하나님께서 결국 우리에 대해서 언제 영광 받으시느냐? 하면 우리가 예수님처럼 할 때 영광을 받으십니다 베드로는 거꾸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지금도 있습니다 눈물과 아픔과 고통이 있습니다 왜 하냐고요? 하나님을 위해서 감당하는 것입니다

! 이제 또 다른 신앙이 열립니다 신앙생활을 하면 고난이 없는 줄 알았는데 세상에 거꾸로 이 세상에서 고통이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고통은 영생을 위한 고통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감당하는 마음이 되어야 하는데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베드로마저 예수님에 대해서 주를 끝까지 따르겠다고 하지만 죽을지언정 따르겠다고 했지만 되돌아가 십자가 앞에서 도망갑니다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때 죽었으면 베드로는 지옥 같습니다만 나중에 베드로가 변화되어서 자기 스스로 거꾸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기 때문에 천국가는 것입니다

뭐냐하면 우리가 영생에 길은 어려운 것인데 우리가 주님 때문에 생명을 바칠 정도가 아니면 천국 갈 수 없습니다 이것은 명확한 진리입니다 우리는 두려워합니다 예수님 때문에 죽는구나! ! 죽는 겁니다 결론 사항입니다 그러나 어차피 날 위에 죽거나, 이왕 죽는 거 날 위에 죽거나 하나님 위의 죽거나 죽는 것은 매 한가지입니다 이왕 죽는 거 이왕 사는 거 하나님을 위해서 죽는 것이 훨씬 더 가치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날 위에 사는 것, 날 위에 죽는 것, 주님 위해 사는 것, 주님 위에 죽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내가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라는 겁니다 죽어도 주를 위해 죽고 살아도 주를 위해 사는 것 이것이 순교입니다

지금 날 위해 살면서 순교 하겠다하는 놈들은 전부 미친 놈들입니다 보통 미친놈들이 아닙니다 지금 나를 위해서 살면서 나중에 주를 위해서 순교 하겠다 하는 놈들은 미친 놈들입니다 지금 주를 위해서 사는 것이 주를 위해 죽는 비결입니다 매일 주님을 위해서 죽는 것입니다 그게 영적으로 영생의 비결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바뀌느냐? 자기 본질적이지 않게 됩니다 내 본위적인 것 이것이 이렇게 바뀌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중심, 신본이 뭐냐? 드디어 날 위해 살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본입니다 인본은 남한테 좋은 소리 듣고 남한테 좋은 얘기 듣습니다 인본입니다 신본은 하나님께 좋은 소리 듣는 것입니다 신본입니다

우리는 이제 신본이 되어야 하는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뜻을 위해서 우리는 모든 것을 다 바치는 삶이 신본이고 그래서 자랑할 것도 없고 주장할 것도 없고 괴로울 것도 없습니다 슬플 것도 없습니다 날 위해 살 때 슬픈 것이지 하나님을 위해서 사는데 뭐가 슬픕니까? 왜 인간이 슬퍼하고 고통스러워 합니까? 다 자기 때문에 자기를 위해 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내가 날 위하지 않으면 울 것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곡식으로 변화가 되어서 우리가 맨 마지막에 천국 문에 올라가면서 우리가 고통스럽다 할지라도 우리 인생을 반추할 때 참 잘 살았다는 그런 좋은 기억으로 우리는 천국에 가야 합니다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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