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복음교회 박경호목사의 헬라어번역성경 마가복음 강해 83절
사복음교회 박경호목사의 헬라어번역성경 마가복음 강해
83.
그분이 다시 바닷가에서 가르치기 시작하셨습니다. 많은 군중이 그분에게 모여들었으므로, 그분은 배에 올라가 바다에 앉으시고, 모든 군중은 바닷가 앞 육지에 있었습니다.
[그분이 다시]
예수님이시죠.
[다시]
왜 다시 일까요? 그것은 예수님께서는 가르침이 끝이 없었기 때문이고 또 예수님께서는 그 직전에 작은 배에서 가르치셨기 때문입니다 바다에서 가르친 2번째 사건이기 때문에 다시입니다
[바닷가에서 가르치기 시작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나 형제들이 왔던 사건이 끝났고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에 대한 귀신을 쫓아냈다는 사건도 끝났고 새로운 장르이기 때문에 다시입니다 산에서 가르칠 때 산상수훈이죠 바닷가에서 가르칩니다 집에서 가르치기도 합니다 회당에서 가르치기도 합니다 가르치는 장소가 다양한데 회당인 경우 집인 경우 산인 경우 바닷가인 경우의 차이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회당에서는 주로 축사를 많이 하시고 집에서는 죄 사함에 대해 말씀을 많이 하시고 산에서는 율법적인 말씀을 많이 하십니다 바닷가는 구원이라든가 영혼의 구원 문제를 심화과정으로 다룹니다
[많은 군중이 그분에게 모여들었으므로]
바다는 갈릴리 바다입니다 모래밭 끝에서 가르치면 사람이 한도가 있는데 그분은 배에 올라가십니다 건너는 야산이고 여기는 바다고, 바닷가에서 많은 사람들을 모이게 해서 설교를 합니다 산은 아주 많은 대중, 바닷가는 한 몇 천명 정도 되겠죠 집은 몇 십명 정도 되고 회당은 아마 몇 백명 정도 되겠죠 바닷가는 많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설교하시는 것입니다
[바다에 앉으시고모든 군중은 바닷가 앞 육지에 있었습니다.]
바다에 앉으시고는 웃긴 표현입니다 왜 ‘배에 앉으시고‘가 아니고 ’바다에 앉아서‘입니다 ’바다에 앉으시고‘ 라는 말씀이 무엇일까요? 이것은 바다는 영적으로 은혜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할 때 구원에 도달될 때 구원을 받는데 은혜가 없으면 절대로 구원이 되지 않습니다 신앙생활을 할 때 은혜가 우리한테 몰려와야 합니다 은혜는 성령의 역사입니다 회개의 은해! 그게 와야지 회개할 수 있습니다 감사의 은혜가 와야 감사가 됩니다 억지로 되지 않습니다 용서의 은혜가 와야 용서가 됩니다 뜻에 순종하려는 순종의 은혜가 와야 합니다 인간이 마음대로 안됩니다
이런 은혜는 예수님에게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 은혜가 가르침만은 아닙니다 가르침 뿐만 아니라 가르침을 내가 행동할 수 있는 행동의 파워! 이게 우리에게 온다는 것입니다 기뻐할 수 있는 은혜가 와야 합니다 그런 힘이 옵니다 다시 말하면 바닷가에 가르침은 가르침 뿐만 아니라 그 힘대로 살 수 있는 은혜가 주어지기 때문에 바다에 앉으신 것입니다 환상에서 바다는 아주 좋은 것입니다 바다에는 은혜가 있습니다
사람의 깊은 내면 세계는 내 영에 의해서 움직이는 은혜가 있습니다 감동이 있습니다 이것이 인본주의입니다 하나님의 영에 의해서 내 깊은 내면이 다루어지는 것 이게 신본주의입니다 사람이 은혜가 없으면 누구든지 인본주의가 됩니다 은혜가 있으면 신본주의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영의 작동에 의해서 마음이 돌아가기 때문이죠 우리의 생각이 스스로 돌아갑니다 그럼 불평이 나오고 원망이 나오고 미움이 나오고 시기가 나오고 여러 가지 더러운 것들이 나옵니다 인간의 영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마음속에 있으면 또 다른 것이 나옵니다 감사가 나오고 기쁨이 나오고 평안이 나오고 용서가 나오고 또 다른 것이 나옵니다 은혜가 없는 신앙생활은 정말 고독하고 머리 아픕니다 말씀은 아는데 잘 되지 않습니다 은혜가 임하지 않으니까......
그러면 2번째 문제인 은혜가 임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닷가에 계신 예수님께 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아! 나는 왜 안 되느냐?‘ 입니다 바닷가에 계신 예수님께 와야합니다 회당에 있는 예수님께 와야 귀신이 나가는 것처럼 바닷가에 와야만 은혜가 주어집니다 바닷가에 계신 예수님을 어떻게 만납니까? 어떤 말씀은, 어떤 설교는 파워가 옵니다 말씀을 들어도 파워가 오지 않으면 그런 말씀을 또 들을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는 이미 있는 말씀을 또 듣습니다 신기한 게 있습니다 말씀을 들으면 머리로 와서 ’그렇다’ 라고 할 수 있습니다
놀랍게도 말씀을 들었는데 마음속에서 결단과 각오와 감동과 느낌이 온다면 나를 채워주는 것을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이게 바닷가입니다 말씀을 듣는데 내게 그런 은혜가 임합니다 왠지 감사한 마음이 들고 왠지 고맙고 왠지 하나님께 복 받은 사람 같고.... 사람이 불평을 하게 되면 어떤 경우에도 내가 최고로 불행하다고 느끼게 됩니다 불평의 파워입니다 참 신기하죠 똑같은 상황에서도 불평을 하게 되면 세상에서 내가 가장 불행한 사람처럼 느껴집니다 반대로 감사하면 어떤 경우에도 내가 가장 행복한 사람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이렇게 똑같은 상황에서도 어떨 때는 내가 가장 행복한 사람처럼 느껴지고 기분이 좋고 그 차이가 무엇입니까“ 그것이 은혜입니다 은혜가 오면 나처럼 행복한 사람이 없습니다 나처럼 좋은 운명이 없습니다 은혜가 오지 않으면 나처럼 비참한 운명이 없습니다, 비참한 운명이라고 느끼는 것 이것이 은혜의 차이입니다
은혜는 신앙생활을 할 때 은혜가 와야 하는데 은혜가 임하는 설교가 있습니다 그것은 깨닫는 은혜가 아니라 실제 말씀대로 살 수 있는 은혜가 오는 설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실제로 할 수 있는 은혜 설교 메시지를 주십니다 모든 군중은 바다 앞에 육지에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바다에 앉으셨고 군중은 다 육지에 있는겁니다 앉았을까요? 서 있었을까요? 제가 볼 때는 서 있었습니다 산상에서의 설교는 앉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바다에서는 서있습니다 집에서는 같이 앉아서 식사했습니다 회당에서는 예배 가운데 있었습니다
좀 다른 양상들인데 우리가 예수님 앞에 나아갈 때 예수님은 다르게 역사하시는데 이때는 서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들을 때 앉아 있죠 그런데 말씀들을 때 서있는 때가 많이 있었습니다 사실 백성에게 말씀 전파할 때 일어나서 말씀을 듣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것은 우리 영이 은혜를 받으려면 뭐 어떻게 받아야 하느냐? 입니다 은혜가 안 오는 이유가 설교자의 미스인 경우도 있습니다 설교자가 맛에 갔기 때문에.... 하지만 그 이유가 엄밀하게는 은혜 받으려는 사람의 나태함으로 오지 않습니다 누워서 ‘말씀 한번 해주시죠’ 라고 하면 은혜가 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똑같은 말도 서서 집중하면 은혜가 오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강해녹화를 하지 않습니까! 신기한 일이 있습니다 이것을 똑같은데 집에서 들어보면 은혜가 옵니다 왜일까요? 방송이 좋아서 그건 아닙니다 또 다시 볼 때는 은혜를 받으려는 마음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좋은 설교도 아무리 좋은 말씀도 은혜의 마음이 아니면 절대로 은혜가 오지않습니다 은혜가 어디서 옵니까? 우리 태도에서 옵니다 아무리 진수성찬을 펼쳐도 배가 부르면 맛이 없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차이입니다
바닷가는 구원에 이르는 말씀들인데 왜 우리가 지옥가느냐? 입니다 엄밀하게는 ‘나에게 은혜가 임하지 않아요 난 안돼요’ 다 거짓말입니다 왜 거짓말이냐? 하면은 서서 듣고 있습니까? 사모하는 마음으로 듣습니까? 그 차이입니다 모든 신앙의 출발은 내 태도에 달려 있습니다 말씀 앞에 서있지 않고 사모하지 않고 그냥 구경하며는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오늘날 교회 가지 아니하고 다 영상으로 예배드립니다 구원받지 못합니다 지금 시대는 미디어 시대라서 구원과 멉니다
옛날 사람들이 미디어 없었을 때 어떻게했습니까? 백리 오 십리 삼 십리 십리를 걸어서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새벽 기도에도 옛날에 많이 갔습니다 그때는 왜 은혜가 임합니까? 그 사모함이 있는 것입니다 장거리를 가면서 사모가 됩니다 교회 다닐 때 장거리를 갈 수가 있죠 그럼 사모가 됩니다 가는 시간에 무슨 생각을 합니까? 그 사모함 때문에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은혜의 주체는 예수님이라 할지라도 결국 은혜를 받고 안 받고는 나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바닷가는 수만 명이 아닌 수천 명이라도 더 나은 설교가 되는 것이고 더 구원에 가까운 설교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배를 사모해야 되고 이것을 간절히 원해야 합니다 이 차이가 똑같은 설교인데도 내게 은혜가 되기도하고 똑같은 데도 재미가 없기도하고 반감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내가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이면 반감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왜 반감이 일어나느냐? 은혜를 받으려 하지 않고 알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설교는 아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책을 천만 권 읽어도 변화되지 않습니다 지식이 인간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마음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은혜가 와야 마음이 변화가 됩니다 똑같이 설교를 수십 년 들어도 지옥가지 않습니까? 왜 그렇습니까 마음의 태도 때문입니다 마음의 태도.....
소림사 가면 무술을 처음에는 시키지 않습니다 1년 동안 장작 패고 물도 떠옵니다 사람들은 이해를 못합니다 무술을 배워야 하는데..... 그러나 그게 아닙니다 무술은 금세 배웁니다 뭐가 안 되느냐 마음이 안됩니다 마음이 바뀐 상태에서 말씀을 배워야 되는 것이지 내 것이 되는 것이지 아무리 말씀을 배워도 지식만 만들어낼 뿐 변화되지 않습니다 태도가 사모하는 마음이 되면 그때는 작은 한마디도 우리를 변화로 인도합니다 참 놀랍습니다 제가 수만명 다니는 교회에 가서 말씀을 들었을 때는 변화가 없었는데 그런데 열 명도 안 되는 교회에서의 말씀이 나를 변화시켰습니다 원고도 형편없는 그 말씀, 거기서 변화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진짜 들을 것 없는 설교였지만 그것이 꿀보다 답니다 어떤 마음이냐 내 마음이 너무 사모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사모함은 모든 것을 만들어 냅니다 우리 인간의 사모함이 모든 것을 만들어 냅니다 기도할 때도 게으르면 손들고 기도합니다 기도도 사모하는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그러면 달라집니다 모든 게 달라집니다 인생은 인간의 태도에 의해서 인간 인생이 모두 달라집니다 간단합니다 태도가 모든 걸 만듭니다 그래서 우리는 태도를 갖는 때에 내가 바닷가에 앉으신 예수님을 향해 서서 듣는 것처럼 우리 우리는 은혜의 말씀을 사모해야 하고 그렇게 되면 더 진귀한 말씀이 쏟아집니다
우리는 비록 옛날에 이 사람들을 향해서 좋겠다 할수 있겠죠 예수님을 만났으니까.... 오늘날도 예수님께서는 똑같이 그 귀한 진리를 우리에게 말씀해 주십니다 우리는 말씀을 통해서 누가 바뀌느냐? 사모하는 자가 바뀌고 사모하는 자가 구원이라는 은혜의 들어가게 됩니다
마치겠습니다
사복음교회 박경호목사의 헬라어번역성경 마가복음 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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