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복음교회 박경호목사의 헬라어번역성경 마가복음 강해 56절

사복음교회 박경호목사의 헬라어번역성경 마가복음 강해



56.

그분이 안식일에 밀밭을 통하여 지나가시게 되었으며, 그분의 제자들이 길을 만들며 이삭들을 자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분이]

예수님이십니다. 대부분 사복음서에서 주로 많이 나오는 날짜가 안식일이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는. 안식일날. 역사를 많이 하셨죠. 지금도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주일 날 예배 드릴 때 역사를 많이 하십니다.

[안식일에 밀밭을 통하여 지나가시게 되었으며, 그분의 제자들이 길을 만들며 이삭들을 자르기 시작했습니다.]

밀밭을 통한다니까, 밀밭이 원래 사이에 처음에는 길이 있는 건 아니겠죠. 그냥 밀밭을 본 적 없는데 밀밭이 키가 큰가요? 얼마 정도요? 이 정도요? 그 사이 밀밭이 있으면 그분의 제자들이 길을 만드는 거. 그러니까 원래 길이 아닌데 그냥 사이로 지나가는 거.......이삭들이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이삭을 잘라서 먹는 거죠. 안식일 날 먹는것 때문에 그게 논쟁이 이어집니다.

자! 안식이 안식의 의미. 안식이라는 것이 우리가 주일 성수를 한다 라고 하는데, 이스라엘 유대인들은 안식일 날 전등을 켜지 않고 촛불만 켭니다. 그리고 안식일 날 5km 밖을 가지 않고 물건을 사 먹지도 않고 안식일을 거의 집에 있거나 회당에서 바로 집에 들어옵니다. 그들이 갖고 있는 안식일의 의미는 내가 주일 날 예배드리는 날이기 때문에 다른 모든 것을 멈춰서 노동을 금하고 오락을 금한다는 겁니다. 우리는 이렇게 해야 되며 또 흉내를 내야 됩니다

오늘날 우리는 안식일이 주일이 노동이나 오락으로 가면 안 됩니다. 쉽게 말하면 유대인들의 이 주일 성수는 오늘 우리가 반드시 흉내내고 따라야 됩니다. 그래서 주일날 우리는 놀러 가면 안 되고, 주일 날 일하면 안 됩니다. 노동과 오락이라는 이 두 가지는 안식일의 적입니다. 우리는 주일 날 남들도 쉬게 되고 지난번에 누가 주일밖에 시간이 없다는 것입니다. 공사하는데. 제가 말씀을 드렸죠. 저는 주일날 우리는 일 안 하면 좋겠다 이분이 처음에는 일할 시간이 없다셨는데 전화 얼마 전 또 왔습니다. 내가 월요일 날 가겠습니다. 해서 시간 지났더니 이분이 교회 다니시는 분이에요. 알고 보니까. 여기 교회를 다니시는 분인데 모르겠어요. 좀 더 빨리 일을 진행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지 아니면 일을 빨리 잡아서 진행해야만 어떤 그런 경제적인 돈이 인컴이 들어와야 되니까 그런 것 때문인지 몰라도 하여간 월요일 날 원래 시간 됐대요 시간 되셨대요. 원래 시간이 되셨는데 노동을 한다 하시더라고요. 우리는 안식일 날 타인들도 노동하지 않도록 배려를 해야 됩니다

십계명에 이미 다른 사람을 일하지 말게 해달라는 명령이 주어져 있습니다. 주일 성수는 매우 중요한데 주일 성수는 1, 2, 3, 4 계명이 총화가 됩니다. 그래서 주일을 통해서 1계명을 지키는 것이고 2계명과 3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4계명은. 이 주일 십계명에 4가지 계명을 압축하여서 지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일 날 우리는 어떤 모임들 벌초라든가 그 다음에 결혼이라든가 뭐 이런 장례라든가 이런 모임 스토리는 가면 안 되는 것입니다. 안식일날은 오직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으로만 우리는 모든 것을 시간을 할애해야 합니다

자! 그런데 안식일 날 지금 문제가 생겼어요. 안식일 날 지금 제자들이 그것까지 좋습니다. 이건 동일합니다. 밀밭에 가면서 이삭을 먹는 문제가 생겼어요.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안식일 날 이것을 노동으로 보는 겁니다. 노동. 안식일을 내가 일을 안 해야 된다. 그런데 이삭을 먹으니까 이스라엘 바리새인들이 싫어하죠. 아니 우리는 어디 가지도 않는데 쟤들은 멀리 이동도 하고 그리고 또 이삭을 먹으니까 노동이 아니냐? 라는 것이에요. 쉽게 말하면 목적을 잃어버리고 자꾸 이렇게 기복을 만들어서 얽어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우리가 왜 주일날 노동하지 아니하고 뭘 하지 않느냐의 목적이에요. 목적이죠. 왜냐면 안식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내가 만나는데 성화에서 안식을 누리기 위한 방법론인데 마치 여기에 얽매여서 회사 안 가고 학교 안 가고 가만히 이렇게 있는 겁니다. 그러면 그것은 목적을 잃어버린 거예요. 노동하지 않는 이유. 내가 오락하지 않는 이유가 내가 믿는 예수님을 만남으로 말미암아 내가 영적인 은혜를 얻는 거거든요. 충만함을 얻는 거거든요. 그런데 그게 아니고 단순히 그냥 내가 노동하지 마, 오락하지 마. 이것을 이 룰에 얽매어서 목적인 예수님을 만나지 않고 가만 앉아 두면, 오히려 그것보다는 노동이 나은 거예요. 그보다는..... 

무슨 말이냐면요. 그냥 크리스챤이, 크리스챤이 하나님 만나는 예배는 쓰지 않고 그냥 하지 말라에 얽매여가지고 아무것도 못하는 상태. 이거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이 아닙니다. 현재 개신교가 한 시간 예배를 드립니다. 그런데 이제 문제 생깁니다. 한 시간 예배를 드리니까 나머지는 노동도 하지 말라 하지, 오락 하지 말라 하니까, 어쩝니까. 갈등 하는거에요. 드디어 TV 시청 하는 거예요. 기독교인들이. 이것도 오락인데 TV를 보면 안 됩니다. 주일날은 이거 안 되는 거예요. 그런데 안식일 날 1시간 예배를 드리고 나머지 시간에 뭐 합니까.

나머지를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거예요. 회사도 못 가지, 놀러도 못 가지,그러니까 나온 게 TV에요. 이거는 엑스예요. 그럼 어떻게 되느냐. 한 시간 예배로 안 되는 거예요. 예배를 많이 늘려야 됩니다. 왜 주일은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이에요. 그러면. 예배를 많이 드리면 되는데 문제가 또 있어요. 예배를 많이 인도할 교회가 없어요. 더 나가서 교회는 이 1, 2, 3, 4부 라 해서 같은 공간으로 많이 오게 해서 헌금이 많아지는 게 더 유익한 겁니다. 우리가 10시간 있으면은. 사람을 10시간에 10번 오게 하면 보면 100명 올 수 있는데 한 번도 없습니까. 수입이 줄어요. 교회 입장에서는 문제가 많은 거예요. 예배를 전체를 예배를 인도를 하면 좋은데 그렇게 할 만한 역량이 안 되고, 목사님들이 예배를 10시간 인도해줄 목사님이 없어요. 한 시간 설교도 힘들어합니다. 보통은 세 번 하면 지쳐서 다운 돼요. 목사님들이 많이 하면 다섯 번 설교합니다, 주일날. 설교시간은 20분이에요. 그걸로 지쳐 떨어져요.그래서 오후 되면 목사들이 다 나가 떨어집니다

쉽게 말하면 원래 원하는 안식일은. 원래 하루 종일 하면 예배로 아마 영적인 충전을 얻는 것이 안식일인데 실제로 그렇게 할 수 있는 교회가 없고 더 나가서 마인드가 안 돼 있어요. 그러니까 일반 성도들도 한 시간 예배를 통해서 안식을 지켰다라고 스스로 자위하는 것이고 교회 입장에서도 많은 사람이 거기 와서 헌금해서, 수입이 있는 곳이니까. 이게 지금 절충돼가지고 있기 때문에 모든 영혼들은 실제 원하는 안식이 안 되는 거예요. 안식의 목적은 우리 안식 때문입니다. 우리 영은 내가 하나님을 만남으로 영이 안식을 누려야만 진짜 안식을 누리게 돼 있어요

그러니까 기독교에 있는 많은 분들이 딜레마가 와요. 왜 딜레마냐. 우리 사람은. 영혼이 충족이 돼야만 세상 욕심이 안 생기게 돼 있어요. 욕망이. 우리 사람은 영의 욕망이 있고 육의 욕망이 있는데 육의 욕망이 있죠. 그게 죄의 원인이죠. 모든 욕심은 죄의 원인입니다. 뭘 보고 싶고 만나고 싶고 가지고 싶고 이게 모든 것의 죄의 뿌리가 됩니다. 기독교의 딜레마. 내가 이 세상에서 의롭게 살아야 되는데 그렇게 배워왔는데. 될 수 없는 이유가 뭐냐 하면 내가 영혼이 안식하면 영적인 충만 때문에 뭘 내가 원하는 게 없어져요. 원하는 게. 욕망이. 근데 영적인 충만이 안 오니까. 그러니까 육적인 욕망 때문에 죄를 짓는 거예요. 내가 만약에 고기를 많이 먹으면. 먹었으면 어떱니까. 딴 걸 먹을 필요를 못 느낍니다. 왜 배가 부르니까. 우리 구조는 우리 구조는 우리가 내가 어떤 걸 통해서 막 이게 들어가면 다른 걸 원치 않게 돼 있어요

주일 날 온전한 성수가 안 되니까 그런 게 없으니까. 세상적인 욕망을 찾습니다. 드디어 이중 생활을 시작한 거에요. 이중 생활. 사회에서는 가정에서는 학교에서는 죄를 짓고 또 안식일 준수니까 교회 와서 잠깐 예배 드리고 하면서 갈등이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목사님들도 설교할 때 어떤 설교입니까. 우리가 지금 우리를 의롭게 할 설교를 할 수가 없어요. 왜 없느냐 안 되는 알고 있어요. 다 알아요 안 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축복에 관한 설교라든가 은사라든가 또는 지적인 얘기라든가 교리 설교 할 수 밖에 없어요. 그러니까 본질적인 예수님을 믿는 동안 안식은 일어나지 않는 거예요

참된 평화 책에서 봤지만 일어나지 않아요. 참된 기쁨 없어요. ! 원래 안식일을 주신 목적은. 원래 인간을 위한 거예요. 안식일은..... 하나님도 창조 후 7일 날 쉬셨죠. 안식하셨죠. 그리고 우리 인간을 위해서 안식일을 제정해 주신 거예요. , 우리 사람은. 주일 날 일주일에 하루를 충만한 하나님을 알면서 안식을 누려야만 그 영적의 안식을 누려야만 다른 평일이 또 안식이 되는 거예요. 안식이. 이런 거예요.  밥을 아침에 많이 먹었어요. 그럼 나중에 배가 안 고파요. 그죠. 반대로 아침에 밥을 안 먹어도 됩니다. 하루 종일 배고파요. 그렇죠. 안식이 안 되는 거예요. 아침에 밥 많이 먹으면 밥을 먹으면 점심에 배가 든든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주일 날 은혜를 충분히 받으면 나머지 시간들이 그냥 잘 살아갈 수 있어요. 그런데 주일 날. 안식일 날 허기지면 계속 영적으로 허기져서 살아가요. 궁핍하게 살아갑니다. 그러니까 이런 악순환이 계속되면서 기독교 자체에 대한 회의감이 오는 겁니다

오늘날도 많은 목사님들의 자녀들이 그리고 많은 신학 교수들의 자녀들이 그리고 많은 신앙인들이 회의감이 있어요. 죄를 못 이긴다. 그리고 세상에서 고통 속에서 살아 가요. 그래서 사는 게 똑같아요. 불신자하고 다를 게 없어요. 왜냐하면 안식이 없으니까. 그래서 이 안식일 날은 뭡니까. 안식일 날은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는데 온 시간을 드리는 겁니다

물론 저희 교회는 대단히 특별한 곳이죠. 토요일 날 4시부터 주일날 4시까지 24시간 안식함으로 지킵니다. 그래서 요 24시간을 하나님께 드리는 거예요. 우리 사람은. 하나님을 만나지 않고 절대 안식이 안 되게 돼 있어요. 구조가 이렇게 만들어졌어요. 만들 때부터. 그러니까 하나님이 만나는 것인데 어떻게 만나는 방법론이 예배예요. 방법론. 예배는. 하나님 만나는 방법론이에요. 방법론에서 예배는. 좀 바뀔 수가 있어요. 예배는 스타일이. 왜 뭐가 중요하냐. 하나님 만나면 되는 거예요. 어떤 것이 라든지 기도를 통해서든지. 만나면 되는 거예요. 이 만남의 예배 이걸 통해서 우리 영이 충만함을 얻는 거예요. 성령님의 기운이 능력이 그리고 그 활동력이 증가되는 거예요

안대기도회 때 어떤 전도사님이셨는데 마음이 막 스멀스멀 감동이 올라오는 거예요. 성령의 감동인가 아닌가를 막 이제 저도 막 짚어보는 거예요. 다시 말씀하실 그것이 성령의 역사라고 말씀해주시더라고요. 그래서 계속 감동이 올라오는 내용들. 어떤 떠오르는 생각들, 어떤 순간의 어떤 어떤 그런 인도함들이 있죠. 그게 성령의 역사라고 말씀해 주신 겁니다. 우리가 성령님이 우리 안에서 역사를 할 때 우리는 참으로 만족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계속 일어나야 되는 거예요. 그런데 이런 안식의 세계에 접근조차 하질 못하는 거예요

현재 기독교가. 왜 못하느냐. 안식일 주일 성수를 잘못하기 때문이에요. 주일에 온 힘을 다해야 되는데 기껏 해봤자 기도 방송 보는 거예요. 신실한 사람들이 기도 방송. 그럼 과연 그것이 거기서 진짜 나오느냐 그렇지를 않아요. 그래서 사람들이 안식일에 주일 성수의 실패가 일어납니다. 물론 이렇게 일반 대부분 사람들은 주일날 십일조도 안 하고 대부분 사람들은 주일을 막 까먹기도 하는데 그런 사람들은 제쳐놓고 건실하다 할지라도 그분 조차도. 건실함이 안 되는 거예요 경건함들이..... 

그런데 안식일 날 드디어 새벽 예배를 끝내고 드디어 길을 가게 됩니다. 배가 아프니까. 드디밀밭 가면서 이삭을 먹는 거예요. 죄인가요 아닌가요. 당시 사람들이 죄라고 말하죠. 그런데 예수님은 아니라는 거예요. 아닌 이유가 뭐냐. 이거 뭐냐면 그것이 밀밭에 있는 것을 따먹는 거. 원래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런 것을 서리해 보지 않았습니다. 서리로 안 봐요. 그런 것들은 나 도덕적인 죄는 아니에요. 법적 죄도 아니에요. 그런데 이 사람들은 주일성수를 어겼다는 안식을 어겼다는 것으로 죄를 여기는 거예요. 그런데 거꾸로. 이쪽에서는 뭐예요. 아니라는 거예요. 동시에 뭐예요. 그 밀밭을 먹는 것이 안식이라는 큰 목적에서 온 거기 때문에 이런 겁니다

내가 이제 어떤 직업이 있는데 주일 날 전화가 왔어요. 사람이 죽어가는 문제예요. “나 안식일 때문에 못 가”. 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이해가 되시죠. 그러니까 하나님의 어떤 섬김을 통해서 나가는데 특별한 일이 생길 경우가 생길 수가 있어요. 특별한 경우들 그래 특별한 경우에 만약 주일날 나는 주일날 절대 안해. 하는 것은 목적에서 벗어나는 거예요. 하나님이 믿는다는 것은 무슨 이게 뭐냐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내가 수행함으로써 안식을 누리는 거예요. 중요합니다. 안식을 누리는 방법론이 예배인데 이 날은 따러 떼어놓는 날이라 할지라도 할지라도 만약에 그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쉬고있었는데 아주 위험한 문제가 있으니까 내가 그것을 도와줘야 됩니다. 그래서 안식일날 저 구덩이에 빠진다 그러면 건져내야 되는 거예요. 이게 원하시는 거예요. 안식일날 예배 드리는 거, 이미 끝났어요. 끝났는데 빠졌어. 다시 일 안 해. 그건 잘못된 거예요. 건져줘야 되는 거예요

안식일날 소경이 길 가다가 가면서 해매다가 길를 잃어버렸어요. 내가 예배를 드리는데 그 날 어디입니까. 그걸 도와줘서 그를 풀어줘야 됩니다. 왜냐면 안식일의 개념이라는 것은 하나님 만나는 건 맞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원하는 일들이 생길 수가 있어요. 그런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이 있어요. 그때 뭐예요. 그걸 하는 거예요. 그래서 일반적으로 그러면 내가 내 딸이 결혼 하는데요”. 그러면 그날 결혼하면 안 되죠. 처음부터 그렇게 하면 그렇게 자꾸 이렇게 하면 안 되죠. 목적이 잘못 됐어요 목적이.....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목적으로 안 한 것이지.

내가 안식일 날 그렇게 갑자기 누가 죽어가는데 당연히 살려줘야죠. 당연한 거예요. 그게 내 영혼에 만족을 줍니다. 만약에 아니면 어떻습니까. 마음이 괴로워. 거꾸로. 마음이 안식이 안 돼. 이게 영혼의 안식이 안 되는 거예요. 거꾸로. 내가 주일 날 안 먹어야지..... 배가 엄청 고파요. 안 먹어야지. 절대 안 먹을 거예요. 마음이 아파요? 안 아파요?. 아파요!. 먹어도 되는 문제예요. 먹어도 되는 거예요. 먹어도 되는데 스스로 굴레들을 만드는 거에요. 굴레들을...... 뭐냐면은 우리는 율법을 지킬 때 정신이라는 게 있습니다. 그 정신을. 그게 훨씬 중요한 거예요. 정신. 하나님 원하시는 마음을 이해해야 되는데 우리가 세부를 만들어가지고 스스로 거기서 갇혀 사는 거예요

그래서 메소디스트라는 유명한 사람이 말씀을. 메소디스트 뭐냐면요. 어떤 행위론자들. 법치론자들. 어떤 뭐예요. 어떤 법이 되는 자들 이것이 필요하지만 근본 정신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일 날 우리는. 우리는 당연히 노동과 오락 안 되고. 우리는 예배에 충실합니다. 하지만 만약에 갑자기 누가 여기서 이거 간질이 있어. 구르고 있어요. 예배드려야 돼. 간질 굴러 그건 안된다니까. 왜 불러. 도와줘야지. 이해가 되시죠. 안식일의 주인은 예수님이거든요. 예수님이 원하시는 것으로 내가 행동하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안식일만이 아니라 모든 게 그래요. 모든 게. 예배가 중요합니다. 하지만 이가 중요하다 할지라도 그때 만약에 어떤 변수가 생길 수가 있어요. 그때는 또 주님 원하는 것으로 감당하는 거에요. 그래서 우리는 큰 카테고리에 있지만 세부 조항에서는 약간의 변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따라 행동하는 것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영혼은 하나님의 뜻대로 할 때만 안식이 온다. 근본적으로 뭐냐. 우리가 이 십계명도. 그리고 주일 성수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안식을 내려주신 내용들이에요 우리가 이 법으로 얽어매기는 내용들이 아니라 우리는 죄를 안 져야만 마음이 안식이 와요. 그죠 우리가 안식하는 이유는. 그 뜻대로 살 때 안식이 오는 거예요

그런데 그 뜻에 대해서 규명한 내용들을 우리가 준수할 때 그 내용들을 준수할 때 하나님의 뜻대로 한다는 게 기본 맥락이 굉장히 중요한 거예요. 주일 성수는 이렇게 해야 돼 라는 책이 있을지 모르지만은 우리는 뭐가 중요하냐. 그 주일성수를 명령하신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게 더 중요하다는 거예요. 뜻을 아는 거..... 그래서 뜻을 행하는 순간 내 마음이 평안해지는 거예요. 사람은 말이죠. 갈등할 때가 있죠. 그래서 마음이 안 좋아요. 갈등하면 그런데 언제 갈등합니까.

내가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 상대방의 마음에 따라서 행동해지면 갈등이 사라지고 편해지는 거예요. 그죠?.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영원히 안식을 누리느냐. 딴 거 아니에요. 주일 성수만이 아니라 뭡니까. 그러니까 하나님의 뜻대로 살 때 우리는 안식할 수 있어요. 평안할 수 있습니다. 기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인생에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거예요. 행복의 조건은 절대 외형적이지 않습니다. 얻는다 누린다. 아니에요. 행복하지 않습니다. 행복은 나를 만드신 하나님의 뜻대로 살 때 행복을 누릴 수 있게 돼 있어요. 우리는 내 뜻을 맞춰갑니다. 모든 조항들을 이해할 때 뜻을 이해하자는 거예요

저는 고등학교 때까지도 공부를 안 해요 주일날은..... 주일에 공부를 한 적이 없습니다. 대부분 시험은 월요일에 쳤고요. 대부분 지금 센 게 시작해요. 시험 문제도 그리고 뒤로 갈수록 좀 약한 게 약하게 돼요. 시험 문제가..... 갈등이 올까 안 올까요. 토요일 날 까지 공부하고. 주일은 공부를 안 합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겁이 나요. 대부분 어제 본 게 내일 기억나지. 토요일날 보면은 주일날 기억 안나거든요. 갈등이 옵니다. 처음에는 갈등이 와요. 손해 보니까. 그런데 나중에는 갈등이 안 와요. 왜냐하면은. 공부하는 목적이 나를 위한 게 아니기 때문이죠

우리가 안식일을 왜 지키냐예요. 목적이 내가 되면 안식이 안 되는 거예요. 목적이 하나님이 되는 거예요. 우리가 언제 안식할 수 있어요. 목적이 하나님이 되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는 안식이 와요. 우리는 왜 살면서 고난과 연단과 슬픔과 아픔이 우리에게 있을까. 목적이 나에게 있으면 해방될 수 없어요. 목적이 하나님 되는 겁니다. 공부 왜 해야 되는 거냐는거에요. 시험 잘 보느냐 안 보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공부를 왜 하느냐. 왜 고3들이 주일날 교회를 안 오느냐. 왜 고3 되면은 교회를 떠나느냐. 왜 고등학교 중학교 가면 교회를 멀리 하느냐. 주일학교까지는 교회 잘 다니다가. 이유가 뭐냐 목적이 자기라는 겁니다. 왜 사람들이 회사 다닐 때부터 교회에서 멀어지느냐. 결혼한 다음에 교회에서 멀어지느냐. 목적이 자기이기 때문에 자기가 목적이면 자기 일에 중요한 게 있으면 그걸로 빠지는 거예요. 하나님의 일로 가야 되는데 그리로 안 가는 거예요

하나님 목적인 경우는 그때는 자유하는 거예요.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면 나에 대한 사랑이 많지는 않죠. 그런데 그게 자유를 주는 거예요. 그것이..... 율법 가운데 최고 율법이 뭡니까? 하나님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거에요. 옭아매는 것 같아요. 이게 율법이에요 율법. 율법의 원래 큰 계명이 뭡니까 하나님 사람. 이웃 사람이에요. 이게 이제 율법인데. 율법은 뭐예요. 지키라는 거예요. 이것을 지키면 우리가 유익을 누리는 거예요. 율법은 우리에게 굉장히 바르고 옳은 게 율법이에요. 대부분 우리가 걸어갈 길이에요. 우리가 유대인들처럼 율법을 지킬 때 야 왜 지켜그러면 잘못된 거예요 율법을 지켜야 됩니다

그러나 율법의 정신, 하나님 사랑하고. 예수님 사랑하는 그 정신을 채워서 보니까 내가 평화로움을 누리고 내가 천국에 이렇게 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부적인 조항에 들어가서 밀밭을 먹을 때 어떻게 합니까. 우리는 긍휼히 여기고 얼마나 배고팠을까. 물론 제자들도 배 안고프면 안 먹죠. 그렇잖아요 배고프면 먹은 거예요. 그러니까 그렇게 남들이 어떻게 행동할 때 왜 못할까비판할 게 아니라 그걸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가져야 되는데. 이들이 뭐예요. 어쭈 어겼어 하는 거예요. 지금 우리는 율법을 지키나 안지키나 하나님이 판정하시는데 그 정신을 이해해서 그래서 배고플 때 먹여 줘야죠. 배고플 때..... 그리고 괴로울 때 싸매 줘야 되고 이게 율법이에요. 이게 율법 정신이에요

율법은 우리를 얽어 매는 게 아니에요. 그런데 많은 경우에 율법생활 할 때 율법이 우리를 풀어주는 거예요. 율법이요. 율법을 듣고 살 때 우리는 우리가 더 자유로워집니다. 세상의 자유는 율법을 지킬 때 자유가 와요. 거꾸로 안 하면 더 불쌍해집니다. 그래서 율법 우리는 지키는 데 그 정신을 지키고 뜻을 지켜서 더 나은 주일성수를 이루어내는 것입니다. 구약의 안식일보다 더 나은 주일 성수. 시작했는데 우리가 구약의 말씀대로 준수해야합니다.

마치겠습니다. 

사복음교회 박경호목사의 헬라어번역성경 마가복음 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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