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복음교회 박경호목사의 헬라어번역성경 마가복음 강해 52절

사복음교회 박경호목사의 헬라어번역성경 마가복음 강해


52.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은 금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와서 그분께 말합니다. “무엇 때문에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은 금식하지만,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않습니까?”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은 금식하고 있었습니다.]

왜 이런 얘기들이 나올까요? 예수님이 마태의 집 잔치에서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 한 다음에 이어지는 내용이 서로 관계는 없는 내용입니다 금식은 우리를 엄청나게 변화시켜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변화됩니까? 금식과 고난이 우리를 변화시키는 큰 환경적인 변화요소입니다 젊을 때 고생은 사서도한다는 말이있는데 고생없이는 변화가 없습니다 

우리는 변화를 추구하지만 좋은 환경에서는 변화가 어렵습니다 지금의 사회가 악한 이유는 과거처럼 전쟁이나 기근이 없기 때문인데 인간은 고생이 있어야만 변화되고 좋아집니다 그래서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은 금식을 많이했습니다 그런데 과연 그것이 변화를 주느냐? 입니다 분명히 고난과 금식은 변화를 줍니다 그러나 진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수준에 도달되느냐? 하는 것이 오늘의 말씀입니다 

[그들이 와서 그분께 말합니다.]

그들이 누구입니까? 바리새인들의 제자들일 수 있죠

[“무엇 때문에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은 금식하지만,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않습니까?”]

지금까지 예수님의 제자들은 금식한 적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금식을 한번도 말씀한 적이 없습니다 이해가 안 됩니다 금식과 고난이 아니면 변화가 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변화의 방법론으로써 금식에 대해 말씀하시지 않으실까? 이해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나중에 내가 없을 때는 금식한다라고 하시지만.....

이들은 변화의 두가지 방법을 알지 못한 것입니다 변화의 첫 번째는 금식과 고난이 맞습니다 하지만 또 한 방법이 있는데 앞으로 나올 내용입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변화되는데 하나로는 되지 않습니다 한 쪽만 생각합니다 고난을 많이 당하고 금식을 많이 하고 기도를 많이 하고 ...... 이것만이 아닙니다 또 다른 방법 이 두가지가 합해져서 온전한 변화를 주는 것입니다 대부분은 진리는 양면적이죠 양면적인 변화를 통해서 우리가 온전케 되는 것입니다 

물론 바리새인의 제자들은 지옥 갔죠 세례 요한의 제자들은 천국에 간 사람도 있었습니다 천국가는 방법에서 금식이 중요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안 되는데 그럼 뭐가 변화를 주느냐? 입니다 아침에 깜짝 놀랐습니다 신00성도님이 희망의 속삭임에 가사를 붙인 것인데 얼마나 영성이 있고 아름다운지 누구도 이렇게 작사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주 영성이 있습니다 우리 찬송가 91장부터 95장까지는 세계적으로 영성이 있는 민요를 게재합니다 물론 이것은 민요는 아니지만 그런 스타일의 곡입니다 

𝄠𝅘𝅥𝅯끝까지 주 따르오리 다짐했을지라도 나 주를 뵈올 때까지 주 손을 의지하리 죄악의 비바람불고 희망도 다 사라져 오 주여 어둔 내 심령 이 생명 건지소서 폭풍속에 주의 빛 주의 은혜 나 오늘도 간절히 바라네......𝆔 박수 부탁드립니다 작사가 아주 잘 되었습니다 사실은 작사문제가 아니라 마음에서 나온 것이고 심령에 은혜가 차 있어서 나온 것입니다 거의 완벽한 작사였습니다 

뭐냐하면 인간의 힘만으로 변화는 안 됩니다 사람은 율법을 통해서 변화받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린 변화지 깊지는 않습니다 기도와 금식을 통한 변화도 한계가 있습니다 결국 우리를 변화시키는 분은 예수님이시고 변화의 종점에 계신 분입니다 변화받기 위해서 우리가 온갖 노력을 기울여도 안 됩니다 왜냐하면 인간을 변화시키는 유일한 존재는 예수님밖에 안 계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변화를 가르친 내용이 제자들을 가르친 내용이고 예수님의 나를 변화시키는 것 외에는 진정한 변화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의 제자는 금식과 율법을 지켰음에도 아무도 천국에 들어가지 못했고 세례 요한의 제자들중의 극히 일부는 천국에 들어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은 유다외에는 천국에 모두 들어갔습니다 

나를 변회시키기 위해서 회개와 애통으로 나갑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아무리 좋은 선생을 만나도 변화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교회와 목사를 만나도 변화에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누가 필요합니까? 살아계신 예수님이십니다 이것이 진짜 기독교 진짜 신교의 원조입니다 만약 이때 계셨던 예수님께서 지금 나에게 나타나지 않으신다면 우리는 구원이 매우 어렵습니다 기독교는 크라이스트교입니다 그 예수님이 실제로 나에게 영으로 오셔서 감동가운데 우리를 변화시키시지 않으면 우리는 죄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합니다 어디 죄에서? 마음의 죄에서..... 

마음의 깊은 뿌리가 변화되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아무리 기도하고 성경읽고 신앙생활을 해도 찬양의 은혜를 받고 작사작곡을 다하고 설교를 잘하고 남들을 변화시켜도 한계가 있습니다 뭐가 그럼 진짜냐?하면 예수님의 현현이 필요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지금도 살아계시지 않으시고 나타나시지 않는다면 결코 우리는 죄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살아계신 예수님을 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 작용하시는 것 그것이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입니다 찾는 것입니다 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우리 삶에 내면에 오시는 것입니다 

저는 성령의 음성은 수없이 들었지만 예수님을 본적도 들은적도 없는 20131228일 예수님이 저한테 오셔서 '교회를 개척하라' 하셨는데 예수님은 하나님과 다릅니다 나를 구원으로 인도하신 예수님 나를 변화시키신 예수님을 만난거죠 만남교회에서 예수님을 만나는데 예수님의 작용을 만난것이죠 하지만 직접적인 만남은 2013년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삶에 임재하셔서 나를 바꾸지 않으시면 우리는 구원에 도달하지 못합니다 

모세의 뒤를 이어 여호수아라는 예수님이 바톤을 이어받죠 율법의 한계를 넘어 요단을 건너 구원이라는 가나안을 주시는 것입니다 구원은 율법의 역사가 아니라 예수님의 역사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셔야 하는데 그냥은 못 오십니다 내가 율법을 지키려고 애를 쓰고 말씀으로 회개 생활하고 금식하며 나가는 성령의 역사가 필요합니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율법대로 살아야지라는 결단과 각오를 주십니다 예수님의 피로 사함받는 회개의 은혜를 주십니다 그러니 그것만으로는 천국에 가지못합니다 예수님꼐서 직접 내게 오셔서 나를 구원에 이르게하는 장면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몽학선생이라는 것이 통과되어야 되는데 이 몽학선생은 짧은 기간이 아니라 긴 기간입니다 내가 성령님을 통과해야 드디어 예수님께서 내게 오셔서 구원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모세가 요단강을 통과시켜주지 못합니다 여호수아가 건너게 만듭니다 예수님은 언제 우리에게 오십니까? 여기 제자들처럼 자기의 모든 것을 버리고 회개도 많이 하고 금식도 많이하여 통과하면 예수님께서 오십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있고 세포가 있습니다 세포가 강하면 바이러스가 못 뚫습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많이 허물어질 때 예수님이 들어오십니다 위에서 본 작사는 아주 신령하죠 그럼 이런 신령한 작사를 많이 하고 찬송을 많이 만들고 하는 과정은 예수님이 오시는 과정에 있는 것입니다 많은 눈물과 금식과 애통의 과정이 있는 것입니다 이 과정이 우리에게 가득 차야합니다 

금식이 부족하면 천국 못 갈 수도 있습니다 금식이라는 단계가 있는 것입니다 금식을 하라 하지마라가 아니라 그 단계가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바로 구약이라는 단계입니다 우리는 고난을 당해야합니다 물론 그것으로 구원받는 것은 아닙니다 회개를 많이 해야합니다 물론 그것으로 구원받는 것도 아닙니다 이런 수많은 회개와 눈물과 금식과 애통과 자기부정과 율법적인 삶이 예수님이 나에게 오시는 근거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과정에서 게으름을 피우는 사람이 있죠  

구원받은 후에는 금식하지 않습니다 그 때는 예수님의 능력으로 가르침을 받습니다 이 양면적인 역사 한쪽에는 금식과 율법과 회개라는 역사 뿐만아니라 주님이 내 안에서 역사하셔서 이끌어주시는 승리의 역사 이 두 개가 공존하는 것이 신약시대이기 때문에 구약과 신약 두 개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로는 구원 못 받습니다 구약을 부정하고는 천국 못 갑니다 거꾸로 구약만으로 천국 못 갑니다 그래서 유대교는 천국에 못 갑니다 신약이 필요합니다 

신약이 꼭 성경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 살아계신 예수님의 현현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들어오십니다 우리 삶에 들어오시고 죄를 이기게 해주십니다 이끌어가십니다 실제로 우리에게 힘이 되어 주십니다 그 예수님이 율법적인 삶을 살게하시고 나를 붙잡는 힘이 되십니다 그래서 마귀를 쫓아내고 의 가운데 살게 해주십니다 이런 실제의 힘이 앞으로 전개될 내용입니다 

교회는 실제로 예수님이 머리가 되셔서 역사하시는 곳입니다 많은 치유센터가 있습니다 그러나 온전한 치유가 안 됩니다 책들이 증명했습니다 인간이 인간을 치유 못합니다 성령의 역사만으로도 안 됩니다 예수님이 역사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이름을 부르고 찾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실제 예수님을 내가 만나는 것입니다 그분이 아니면 누구든지 구원을 얻을 수 없고 유지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바리새인의 제자들과 요한의 제자들이 와서 예수님께 물었죠? 그 해답이 내일 나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금식 안하는 것이 잘못됐다고 하지만 아닙니다 금식뿐아니라 예수님의 파워 두 개가 양면 역사해서 온전케 되는 것입니다

어떤 목사님이 사역하는데 부흥이 안 됩니다 그래서 금식하면서 부흥회를 열었습니다 부흥사로 오신 목사님이 초췌한 목사님을 보시고 이제 밥 먹어하니까 듣는 성도들이 이해를 못하죠...... 금식이 필요할 때가 있는데 금식이 필요 없을 때가 있습니다 애통과 회개가 필요하지만 기뻐하고 즐거워할때가 있는 것입니다 웃어야 할때가 있고요 주님이 역사하시는데 내가 차단하면 안됩니다 기쁨이 올라오는데 스스로 난 기뻐하면 안돼 슬퍼하며 회개해야 돼아닙니다 기쁠때는 기뻐해야합니다 

지난 주 안대기도회에서 전도사님을 안수하는데 찬양이 나옵니다 그런데 난 죄를 많이 지었어라며 자책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즉 우리에게 성령님이 역사해서 금식할 수 있지만 기쁜의 역사가 올 때 받아들이므로 어둠이 나가는 것입니다 구원받았든지 안 받았든지 우리는 성령님의 역사에 그대로 반응해야하는데 성령님은 금식만 주는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꼭 애통만 주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때로는 성령님이 기쁨을 주시는데 그때는 그것을 따라가야 하는데 참고 억지로 회개하는 것은 나쁜 것은 아니지만 좋은 것도 아닙니다 

신앙은 간단합니다 감동에 따라 살면 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에 맞춰 살아가면 됩니다 기뻐하라면 기뻐하고 찬양하라면 찬양하면 됩니다 말씀보라면 말씀보고.....그래서 신앙의 주체는 인간이 되면 안됩니다 예수님이 주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 주체를 따라가면 됩니다 

성도 중에 오래 신앙생활하신 분이 있죠 안대기도회 때마다 나오는 말씀이 틀이 많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금식하시고 애 쓰는데 영이 자라는데 한계가 있습니다 잘 안 자라요 다른 교회나 선교 단체에서 교육받으면 틀이 생길수 있습니다만 이 틀이 완전히 깨져야합니다 틀 때문에 못 자랍니다 어설프게 배운 기존 내용들이 어렵게 하죠 그런데 말합니다 여기도 틀이 있잖습니까?” 틀이 있죠 하지만 더 나은 틀입니다 성장하게하는 틀입니다

초등학교 선생님이 틀이 있어서 가르치죠? 하지만 거기서는 초등과정에서 넘어가지 못합니다 대학원에서는 교수의 가르침이 있죠? 틀이 다르죠 더 고차원적인 틀입니다 그러므로 저차원적인 틀을 버리고 예수님께서 역사하시는 틀에 내가 온전히 올인하면 됩니다 

영적으로 성장하려면 우리의 기본적인 틀을 무너뜨려야 하고 그때그때 임하시는 성령님의 감동의 틀에 따라가면 됩니다 우리가 성장이 안 되므로 구원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많은 성장을 통해 구원에 도달되는 것입니다 내가 아무런 영적 노하우나 노력이 없을지라도 성령님의 감동에 나를 맡기면 많은 성장이 이뤄지고 좋아지게 됩니다 이제 우리는 그 감동을 따라야합니다

마치겠습니다 

사복음교회 박경호목사의 헬라어번역성경 마가복음 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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