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복음교회 박경호목사의 헬라어번역성경 마가복음 강해 43절
사복음교회 박경호목사의 헬라어번역성경 마가복음 강해
43절
곧바로 예수님께서 그들이 이렇게 속으로 의논하는 것을 그 분의 영에 아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왜 너희 마음에 이것을 의논하느냐? 중풍병자에게 '죄들이 네게서 사해졌다!' 라고 말하는 것과 또는 '일어나 네 침대를 가지고 걸어라!' 라고 말하는 것 중 무엇이 더 쉽겠느냐?
오늘은 마가복음 43절 말씀입니다. "곧바로 예수님께서 그들이 이렇게 속으로 의논하는 것을 그분의 영에 아시고" 다른 사람의 생각을 안다? 어떻게 알까요? 우리 영으로 아는거죠. 투시라고 하기도하는데, 사실은 예언의 은사죠. 예언의 은사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전하는 것도 되고. 예언의 은사는 다른 사람의 성령님에 위반되는 다른 사람의 생각을 알기도해요, 예언의 은사는 성령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에 맞는 생각도 아는 그런 은사를 말합니다. 그래서 예언의 은사 중의 하난데, 예수님은 예언의 은사가 아니라 예수님은 전능하시니까 아시는거죠.
그래서 생각을 아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그 어떤 사람은 잠을 자면서도 듣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눈 뜨고도 안 듣는 사람이 있죠. 우리 교회 최00성도님이 그런--, 이러고 있으면서도{졸면서도} 들으시더라고요. {그러는 중에도} 영이 자라시더라고요--. 어떤 사람은 쳐다보면서도 영이 안 느는 사람이 있어요. 우리 영이라는 것이 신기한게, 우리 영이 그렇게 흡수성이 있고. 비흡수성이 있는데, 예수님이 말씀할 때, 그 말씀을 흡수하면 무조건 자라게 돼있습니다. 영이. 100%예요. 그런데 비흡수성은 돌짝 같아서, 이게 아무리 얘기해도 안 들어가요. 마음으로 반항을 합니다. 비흡수성이 있는데, 비흡수성인 사람은 우리에게 은혜가 쏟아져도 안 자라요. 그래서 각자 개인 개인이 하나님의 말씀이 임할 때, 내가 '정말 오늘 은혜를 받아야겠다'는 그런 절실한 게 있으면, 어떤 경우에도 영이 성장합니다.
반대로 아무리 우리가 신령했다해도 '내가 받나 봐라' 하면, 절대 영이 안 자라요. 그 차이가 -처음에는 차이가 안나요-나중에, 10년 지나면 그 때 결론이 나는거예요. 그 때는, 영이 안 자라서 쭉 줄어서 추락하는겁니다. 결국은 인생은 뭐냐? 자기가 결정을 하는겁니다. 인생을..... 자기가...... 내가 진리를 수납하느냐? 진리를 거부하느냐가 결정하는데, 그 수납과 거부를 우리 몸은 몰라요. 우리 영에서 압니다.그거를..... 영에서.그렇게 어려운거예요.
우리 영에서 하는 내용들을 우리 스스로가 모르는겁니다.먼저 우리가 번역하면서 '사라가 속으로 웃었습니다.' 스스로 '내가 노인 되가지고 낳겠는가?' 웃으며 말했다고 하늘의 하나님이 뭐라고 하니까, 사라가 너무 두려웠어요. '난 그렇게 웃은 일이 없는데.' 뭐예요? 영으로 보신거예요. 내 지정의는 몰라요. 웃으니까, '안했는데요.' 하니까,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아니야. 웃었어." "네가 웃은 걸 모르는거야." 라는거예요.
자,중요합니다. 여기 있는 이 서기관들이 마음 속에서, 이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자녀야! 네 죄들이 사해졌어!" 라고 말씀을 선포했을 때, 서기관들이 마음에 의논했다 그래요. 의논. '이 분이 신성모독 아닙니까?' '한 분 하나님 외에 누가 죄를 사할 수 있는가?' 이 말을 생각했을까요? 아니라는거예요. 그들의 영이 한거예요. 영이. 우리는 영이 말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압니까? 우리가 죽은 다음에 말 못합니까? 해요. 영이 빠져나가면 뇌가 여기 있잖아요. 천국 가면 말합니다. 뇌가 여기 있는데요? 말해요. 영이. 우리 영이 말해서 예수님이 아시는데, 그 때 어떤 언어일까요? 천국의 언어였어요. 이 언어(입으로 하는)는 아니었어요. 우리는 한국어 쓰지않아요. 천국 가면 천국의 언어를 씁니다. 천국의 언어를 말합니다.
우리 말이, 뇌를 통해서, 지정의를 통해서 하는 말 만 말이 아니라 우리는 내가 웃는 웃음이 뇌를 통한 웃음 만 있는게 아니라, 내 영도 웃기도 하고요, 영이 기뻐하기도 하고요, 영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 안에 내장돼 있어요. 영을 짚어주고 영을 알려주는게 그게 뭐예요? 신앙생활이예요. 신앙이예요. 신앙은 이 현상을 말해주지 않습니다. 현상을. 토요일 안대 기도회 때, 때로는 많은 것을 전하는데, 어제 한 성도에 대해서 "내가 너를 막 용광로에 달궜다 뺐다 한다." 그런 가운데 고통이 있다. 그러면 그 외적인 고통이 있나? 아니예요. 영적인 고통이 있는거예요. 외적으론 잘 안보이죠.
영의 세계 속에 있는 내용들을 우리가 우리 말로, 성령의 음성으로 풀어주는겁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예배를 잘 드렸는데도 불구하고도, "예배를 못 드린다"고 하는 경우도 있구요. 신통치 않게 하고도 칭찬 받는 경우도 있구요. 우리 영은 눈에 안 보이는데, 이 영을 뭐예요? 예수님은 진단하신거예요."어, 쟤들이 지금 내 말을 의논하네." 하고 알아낸거예요.
그래서 이 눈에 보이는 신앙생활 외에, 안 보이는 영을 진단하는 것을 영분별이라고 합니다. 영분별. 영분별은 뭐냐 하면, 설교도 잘하고, 죄도 짓지 아니하고, 깨끗한데, 지옥 간다고 선언하는거예요. 왜? 영을 보고요. 영분별은, 그저 신앙생활이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칭찬하시는겁니다. 영분별은, 쉽게 말하면 영을 판단해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영을 분별 하시는데,"어, 지금 내말을 의논하는구나." 아는겁니다. 자, 그리고 거기에 대해서 지금 답변해 주시는데, "왜, 너희 마음에 이것을 의논하느냐?" 자,서기관들이 의논했죠. 우린 자연히 인식 못 할 수도 있습니다.
"의논하느냐? 중풍병자에게 '죄들이 네게서 사해졌다.' 라고 말하는 것과 또는 '일어나 네 침대를 가지고 걸어라' 라고 말하는 것 중 무엇이 더 쉽겠느냐?" 자, "죄들이 사해졌다." 선포하셨어요. 그런데 또 다른 말이 무엇이 있습니까? "너 이제 침대를 갖고 걸어" 뭐가 쉽습니까? 어떤게 쉬운 것 같아요? 침대를 갖고 일어나는게 쉽습니까? 죄를 사해주는게 쉽습니까? 어떻게 해야됩니까? 죄사함이 쉽습니까? 침대를 갖고 일어나는게 쉽습니까? 어느게 쉬울가요? 똑같은거예요. 똑같은거. 우리 영은, 내가 죄를 사함 받으면, 침대를 들고 일어날 영적인 힘이 생깁니다. 영적인 힘은, 죄를 사함 받으면 힘이 생겨요. 지금 이 장면은 뭐냐하면, "왜 영력이 없느냐? 왜 죄를 이기지 못하느냐? 그 이유가 뭔지 아느냐? 너희가 죄사함 받으면, 똑같은거야. 너희는 영력이 있어가지고 죄를 이길 힘이 생길 수 있어," 그 말씀입니다.
우리는 죄와 싸움을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때로는 죄 앞에 무너집니다. 불순종의 삶을 살아갑니다. 그런데 회개 안하고 버티고있어, 버티고 회개 안하고--, 그렇찮아요? 여기 산상에 올라오면. 회개할려고 애를 쓰면 회개가 되는데, 꼭 버팁니다. 어떻게 됩니까? 나중에. 죄를 못 이겨요. 죄를 못 이기는 양상하고, 내가 하나님 앞에 회개할려고 애쓰는 양상이 같은거예요. 우리가 회개할려고 애를 써야되는데, 회개의 은혜 앞에 이 속에 반항감이 있어가지고, 못합니다. 그사람 결국은 나중에 죄를 못 이깁니다. 인간은 불순종이 죄라 그러죠. 불순종. 그 불순종이 어디서 왔느냐? 자, 아담이 범죄하지 않았으면 영원히 같이 순종하며 살 것입니다. 범죄한 다음부터 우리는 다 죄 아래에서 살아갑니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 죄를 이기느냐예요. 드디어 우리는, 내가 죄를 사함 받으면 죄를 이길 힘이 생긴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회개하는 과정가운데 반드시 죄사함이 필요한거예요. 회개는, 죄에서 돌아서면 회개죠. 그 것만이 회개가 아니예요. 왜 회개가 아니냐? 죄를 사함 받지않으면 절대 죄를 못 이기기 때문에 그것만 가지고 되는게 아니기 때문에 죄를 못 이깁니다. 그래서 회개는, 죄를 사함 받으면서 죄에서 돌아서는 그것이 회개인겁니다. 두개가 같이 가야됩니다.
많은 분들이 회개를 이해할 때, '나는 나쁜 일 안 할꺼야.' 그거 회개 아니예요. 그렇게 하는게 회개가 아니예요. 이제가지 해온 나쁜 죄를 반드시 사함 받아야만 나쁜 짓 진짜 안하게 돼있어요. 죄를 사함 받는 것은, 내가 침대를 들고 일어나는, 뭐예요? 중풍병으로부터의 해방. 드디어 내가 더이상 죄를 짓지않는 기제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같은거예요. 똑같은거예요. 그것이. 그래서 죄를 사함 받지않는 모든 예배, 그건 의미가 없는겁니다.
우리가 헬라어를 공부하고 기도시간을 갖습니다. 왜 가질까요? 성경을 달달 외워도 인간은, 죄에서 못 벗어나요. 성경을 깨닫기를 잘해도, 죄에서 못 벗어나요. 왜 못 벗어나느냐? 죄를 사함 받는 것이 없으면 우린 죄에서 벗어날 수 없는겁니다. 왜 이런 수많은 원어성서원들이 의미가 없느냐? 왜 원어 연구하는 것이 의미가 없느냐? 그들은 연구만 했지. 죄를 사함 받질않아요. 원래 성경은 우리를 정결케하고, 우리를 책망하는 것이 성경입니다. 책망하는 것. 성경은. 우리를 의로 교육하는거예요. 그런데 의로 교육 받으면서도 회개를 안해. 뭡니까? 결국은 지옥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아무리 많이--, 박식해서 온갖 지혜를 다 얻어도 천국 못 가는겁니다. 왜 못 가느냐? 죄를 사함 받는 것이, 그것이 옳습니다. 성경공부를 왜 할까요? 그것은 성경을 공부할 때 뭡니까? 내부에 찔림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찔림이 옵니다. 찔림이 우리에게 애통을 주기 때문입니다. 안 찔리는데요? 가짜예요.그건 공부를 잘 못한거예요. 성경을 공부해. 찔리질 않아!. 맨날 평안해. 공부를 뭐하러하느냐? 운 적 없어요. 설교는, 성경은. 나를 책망하는거예요. 원래가. 아예 잘못을 까발리는거예요. 내 중심을 까발리는거예요.
예수님이 부자청년한테, "네가 가진걸 다 팔아!" 그게 성령의 음성이지 않습니까? 지는 그걸 몰라. 못 알아들어. 자기는 진짜 예수를 사랑한 줄 알어. 이해가 되시죠? 자기가 예수를 사랑한 줄 알고있고, 자기는 된줄 알고있는거예요. 그러니까 지옥 가는거예요. 예수님께서 "팔아, 넘겨 줘!" 하면 '아, 내가 못했구나.' 해야되는데, 뭐예요? 그럴 자각이 없는거예요. 하나님 말씀을 들어도, 내가 뭘 잘 못했는 줄 모르는거예요. 그러니까 회개가 안 터지는거예요.
회개할려고 애를 쓰지도 않고, 말씀을 들으면서도 자기 문제는 모르고 자꾸 머리에만 쌓아두는거예요. {머리에 자꾸 집어넣는건}이건 의미 없어요. 오히려 이거는 회개를 방해합니다. 왜? 아집 때문에. 어린아이들이 순수하죠. 어린아이들한테 말씀을 들려주면, 말씀을 마음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성장이 빠릅니다. 그런데 나이 먹어서 오래 받으면, 말씀을 자꾸 머리로 받으려고그래요. 그래서 그냥 말씀을 들은 내용이 뭡니까? 깨달았다는거예요. 깨달음이 의미 없어요. 깨닫는 것은요.
여기 있는 중풍병자는 말씀을 다 아는 사람이예요. 이 사람도. 말씀을 몰라서 누워있는거 아니예요. 말씀을 알지만, 그 모든 말씀 앞에, 그가 정말로 진심으로 회개의 마음으로 돌아서서 애통이 터져야 되고, 회개의 삶이 안되기 때문에 그런겁니다. 그런데 다행이요, 중풍병자가 나중에 회개가 이루어지는거예요. 그러니까 회개가 열려서 드디어 온전한 회개가 되니까, 예수님께서 "그래, 너의 죄가 사해졌다!" 하고 선포하시는거예요. 그래서 드디어 뭡니까? 다시 힘을 얻게 됐는데, 그게 바로 치료의 힘을 얻는겁니다.
어제 그분이 머리가 아프다 그래요. 밥 먹으면서 전도사님이 '목사님 원거리 기도 해주세요.' 기도하는데, 조그만 사항들에 대해서 많이 신경을 쓰시는 것 때문에 병이 안 떠나는거예요. 제 진단을 말했읍니다. 그래서 기도하는데, "그 조그만 일들에 대해서 신경 쓰지 말라"는겁니다. 그러면 조그만 일들을 신경쓰는게 죄냐? 그겁니다. 죄예요. 죄는, 죄는 하나님이 내게 원치 않는게 죄예요.
어저께 예언기도할 때, "웃어라"그러죠. 안 웃는게 죈가? 안 웃는게 죄예요. 왜? 죄란 개념은, 내가 죄로 정한게 죄는 아니예요. 죄는, 하나님이 내게 원치않는 것. 자 이제 배우자끼리 있는데, 아내가 볼 때 남편이 오줌을 깔기고 싸. 그러면 , 아내가 '앉아서 싸라' 고, 그러면 남편 입장에서는 '아 이건 내가 본능적인데, 해야되는건가?'
자, 죄의 개념은, 죄의 개념은 다른 사람이, 하나님이 나에 대해서 고치길 원하는 그 내용이 그게 죄가 되는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잘 안되는게 뭐냐하면, 목을 곧게 하면 안되요. '아, 내가 맞는데--,' '아, 내가 어때서?' 그러면 회개가 안되요. 회개는, '어째서?'가 아니고, '아 바꿔야겠다.'라고 플라이어블pliable 유순한 마음으로 있을 때, 회개가 됩니다. 우리는 고칠게 엄청 많죠. 엄청 많아요. 고쳐도 고쳐도 끝이 없어요. 작업자가 말이죠, 처음에는 몰랐는데, 나중에는, 왜 이렇게 고칠게 많으냐? 그래요. 여기도 고쳐야되고, 또 고칩니다. 또 고칩니다. ---, 자동차가 굴러가는거예요. 안 고치면? 터져서 버리는거예요.
이 중환자가 왜 살아났느냐? 처음에는 회개 안 했겠죠. 나중에 회개에 들어갑니다. 드디어 고쳐져서 힘을 얻어서 다시 또 싱싱하게 되는겁니다. 우리도 살면서 조그만 많은 죄를 짓고 살아갑니다. 그 죄들을 가볍게 보면 안됩니다. 우리는 그 죄를 가지고 날마다 와서 성전에 와서 회개생활 하는겁니다. 아침에 피곤할 때, '아, 어디 놀러갔다 와야겠다.' 그런 마음이 제가 들었어요. '피곤해. 가서 쉬어야겠다.' 그런데. 아침에 기도하면, '아, 역시 기도가 최고야.' 왜요? 기도할 때 어둠이 좀 나갔으니까. 기도할 때 죄가 좀 나갔으니까 . 이게 최고의 약이예요. 다시 또 나에 대해서 만족을 누립니다.
자, 우리가 무엇을 얻습니까? 세상에서. 우리는 내게있는 어둠을 몰아내는 일과, 내게 있는 죄를 사함 받는 일이 우리에게 최고 가치있는 일인 것을 우리는 알아야합니다. 왜? 이것이 내 생명을 유지하게하고, 내 생명, 내 영에서부터 기쁨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행복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영이 소생되기 때문입니다. 육은 살아있어도 영이 맛이 가면 끝난거죠. 육이 건강해도 영이 중요한데, 영이 늘 살아있는 상태, 이게 생명입니다. 이 생명, 마치 자동차가 잘 굴러다니는 것--,
지난 며칠 전에 어떤 분이 자동차가 멈췄대요. 하필 그 날 저녁 설교 제목이 '오늘을 기뻐하라!'는거였어요. '내가 설교 잘 맞춘다 ' 하여간 고쳤대는데, 그 자동차가 고칠 때 비용이 들어갑니다. 내가 고쳐야할 부분이 만약에 100만원 어치다. 그러면 그 분량을 고쳐야됩니다. 10만원 들어가면 안 고쳐져요. 우리가 회개의 분량이 내 생명이 살아가는데, 내 생명이 소생되는데, 내가 회개할 그 분량이 있습니다.
그런데 10만원 정도 회개한 다음에 '나 회개했잖으냐?'그거예요. '너 100만원 들어가야 돼. 회개의 분량이--.' '네가 소생하자면 100만원어치 회개의 분량이 되야 돼. 이 세상에서는 계산하면서 영적으로는 계산 안할 수 있어요. '아,나 회개 많이했는데!' 웃기지 마. 너 어리석어.' 그리고 영이 소생 안된것 보고 '난 왜 이럴까?' 이러고 있어요. 회개 더해야 돼!. 그걸 같고 어딜 디밀어 나한테. 요만큼{두손아귀 정도} 했어요. 아니 이만큼{두팔 벌린 양 만큼}해야 되는데. 그러면서 자기는 왜 안되냐 그거예요. 안되긴, 더 해야지. 세상에서는 빠삭하면서, 공식이.
세상에서는 공식이 있지않습니까? 100만원 고칠 부분이 있으면 고쳐야 굴러가는거예요. 그거 덜 고친거예요. 중풍병자가 지금 누워있는데, 얼만큼 회개해야 일어날까요? 그 중풍병자를 일으킬 정도의 분량의 회개가 이루어져야 됩니다. 그것이. 우리는 각각 영적인 병이 있죠. 그러면 우리는 그것을 고칠 만큼의 완전한 회개가 이루어져야 된데도요. 안되면요? 안 되는거예요. 세상에서도 값을 다 지불해야되는데, 조금 지불해놓고, 안된다는 사람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런 일이 많습니다.
'내가 교회를 1년 다녔는데 안 된다' 고요. 더해야지!. 세상에서도 학사과정 4년 걸리는데, 세상에서도 박사과정 5년, 7년 걸리는데. 그런 사실을 알면서, 이상하게 이 신앙세계에서는 굉장히 얌체 생각이 있어요. '야, 내가 교회에서 내가 1년 동안 했는데,' 1년에 세상에서 할게 뭐 있어요? 전문대도 2년 과정이예요. 전문대도, 아,이상해. 이해가 안됩니다. 하나님의 신앙의 세계에서는 자꾸 아끼려고 깍을려고 그래. 세상에서는 뭐예요? 세상에서는 치룰거 다 하면서.....
세상에서도 우리가 의사 되려면 10년은 치뤄야됩니다. 하물며 천국에 들어가는데, 영생을 얻는데, 왜 이렇게 인색하냐 그겁니다. 한 1년, 몇년 한것으로, '내가 안된다'고 얼마나 그러는지 모릅니다. '나 안됐는데요?' 안 되긴 뭘 안돼. 그것 가지고 뭘해? 그거가지고. 이 때까지 회개의 분량이 얼마나 됐다고? 우리는, 내가 지불해야 할 회개의 분량을 다 해내야됩니다. 그래야 우리에게 치료가 일어나는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세계에서 하나 차이예요. 자기가 됐다고 하는 사람들 다 지옥 갑니다. '내가 이렇게 많이 했는데' 하긴 뭘해요? 그거 가지고...... 세상에서도 초등부부터 고등부까지 12년 공부합니다. 그래야 사회생활 합니다. 하물며, 영적인 세계에서는 그렇게 인색합니다. '내가 이렇게 헌금 많이 했는데요.' '내가 이렇게 회개했는데요.' 분량이 더 차야죠. 회개가, 분량이. 그 분량을 채우면 뭐예요? 하나님 앞에 이수가 되는거래도요. 우리가 돈 낼 때, 2천만원 짜리 물건이 있는데, 1천9백만원으로 됩니까? 안돼요,백만원 차이로 안되는거예요. 천국이 그런거예요. 천국은, 내가 그것을 병을 이길 때까지 가야되는거예요.
세상에서도 백만원 안냈다고 못 받을 때 화 안내면서, 어떻게 영적인 세계에서 자기가 덜 되어서 자꾸 됐다고 생각하니까, 그게 이해가 안되는거예요. 우린 더해야 된데도요. 더 투자해야 된데도요. 더 회개해야 된데도요. 언제까지? 중풍병에서 일어날 때까지 회개가 이루어져야 됩니다. 그래서 죄를 사함 받는 것과 이것은 똑같은 현상이예요. 중풍병은 영의 병이죠, 똑같은거예요. 다른게 아니예요. 그래서 똑같은 정도로 쉬운거예요. '일어나라!' 똑같은거예요. 그래서 죄를 사함 받는 것과 {중풍병에서 일어나는 것은} 똑같은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서기관들은 영계의 원리를 몰랐기 때문입니다. 원리를 뭘 모르느냐? 죄사함도 모르고, 더 나아가서 죄를 이기는 힘도 모르는거예요. 죄에서의 승리를 모르는거예요. 우리가 오늘날 왜 대환란입니까? 오늘날이 대환란인 이유는 다 죄를 못 이기는게 대환란이예요. 죄를 못 이기는게 대환란입니다. 다 죄에 지는거예요. 왜 짓느냐예요. 왜 짓느냐? 죄를 사함받지 못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죄를 사함 받는 것을 알지 못해요. 더 나아가서 죄를 사함 받는 분량이 다 차야함을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분량이 차야됩니다.
다윗은 1년동안 회개합니다. 뭣 때문에? 한번의 그 간음죄 때문에. 1년동안 회개해서 드디어 다윗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죄를 지었을 때, 그 죄에서 회복되는 분량이 있습니다. 그래서 근신하라고 합니다. 근신하라고. 어떤 죄를 지으면 어떤 죄는 하루 회개하면 되요. 어떤 죄는. 어떤 죄는 일주일 회개하면 됩니다. 어떤 죄는 한달 회개하면 됩니다. 어떤 죄는 10년 회개해야됩니다. 죄는, 내가 지은 죄에 따라서 내 영이 소생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있고요, 분량이 있어요. 눈물의 분량이 있습니다. 어떤 때는 눈물이 한없이 쏟아집니다. 그리고 그 눈물이 한 컵처럼 쏟아질 때, 그 때 그 눈물이 쏟아지게한 죄가 있대도요. 아니면 소생하지 못합니다. 다시 또 우리는 죄를 지을 뿐입니다.
오늘날 전세계는 대환란입니다. 왤까요? 다 죄에서 쓰러집니다. 다 쓰러져요. 다시는 못 이깁니다. 이유가 뭐냐구요? 오늘날 예배가 다 뭐예요? 은사예배. 오늘날 예배가 뭡니까? 말씀연구. 오늘날 예배가. 오늘날 예배가 그냥 하는 기도. 오늘날 예배가 다 표적들, 스토리들. 다 돈 많이 버는 스토리. 이러니까 전부 다 지옥 가는 것입니다. 아무 예배도 죄사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예배가운데.....
그리고 죄사함이 뭔지 몰라요. 이게 중요한걸 모르는거예요. 죄사함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죄를 지으면서 교회 와서다른거 찾는거예요. 병 잘 고치면 신령하다 그래. 저는 속으로 그럽니다. '또라이' 어떻게 병 고치는 사람이 신령한 사람이야. 그 사람이. 이게 인간이냐? 이게. 이게 정상적인 두뇌냐? 그--영력? 영력이 뭔데? 영력은, 죄를 안 짓는 힘이 영력이예요. 그런데 이런 사람이 꽉 차 있어요. 전세계에. 아니 신앙이 뭐냐? 신앙이? 신앙은 내것을 이루는게 신앙이 아니예요.신앙은,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게 신앙이예요. 신앙은. 그런데 기껏 인간이 좋아하는걸 하는게 신령하다는거예요. 어떻게 그게 신령한거냐? 그게? 그 구조가 어디서 왔냐? 그 구조가. 어떻게 누구를 잘 고치면 신령한거냐 그게? 신유은사고 그건. 예수님 이름으로 낫는거고...., 아 도저히 답이 안 나와요.
신앙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게 신앙입니다. 신앙은, 지은 죄를 회개하는게 신앙입니다. 신앙은, 다시 또 내가 힘을 얻어서, 다시 또 죄를 이기도록 의뢰하는게 신앙입니다. 이게 신앙의 본질이예요. 신앙은 계명대로 사는 것입니다. 신앙은 눈에 안 보여요. 눈에 보이는 것은 뭡니까? 신앙이 아니고 뭡니까? 양념가루들이예요. 양념가루들..... 그건 신앙의 본질이 아니예요. 그래서 신앙은 안 보이는거예요.
신앙은 은사도 아닙니다. 은사를 가지고 돈을 벌었을 뿐이지, 실은 본질도아니예요. 우리는 신앙의 본질로 회복되야 되는데, 이 4복음서는, 본질을 말해줍니다. 그래서 우리가 영적인 중환자가 질병에서 드디어 일어납니다. 이제 내일을 위해 일어납니다. 일어나긴 쉬워요. 뭐가 어려운 것이냐? 죄사함이 어렵습니다. 이걸 얻으면 드디어 우리 영이 소생해서 일어나서 활보합니다. 어떻게 우리가 항상 추락하지 아니하고 항상 우리가 늘 성취할 수 있을까요? 만약 우리에게 죄사함이 매일 존재한다면 우리는 항상 활보할 수 있습니다. 만약 죄사함이 없다면 뭡니까? 우리 영은 언젠가는 죽게되 있고요. 우리 영은 마귀에게 쓰임 받고 추락하게 되있습니다.
죄사함은, 그래서 신앙에서 메인파트main part 그래서 누가복음은 뭐예요? 누가복음이 죄사함의 조건-회개가 되는겁니다. 회개는, 죄에서 벗어날 뿐만 아니라 죄를 사함 받는 회개가 동시에 임합니다. 이 죄사함, 죄사함은 신앙의 중요한 축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개신교에서, 전세계 기독교에서 사라진 것입니다. 그래서 개신교가 다 맛이 갔어요. 모든 모임들이 뭡니까? 웅변적인 설교를 하는데 조회수가 16만, 18만 나가는거예요. 그런데 의미가 없어요. 그 내용들이. 도대체 의미가 없어요. 왜? 죄를 사함 받는 설교가 아니니까 의미가 없는겁니다. 그래서 오늘날 개신교가 대부분 타락한거예요. 어떤 좋은 설교, 그거 중요하지않아요. 어떤 능력, 중요하지않아요. 뭐가 중요합니까? 죄사함이 중요한 것입니다.
마치겠습니다.
사복음교회 박경호목사의 헬라어번역성경 마가복음 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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