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복음교회 박경호목사의 헬라어번역성경 마가복음 강해 36절

 사복음교회 박경호목사의 헬라어번역성경 마가복음 강해


 36절

그 분이 그에게 경고하시고, 곧바로 그를 보내셨으며, 그에게 말씀하십니다. "살펴 아무에게 아무 것도 말하지 말라. 반대로, 가라, 자신을 제사장에게 보여라, 그리고 너의 깨끗함에 대하여 그들에게 증거하도록 모세가 명령한 것을 바쳐라."

 오늘은 마가복음 36절 말씀입니다. "그분이 그에게 경고하시고" 경고하시고? 경고라는 말은 쉬운 말은 아니죠. 단어가. 경고는 뭐냐하면, 잘못된 길을 예고해서 막거나 또는 오던 길로 돌아오게 하기 위해서 하는 좀 센 말들이죠. , "경고하시고, 곧바로 그를 보내셨으며, 그에게 말씀하십니다." 이제 경고의 내용이 이것입니다. , 지금 모든게 순조로웠습니다. 문둥병 걸려서 하나님 앞에 죄를 사함 받는 것을 배우고, 온 몸을 하나님께 드려서 "너 깨끗해졌다" 고 선포를 받은거예요. , 이 상태에서 "살펴 아무에게 아무 것도 말하지 말라." 아니 왜 그럴까요? '난 깨끗해졌고 좋아졌는데, 내가 증거해야 되지않습니까?' 아니라는 거예요. 뭐가 올 때까지? 그 다음 일이 진행 될 때까지.우리는 하나님께로 말미암아 어떤 큰 은혜를 받거나, 영적인 진보를 이룰 때 우리가 그것을 나누고싶은 마음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는 그런 경우 우리는 절제해야 됩니다.

 내가 예언을 받았어요. 예언을 해주고싶어요. 그런데 하면 안되는 거예요. 내가 통변 받았어요. 남에게 해주면 안돼요. 내가 신유의 은사가 있어요. 해주면 안돼요. 일반 교회에서. 왜냐? 목사라는 인도자에 의해서 허락을 받아야 됩니다. 이해가 되시죠? 우리가 어떤 은혜를 받을 때 그 은혜를 나누고싶은 마음은 다 있죠. 그래서 막 음악이 나올 때 막 뛰쳐나가고 싶죠. {믿습니다. --해 주십시요.} 그래서 막 {믿음으로 합시다} 하면 안되는거예요.

 날 담당하는 목사에게 허락을 받아야됩니다. 그것이 하나님 뜻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옳다 할지라도, 그것이 정당하다 할지라도, 그것이 맞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 상태에서 담임목사에 대해서 전권을 위임했다는 사실이 매우 중요합니다. 왜 교회가 혼란스럽냐하면 이런거예요. 교회는 진리의 터전이고 예수님을 통해서 형성되었어요.예수님께로부터 음성이 들려왔어요. "너 이제 누구에게 기도해줘라!" 감동 받았어요. 그러면 가서 머리를 붙들고 안수합니다. {샬라 샬라--} 그리고 나았어요 그 병이.그러면 우리 사람들은 '. 신령하다.'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반이예요. 오히려 그것은 교회를 엎어버리는거예요.거꾸로예요. 교회를 엎는거예요.

 하나님 나라는, 무질서가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는 질서 속에 있는데, 세운자라는게 있어요. 세운자. 세운자가 영성이 없을 수도있고요. 세운자가 떨어질 수도 있어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세운자를 중히여겨요. 사무엘이라는 사람이 어릴 때부터 엘리라는 지도자에게 교육 받는데, 엘리가 심지어 술에 취했다고 느꼈던 한나에 대해서 선포합니다. "평안히 가라!" 목사예요, 근데 목사가 선포합니다. 사무엘에게 "하나님 음성이야."하고 말해줍니다.

 이 세운자는, 하나님께서 항상 시대마다 사람을 세우는데, 그 세운 자가 같은 교회 내에서는 일단 목사를 세웁니다. 근데 때로는, 전도사가 신령할 수도있고요. 때로는 예언자가 신령할 수가 있어요. 신령하면. 그 때 우리는 경계해야됩니다. 왜냐면, 하나님은 질서를 중시하기 때문에, 그 목사가 결정이 잘 못됐다 할지라도 결정을 따라가는거예요. 근데 말합니다. "반대로 가서 자신을 제사장에게 보여라!" 제사장은 예배인도자죠. 예배인도자. 물론 이것은 율법에 있는 내용이예요. 그런데 율법적인 내용 때문만은 아니라는 사실이예요. 우리가 어떤 영적인 증진이 있을 때는, 항상 담임목사와 연관관계가 돼야됩니다.

 '어떤 꿈을 꾸었습니다.' '어떤 환상을 보았습니다.' '어떤 음성을 들었습니다.' '어떤 결단을 했습니다.' 그것이 담임목사에게 교류가  안되며면 상당히 영적으로 열매를 맺히기가 어려운거예요. 내가 누구를 예언을 해서 도움을 받았다 할지라도, 그 도움이 일시적인거고 부분적인거거든요. 내가 누구를 고쳐줘서 나으면 좋은거지만 뭐예요? 그것도 일시적인 거거든요. 그게 본질이 아니거든요. 그래서 항상 성도와 목사는 이렇게 영적인 관계가 형성되어서 영적인 모든 내용이 이렇게 연결 되어야됩니다.

 물론 전도사님이 완벽한건 아니예요.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세웠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를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사장에게 보이고. "그리고 너의 깨끗함에 대하여 모세가 명령한 것을 바쳐라." 원래 문둥병자는, 진영에 들어오려면, 깨끗함을 보여서 의학적인 진단을 받죠. 제사장한테. 옛날엔 의사가 없었으니까. 검사합니다. 깨끗해 졌다고 의학적으로 진단 내려서, "너는 깨끗해졌다"고 선포를 받는거예요. 의학적입니다. 율법에 있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그것 만이 아니라는거예요.

이것은, 우리의 깨끗함에 대해서 하나님도 있지만 나를 영적인 지도하는 자와 영적 관계 속에서, 그것이 내가 예배에 보고가 되는거예요. 보고가. 물론 제사장은 영내에 들어올 수있도록 권한을 주죠. 영내에 들어올 수있죠. 하지만 이 영적인 모든 내용들이 담임목사와 보고됨으로 말미암아 모든 영적인 내용들이 영적으로 안정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걸 제도화시킨 이유는 딴게 아닙니다. 그렇찮아요? 제사장이 아니고 의사일 수도 있었어요. 원래요. 그런데 의사 안 세워요. 의사가 없었기 때문에? 그 것 때문만은 아니예요. 영적인 병을 의미하기도 하고요. 동시에 뭐예요? 이 목사에게, 그런 것을 권한을 주는거예요. 우린 몸이 아프면, 사람은 일단 병원에 갑니다. 그런데 그것은 좀 지혜롭지 않은거예요. 아플 때 목사에게 가는게 훨씬 지혜로운거예요. 그럼 목사가 뭐합니까? 병원 가라고합니까? 아니예요. 목사가 병원 가라고 하든지 중보하든지, 치료해줍니다. 훨씬 지혜로운거예요.

 우리가 이 세상에 살 때, 목사와 거리가 많은 경우들이 있어요. 대교회예요. 대교회는 목사와 거리가 있습니다. 중간에 전도사나 부목사가 있어요. 그런데 이것은 좋은게 아니예요.원래 세운자가 모든 영혼을 담당해야만 건강해집니다. 이런거예요. 내가 대교회 가면 내 영은 사실은 불안한거예요. 그 부목사나 전도사를 어떻게 신뢰할 수 있겠어요. 영적인 실력을. 불완전한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담임목사가 모든 사람을 지도하는게 맞는거예요.

 초대교회는, 사도 12명이요 모든걸 다 관장합니다. 12명이. 모든걸 관장해요. 왜요? 그게 맞는거예요. 지금은, 따로 전도사가 일하죠. 그건 옳은게 아니예요. 왜요? 그 전도사는 목사하고 다르거든요. 그래서 뭐예요? 지금 제사장에게 가야죠. 레위인한테 가면 안되죠. 제사장이 바쁘다 할지라도 제사장이 모든걸 관장 해야돼요. 모든 내용들을. 담임목사가 모든걸 관장할 때 건강합니다.

 베다니의 어린 성도님들이 영격이 건강하죠, 왜냐하면 저한테 철학이 있어요. 뭐냐하면 우리 예배에 있는 분들은 노인이든 어린이든 제가 다 관장해야 한다고 믿고있는겁니다. 말씀이든 뭐든지, 찬양이든, 왜냐하면 제가 어릴 때 성장할 때, 대부분 신학을 전공하시고, 그분들이 전도사로 인도해주셨습니다. 그런데 내용이 많이 틀려요. 목사하고 다르더라고요. 내용들이. 쉽게 말하면 어릴 때 교회생활했는데, 전도사님이 인도해 주시는데, 많이 혼선이 있는거예요. 만약에 내가 간 교회에서 어릴 때부터 목사님한테 인도 받았으면, 훨씬 영이 좋았을 것입니다. 그렇죠?

 그래서 저는 지론이 그거예요. 담임목사가 그 성도들을 모든 예배를 관장해야되고--, 일반교회는 사람을 보내죠. 보내서 심방가서 예배 인도하라 그러죠. 예배인도를 아무나 시키는게 아닙니다. 목사가 꼭 해야되는거예요. 담임목사가.... 모든 예배를요. 물론 현대교회가 어떤 시스템으로 하는데, 사실 그건 잘못된거예요. 왜요? 예배라는게, 말씀이라는게요, 아 다르고 어 다른거예요. 이게 조금 잘못되면 잘못된게 배워져서, 성장할 수있는데, 그걸 막게 만드는거예요.

 그것은 예배인도자가 높다는 얘기가 아니라 예배인도자가 모두 관장해서 한 영성이 되야됩니다. 한 영성.그래서 한 영성이 되어서 나가야되는데, 지금은 목사가 전도사를 세운 다음에 다 맡겨버립니다. 모든 교회들이.그래서 영성이 낮아지는 거예요. 목사가 힘들더라도 모든 부서를 관장해야됩니다.

옛날에 제가 교회 다닐 때 참교회를 다닐 때도 딜레마가 왔는데. 목사님이 훌륭하시거든요. 신령하신데, 1년에 한번쯤 인사하러갑니다. 물론 설교는 듣지만, 개인관계가 맺어지질 않아요.그러니까 실제로는 부목사와 맺어져서, 지도받는거예요. 그런데 그 지도양상은 너무 다른거예요. 담임목사가 훨씬 훌륭하시죠. 가면 말도 못해요. 가면 예의만 갖추고 나옵니다. 다 아니까, 그냥 내용들을. 그리고 훈수가 나와요. 그런데 일반적으로 1년 동안 {자라죠 }물론 성령의 {역사가}일어나지만, 더딘거예요. 고수가 인도해야만 빨리 성장합니다. 그래서 교회{성도}가 많아져도 담임목사가 모든 영혼을 관계할 정도가 되야만, 그 교회는 건강합니다. 건강해요. 그래서 담임목사가 중보할 정도의 숫자가 되야되구요. 그리고 바뀌면 안됩니다.

 제사장이 관장해서 ", 넌 깨졌다."고 그를 안에 넣는거예요. 뭐예요? 새신자에서 들어오는 것입니다. 안으로. 새신자에서. 그래서 밖에 있는 영혼이 드디어 구원 속에 들어와서, 진단을 내려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목사를 세우신 것이고, 제가 세워졌기 때문에, 저는 이것에 충실해서, 제가 이것을 모든 예배를 함께 하는 것입니다.

 어릴 때 예배드려보니까, 우리 어린이 예배가 약간은 좀 신령하지 않았어요. 어른들보다는. 그래서 어른 예배를 좋아했어요. 그래서 수요예배, 금요철야, 주일 저녁예배를 빠진 적이 없는 이유가 뭐냐하면, 어른 예배는 말씀이 있는데, 어린이 예배는 예화가 많고, {딜리버리?}가 많고 너무 증진이 없어요. 그러니까 어른 예배를 좋아하죠. 제가. ? 어른예배가 더 말씀이 많거든요.

 뭐냐하면 우리는 어릴 때부터 아주 갓난애기 때부터 아주 말씀을 체계적으로 배워야만 우리가 단단히 서는데, 일반 교회 다니면 대학부까지도 신앙이 안 자라요. 왜냐하면 대부분 일반 젊은 사람이 인도하거든요. 인도하니까, 영성이 낮으니까, 이게 한계가 있어요. 커야 성장해요, ? 목사님이 잘 인도해주시니까. 이게 딜레마가 있는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누가 인도자가 되면, 인도자가 모든 영혼들을 관장해야만 영이 성숙해지고, 온전해진다고 저는 믿고있기 때문에, {이처럼} 만드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가 어떤 은혜를 받는다 할지라도 죄사함의 은혜건, 은사건, 체험이건, 어떤 결단력이건, 그것을 담임목사와 자꾸 연관될 때, 건강하게 됩니다. 그래서 교회생활 할 때, 이 교회는 예수님이 세우신 것이고, 이 세움은 두가진데, 목사나 전도사나 부서를 세워서 인도해 주시는데, 이 있는 부서 자체가 이것이 그냥 허울은 아니예요. 다 필요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들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것을 존중해야되고요, 이 속에서 내가 어떤 것을 감수하고 나가야지, 새로운것 목사님이 모르는 것, 목사님이 모르는 은혜, 좋은건 아니예요.

 우리교회가 튼튼한 이유가 있는데, 전도사님이 모든걸 저한테 보고합니다. 전도사님은 비밀이 없어요. 모든걸 보고해요. 이게 건강한거예요. 그러니까 일반 다른 교회는, 이 성도나 전도사나 거리가 멀거든요. 쉽게 말하면 일주일에 한번 예배 드리는게 전부예요. 근데 우린 안그래요. 우리는, 모든게 전도사님한테 다 들어와요. 건강하게 된 이유예요. 그렇찮아요? 사람은 말이죠, 좋은 일과 안 좋은일 다 생기죠. 그런데 이것을 알 때, 나중에 결정할 때 뭡니까? 다 할 수있는 것이고 그것이 더 융화된 통합된 시스템으로 갈 수있는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영적인 어떤 일이 일어난다 할지라도 다 이것을 같이 교감하고 나눠서, 하나의 시스템적으로 바뀌어야됩니다.

 어저께 어떤 분이 꿈얘기를 말씀 하시더라구요. 저는 이런걸 좋아합니다. 왜냐하면 이런거예요. 우리는--, 저도 몰라요. 하나님 뜻을. 중요합니다. 본질이예요. 제사장도 모른대도요. 목사가 아는게 아니예요. 목사가 신령한게 아니예요. 하나님만 신령하세요. 중요합니다. 하나님 만 신령하세요. 예수님 만 최우수자예요. 예수님은 그리스도예요. 우리는 다 죄인들이예요. 죄인들 가운데 하나님께서 그나마 억지로 누구를 세웠을 뿐이고 아무것도 아니예요. 다 하찮은 존재들이예요.

 그런데 중요한 얘깁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교회를 왜 세웠냐는거예요. 어떤 성도가 목사한테 어떤 것을 {의뢰하면서} 뭐예요? 그 때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지는거예요. 성령의 역사는, 성령의 역사는 따로 있는게 아니라 신령함이 따로 있는게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에 의해서 {만들어진} 조직 가운데 이것을 나누면서 그 때 역사해 주셔서 답을 주는거예요. 목사에게 답이 있는거 아니예요. 착각하면 안됩니다. 목사가 모든걸 아는게 아니예요. 몰라요. 답도 모르고 몰라요. 똑 같아요. 같은 죄인이예요. 죄인인데, 성도와 목사가 같이 스파크되면서, 거기서 예수님이 임재하는거예요.이해가 되시죠?

 , 우리는 이렇게 착각할 수가 있어요. 목사님은 신령하신데, 거꾸로 목사님은 실력없는데, 그거 아니래도요. 모든 관계는 예수님만 그리스도가 되시는데, 왜 세웠느냐? 세운 자와 성도가 같이 연합하여 하나가 될 때, 그 때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서 거기서 놀라운 일이 나타나는거래도요. 그래서 우리가 좋아지는거예요. up되는거예요.

 이런거예요. 사람은 누구든지 각각 예배를 드릴 수있어요. 그렇죠?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두,세사람의 예배를 더 좋아하는 이유가 뭐냐하면, 그들이 연합될 때 거기서 주님의 역사가 크게 나타나는거예요. 개인의 힘도 있어요. 그런데 약해요. 하나님께서는--, 이런거예요. 내가 영적으로 맛이 갔어요. 근데 전화가 와요. "목사님 전화{로 기도}해주세요"내가 맛이 간 상태예요. "목사님 기도해주세요" 그럼 내가요, 정신이 번쩍 나요. 내가 맛이 갔는데, 기도합니다. 하는데 그 때 눈물도 막 나고,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같이 받는거예요. 나도 은혜가 임하고 그도 은혜가 임하는거예요. 공급처는 한 공급처예요. 나도 수혜자예요. 수혜자예요. 아시겠죠?

 왜 조직을 세우느냐? 이유가 딴게 아니라 이런 현상을 통해서 우리에게 임재하는 방법론이예요. 가만 있으면 영이 다 맛이 가있는거예요. 우리는 왜 모여야되느냐? 왜 서로 이렇게 긴밀히 연락하느냐? 그 속에서 역사가 나타나는거예요. 그것을 체험하는거예요.그래서 다 맛이 갔는데, 뭉치면 역사해서 영이 좋아지는거예요.

 물론 부분적으로 문둥병자가 제사장한테 보여서 나았다고 해서 {진영 안에} 들어오는건 맞아요. 그건만이 아니라는거예요. 제사장도 정신이 번쩍 드는거예요. 제사장도. 문둥병자도 좋아지고. 상호적이예요. 예배를 인도한다고 좋아집니까? 아니예요. 제사장은 이렇게 문둥병자를 맞이하면서 뭐예요, 영적으로 좋아지는거예요. 좋아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린 성도를 인도하든, 악한자를 인도하든, 우리가 어떤 경우의 영적인 만남이 있든간에, 모든 만남들은, 우리를 영적으로 다 상승시키는 내용들입니다.그래서 교회가 좋은 것입니다. 교회는 만남이 있고요, 때로는 충돌이 있고 여기서 뭔가 있어요. 그래서 뭐예요? 좋아집니다.

 저는 아침마다 전도사님 환상을 듣습니다. 저한테 항상 속삭여요. 내가 좋아해요. 정신이 번쩍 납니다. 왜요? 그걸 묵상합니다. '조심해야지.' 때로는. 내가 '그게 그렇구나.'하고 판단 내립니다. 내가 좋아지는거예요. 천국가면, 제사장이 높다. 아니예요. 제사장이 지옥 갈 수도있어요. 천국 가는거 아무도 몰라요. 누가 높고 낮은지를.

 뭐냐하면, 이 땅의 직분이라든가 그런걸 우리가 이용할 뿐이예요. 내가 전도를 못해도 전도 잘 하는 사람하고 같이 있으면 잘하게 돼있어요. 내가 노래 못해도, 노래 잘 하는 사람 옆에 있으면 노래 잘 하게 돼있어요. 뭐냐하면 교회는, 하나님께서 각자를 세워서 좋은 쪽으로 인도해주는게 교회예요. 내가 뭘 신앙이 없어도 붙어있으면 신앙이 좋아지게 돼있어요. 아시겠죠? '내가 맛이 갔다,' '내가 쪼다 같애.' '형편 없어.'할거 없어요. 내가 진짜 신앙이 좋은 사람 옆에 붙으면 신앙이 좋아지는거예요.

 제사장은 일반적으로 좋을 수밖에 없게 돼있어요. 딴 사람보다. 구조가. 왜요? 항상 말씀을 연구 안 할 수가 없고, 기도 안 할 수가 없잖아요. 예배 인도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좀 더 환경이 나은 상태에 있기 쉬워요. 그러니까 당연히  붙으면 좋아지는거예요.그래서 늘 제사장과 가까이하면 나쁠 것 없어요. 결과는 적어도 떨어지진 않습니다. 신앙이. 망가지진 않아요. 더 좋을 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과거에 예배인도자, 제사장이 권면했지만 오늘도 세운자에게 가까이할 때 우리는 설사 문둥병 걸렸다 할지라도, 망가져도 회복의 길이 열리는 것이구요. 영적인 회복을 보장합니다

마치겠습니다.

사복음교회 박경호목사의 헬라어번역성경 마가복음 강해

thddycjf5725@gmail.com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사복음교회 박경호목사의 헬라어번역성경 마가복음 강해 115절

사복음교회 박경호목사의 헬라어번역성경 마가복음 강해 114절

사복음교회 박경호목사의 헬라어번역성경 마가복음 강해 116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