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복음교회 박경호목사의 헬라어번역성경 마가복음 강해 34절

 사복음교회 박경호목사의 헬라어번역성경 마가복음 강해


34절

예수님께서 불쌍히 여기시고 손을 내밀어 그를 만지셨으며 , 그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원하니 깨끗해져라."

 "예수님께서 불쌍히 여기시고," 그렇죠? 문둥병자가 겸손한 모습으로 나왔죠.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있다고 나왔으니까, 예수님은 그대로 반응하시는 분이죠. 그러니까 예수님은 공평하신 분이신데, 예수님은 우리의 행동이나 마음에 그대로 반영하시지. 특별한 편애가 있는 분이 아니십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행동에 대해서 그대로 반응해 주십니다.

 인간이 악을 행하면, 지옥에 던지시고, 선을 행하면 선으로 인도하시고, 겸손하게 예수님을 찾으면 불쌍히 여기시고, 그런 분이시지. 예수님이란 분이 내가 부를 때, '예수님!'하고 {외치듯이} 부른다고 좋아하는 분이 아니예요. 뭐냐하면 예수님을 찾는다고, "그래" 하는 분이 아니라 이 문둥병자가 진심으로 겸손한 마음으로 찾으니까, 불쌍히 여겼다는 사실입니다.

 반대로 또 우리가 예수님께 나아갈 때 내가 그 마음 자체가 악하면 예수님이 안 만나줘요. 우리 인간을..... 어떻게 행동한다 할지라도..... 그러니까 여기 있는 문둥병자가 예수님 만난 것은 사실은 딴거 아닙니다. 그 문둥병자가 예수님께서 보시기에 긍휼을 베풀 수밖에 없는 입장에 와있다는 사실이예요. 여기 큰 핵심이 있습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종교들이 있거든요. 하나님을 부릅니다. 전부다. 그런데 왜 못 만나느냐? 그 진심이, 진심 속에 죄가 섞여있으면 안되는겁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탐욕이 있어요. 욕망이 있어요. 죄가 있습니다. 이 죄가 있으면 하나님 못 만나게 돼있어요. 원래요. 그래서 그전에 먼저 죄를 다 청산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죄들을..... 인간에게 있는 죄악성들을 청산해야만 하나님 만날 수가 있기 때문에, 그래서 문둥병자는 드디어 예수님 보시기에 불쌍히 여길만큼 겸손해 진 것입니다.

"여기시고 손을 내밀어" 손을 내밀어? 손을 내밀 필요가 있나요? 말씀으로 하시면 되는데. 그것은. 긍휼에 대한 예수님의 액션action입니다. 성경에서 손을 내민다는 것은 긍휼에 대한 액션이예요. 우리가 누구를 사랑하면 어떻게 합니까? 이쁘다고 {손으로}토닥거려 주거나, 이렇게 쓰다듬어 주거나, 이렇게 이뻐하는 포즈pause로 손이 나갑니다. 그죠? 그냥 말로 하지않죠? 그것은 예수님의 긍휼하심은, 우리에게 우리가 느낄 수 있을만큼 태도가 보여지는 것입니다.

 그게 어떻게 인식될까요? 우리에게는 감동으로 인식됩니다. 감동으로..... 우리가 기도하거나 찬양으로 나아갈 때 감동으로 내게 옵니다. 그 감동이 손을 내미는 것으로 인식되는거예요. 감동이 없을 수가 있어요. 그게 뭐예요. 아주 우리 마음이 굳어있는 거예요. 우리 마음이 굳어있으면, 감동이 안와요. 하나님은 이런거예요. 공기와도 같아요. 내가 마시면 들어와요. 하나님은 차별이 없어요. 내가 안 마셔서 안 들어오는거예요.

 단순하게 우리가 기독교를 선택했기 때문에 만나는게 아니라 기독교에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 못 만나는 거예요. 왜 못 만나느냐? 내가 굳으면 안돼요. 내가 마음이 부드러워야 됩니다. 마음이 부드러워야 되는데, 어제 성가 한곡을 녹음했죠. 평화의 기도. peace prayer of a saint, 프란치스라는 사람의 곡이죠. 녹음을 했는데,가사에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자기를 온전히 버림으로--}이게 원 가사예요. 나를 온전히 버려야만 영생을 얻는겁니다.

 영생을 얻는 길이란 것이 '내가 뭘 믿는다.' 다 사변들입니다. '내가 어떻게 여긴다.' 사변들이예요. '내가 어디서 열심히 봉사한다.' 다 사변들이예요.  내가 완전히 나자신을 완전히 버려야 영생을 얻습니다. 날 완전히 버려야돼요. 내 인생을 버려야돼요. 하나님 앞에서..... 그것은 집을 나온다거나 돈을 버린다, 그런게 아니라 인생 자체가 하나님 앞에 버려져야됩니다. 이게 영생의 방법이예요.

 그런데 우리가 자기를 안 버리고, 고집을 갖고, 자존심을 갖고, 되질 않아요. 저는 교회 부장을 하면서도, 5년 했는데, 연합수련회 하면 저는, "기도합시다!" 하자마자 막 달려가요. 학생처럼. 남들이 학생으로 인식해요. 강대상 앞으로 달려가거든요. 가서, 벽에 가서 붙잡고 울면서 기도하는거예요. 그러면 부흥회 온 학생들이 날 따라서 막 달려와요. ? 그렇찮아요? 부장이,---절 굉장히 무서워했거든요.- 부장이 매달려 울면서 기도하니까 날 따라서 기도하죠. 하나님 앞에 체면이 없는거예요. 하나님 앞에서는.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서는 것입니다. 목사 앞에도 아니예요. 하나님 앞에 서는거예요. 거기 무슨 체면이 있어요. 그래서 울고 통회하면 다른 사람이 흉내내잖아요. 그래서 강단에 나와서 회개하고 우는거예요. 왜요? 내가 먼저 본을 보이니까, 학생들 앞에 부장이지, 하나님 앞에 무슨 부장이예요. 똑같은 죄인이죠. 남자들은 은혜 못 받아요. ? '내가 누군데?' 그거예요. 네가 아내 앞에서야 남편이지. 네가 뭐 개같은 놈이. 네가 남들 앞에서나 회사 저거지, 하나님 앞에서 네가 뭐냐? 그거예요 .나이 먹어서? 그걸 부숴야되는거예요.

 자기가 부숴지지 않으면 절대 은혜 못 받습니다. 천국 못 갑니다. 남자들이 천국 가기 어려워요. ? '내가 누군데?' 때문에 무슨 핀잔 먹으면 기분 굉장히 상해하는거예요. 만약 교회가 목사가 설교자라면 교회 올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계신 곳이예요. 하나님이 말씀하시는거예요.어디 하나님 앞에서 열을 받아? 자기가 안 깨진거죠.

 저는 특별하게 교회를 많이 다녔죠. 5년 동안 나를 깨는데 목사님이..... 제가 열을 받더라고요. 그런데 나중에 하나님인 것을 알게됩니다. 저는 하나님이 나한테 화가 난줄 몰랐어요. 사실은. 나중에 알게돼요. 하나님이 열이 받아서 날 깨는데, 난 목사님이 깨는줄 알았어요. 목사님 아니예요. 만약 교회 목사 만나러 가면 교회 갈 필요가 없는거예요. 교회는 하나님 만나러 가는 곳입니다. 하나님께서 감동해서 설교를 줄 것이고, 때로는 듣기 싫을 때도 있고, 열 받을 때도 있고, 이해가 안 될 때도 있고, 때로는 내가 오해 받을 때도 있고요, 심지어. 그런데 그것을 다 감당하면서 내가 깨어지는 것입니다.

 그럴때 예수님이 우리를 긍휼히 여기십니다. 그렇찮아요? 대들면 긍휼히 왜 여겨요? 복 받으니까 긍휼히 여기는거죠. 그래서 손을 내미시는 거예요. 왜요? 그렇게 깨어진 우리를 향해서 손이 내려온 겁니다. 만일 우리가 칭찬 받고 인정 받으면 긍휼이 필요 없어요. 내가 오해 받기도하고, 미움 받기도하고, 꾸중 듣기도하니까 뭐예요? 불쌍한거예요. 그렇찮아요? 자녀를 부인이 막 혼내면 아버지가 불쌍한 마음이 드는거예요.

 이 문둥병 걸린 사람이 하나님에 의해서, 천형이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병이 걸렸습니다. 그런데 마음이 탁 낮아졌어요. 드디어 예수님을 만난 가운데 있는데, 불쌍히 여길 정도로 낮아졌습니다.그리고 드디어 예수님의 긍휼이 간거예요. 하나님이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려면, 우리가 막 깨져야 됩니다. 그래서 "괜히 혼냈나?" 이렇게 돼야되요. "괜히 혼냈나? 내가 너무 때린 것같다." 그러면 긍휼이 가는거예요. 

드디어  "손을 내밀어 그를 만지셨으며" 이거는 감동이 아니라, 영적인 큰 변화입니다. 하나님의 손은, 능력이 있어서, {만지시면} 우리가 마음의 변화가 돼요. 우리 마음이 신기해요. 내가 누구를 미워하다가도, 사랑하는게 1초도 안걸려요. 순간적이예요. 우리가 어떤 것을 이해할 때, 오해하는 것도 순간적이고요, 금새 변화됩니다. 우리 마음이 변화되는 거예요. 마음이 새로와지는 거예요. 새로와져서..... 우리에게 있는 모든 어둠들이 순간적이예요, 사람이요.

이런거예요. 물이 끓을 때 말이죠, 갑자기 끓어요. 아주 순간적이예요. 물론 온도변화가 있었죠. 그거는 변화예요. 주님이 우리를 만지시면, 우리가 변화되는데, 주님에 의해서 우리가 새롭게 변화가 됩니다. 변화가 없는 만남은 없는겁니다. 원래. 원래 우리 예수님 만나면 변화가 되게 돼있어요. 자동적으로. 그런데 그 만남의 증거가 변화입니다. 마음이 변화됩니다. 하면 우리 마음이 바꿔집니다. 우리 얼굴을 바꿔놓는 분이 아니라, 우리 얼굴을 성형 하는 분이 아니라, 우리 마음을 바꿔놓으세요.그래서 마음이 생각이 변화가 돼요.

 문둥병, 눈에 보이는 병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주님이 주신 영적인 병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뭐예요? 먼저 변화될 장소는 마음입니다. 교회를 오래 다니고도 지옥 가는 경우, 마음이 안 변해서 그래요. 행동변화로 천국 못갑니다. 행동변화로는. 이 마음이 변해야 천국 가는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마음을 변화시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선해지면 행동이 변화됩니다. 그래서 행동이 바뀌어요. 그런데 외형변화는, 윤리는, 마음이 안변해져요. '부모를 공경하라.' 절하고, 또 용돈도 드리고, 다 만들어져도 우리 마음 속에 깊은 사랑과 애정이 일어나는건 아니예요. 행동이 천국을 못 줘요. 그런데 기독교는, 이 마음을 변화시킵니다. ? 예수님의 능력으로. 신기한 일이예요. 이 마음에서부터 사랑과, 마음에서부터 애정이 생겨요. 마음에서부터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는거예요. 희한해요. 놀라운거예요.

 다른 종교는 마음을 안 가르치기 때문에 나이 먹어서 어떻해요? 얼굴이 다 어두워져요. 어떤 종파도 다. 그런데 기독교는, 안 그래요. 나이 먹어도 어린애처럼 얼굴이 아주 해맑습니다. 해맑아요. ? 마음 바뀌며는 끝난거예요. 드디어 모든게 바뀝니다. 우리의 최고 축복은, 단순한 병치료가 아닙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병치료가 아니예요. 필요한 것은 마음의 변화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변화되어서, 행복이 오는거죠. 평안함이 오는거죠. 그리고 어둠이 떠나는거죠. 그러니까 그냥 살만한 거예요. 너무 좋은거예요. 사는게. 인간의 마음이 변화되면, 행동이 바뀝니다. 바뀌면 뭡니까? 모든게 바뀌어요. 모든 양식들이요.

 사람은,'내가 어떻게 살아야겠다.' 결단이라든가 모든 계획들. 계획하고 하는 것들, 배움들. 교육들 많이하죠. 모든게 이 모든게 사실은 의미가 없어요. 사실은. 마음 바뀌면 끝나는거예요. 마음이.... 우리가 막 어떤 것을 이루기위해서 진짜 뭘 하잖아요? 전념해서 하잖아요. 프로그램을 짜고, 근데 안돼요. 그게. 도루묵이예요. 근데 마음 바뀌면, 기도가 바뀌고, 마음 바뀌면 찬양이 바뀌고. 말씀이 바뀌고, 모든게 바뀌어요. 안 바뀌면, 찬양이 그냥 세상 노래의 연장. CCM이 되고. 기도가 세속적인 기도 기복이 되는 것이에요.말씀이 그냥 자기 딴에 {--이 되고} 안 바뀌어요. 모든게.

 근데 마음 바뀌면, 모든게 새로워집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만남이 이루어지는데, "그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원하니, 깨끗해 져라!" , 지금 이 고질적인 죄를 씻지 못하는 병들이 나은거예요. 죄가 사함 받은겁니다. 문둥병이 나아버린거예요.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와서 씻는거를 자백이라고합니다. 자백이라고. 어제 아침에 공부하는데, 어느 성도님이 그런 말씀하시더라구요. "자백이 뭐예요?" 그러더라고요. 그래 내가 얘기했죠. , 참 공부 열심히 한다. 원래 공부하며는 질문이 생기는거예요. 말로는 질문이 안생겨요. 그래서 성도님이 토요일 날 안대기도회 하는데, 사방에 샘과 강물과 우물이 보이는데, 온통 이 물들이 보이더라구요. 뭐예요? 씻는 샘이죠. 죄사함의 은혜들입니다.

 나이가 많질 않아요. 지금 7세인가요? 다섯살인가요? 나이가 많질 않아요. 그런데 그 주변에 온통 씻는 샘이예요. 죄사함을 아는거예요. 죄씻음을 아는거예요. 그리고 나한테 무릎 꿇고 묻는거예요. "콘페션confession이 뭐예요? 자백이 뭐예요?" 그래서 말씀드렸죠. 자백은, 회개는 많은 자백을 통해서 변화된 상태. 회개이고, 자백은 매일같이 기도드리는 순간 순간의 회개라고 말씀드렸죠. 그래서 사실은 자백기도가 맞는거예요. 자백기도. 그 자백들이 모여가지고 회개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회개는 큰 덩어리고요, 자백은 회개라는 큰 덩어리의 실제 내용물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 자백합니다. 그래서 죄가 사해지는거예요., 중요합니다. 이제 이 문둥병자는, 자백으로 끝난게 아니라 회개에 이르렀다는 사실입니다. 많은 분들이 오해합니다.'한번에 음성을 들었어요.' "너의 죄를 용서하노라!" , 끝났다. 그게 아니예요. 이런 죄씻음은, 수없이 많은 자백을 통해서 이루어지는거예요. 언제까지? 나중에 속죄의 깨끗함이라는 선포가 이루어질 때까지.

 이런거예요. 내가 오늘 머리를 씻었어요. 깨끗해졌나요? 깨끗해졌죠. 얼마만큼? 조금.... 근데 나를 면접 보는 사람은 나를 안 받아줘요. ? 내가 더 깨끗해져야되기 때문에. 면접이 통과될 때까지 씻는거예요. 그게 회개고요. 씻음은 자백이 되는거예요. 하나님 앞에 우리는 매일 씻습니다. 하지만 나를 안 받아줘요. 받아주면 어떻게됩니까? 속죄가 적용되거든요. 그래서 우리에게 구원을 선포하는데, 구원을 선포 안해줍니다. 왜 안해줍니까? 아직 덜 되어서 그런거예요. 자백이..... 이럴 때 우리는 회개라는 큰 카테고리를 통과해야 되는데, 그래서 죄사함의 조건은 뭐예요? 온전한 회개예요. 내가 자백을 많이 해야돼요. 어디까지? 칭의가 이루어져야돼요. "너 깨끗해!" {칭의가} 이루어져야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몇번의 자백 만으로 깨끗해졌다고 스스로 착각하는거예요. 아니예요. 깨끗함은 한두가지 죄가 아니라 내 모든 죄로부터의 깨끗함을 얻어야 됩니다. 모든 죄로부터..... 그렇찮아요? 내가 누구 살해하다가 안하면 천국 갑니까? 아니예요. 살인 이라는 죄를 해결 받은 것이지, 그게 회개는 아니예요. 그건 자백입니다. 물건 훔치다가 안 훔치면 천국 갑니까? 아니예요. 모든 죄 속에서 한군데가 해결 된 것 뿐입니다. 다시 말하면 모든 죄속에서 벗어나는 과정이 자백을 통해 이루어지는데, 그것이 뭐예요? 계속 이루어져야 되기 때문에 오래 걸립니다. 회개생활이라는것이...

 그래서 나중에 전능자께서 보신 다음에 "! 마음에 든다." 그게 구원이예요. 마음에 든다. 그때까지 뭐예요? 계속 변화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백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에 들때까지 뭐합니까? 드디어 마음에 들면 뭡니까? "그래 깨끗해졌다!"하고 선포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속죄라 부르죠. 어토운먼트atonement . , 우리는 계속 신오퍼링sin offering 죄사함의 기도를 드리고, 나중에 속죄의 선포가 이루어집니다. 그게 구원입니다.

 이제 우리는 죄를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매일 회개합니다. 끝도 나지 않아요. 회개가. 눈물이 끝이 나지 않아요. 내가 오늘 또 울고, 내일 또 울고 또 우는거예요. 언제까지? 하나님이 나를 향해서 "넌 이제 내가 받아줄께!"라는 점이 있어요. 받아줄께 라는 지점이 있어요. 그 전까지 계속 회개해나가는거예요. 회개는, 반드시 죄를 사함받는 회개가 필수예요. 회개를 오해하는 사람이 있어요. ' 죄를 안 짓는게 회개다.' 죄를 안 지을 수가 있나? ? 죄가 마음에서 오기 때문이예요. 왜 눈물로 회개를 해야되느냐? 내가 눈물로 회개하지않으면 마음의 죄가 안 바뀌어요. 마음이 안 바뀝니다. 마음이 안 바뀐 상태는 회개가 아니예요. 그건 가짜가 되고, 위선이예요. 위선. 위선은, 마음은 안 바뀌고 겉만 바뀌는거예요.'조심해야지. 이러면 안돼.' 이건 위선이예요. 바뀐거 아닙니다.

 아니면 뭐예요마음부터 죄가 안 올라와야돼요. 어떻게 됩니까? 죄를 많이 사함 받으면 죄가 안 올라올 때가 와요. 죄가 마음에 안 올라와요. 죄를 사함 받을 때면  그 때 비로소 거룩한 물이 드디어 나를 장악해요. 그래서 깨끗해지는거예요, 마음이..... 그래서 세리와 죄인들이 천국 간거예요. 바리새인들은 지옥 갔고요. 우리는 애를 쓰죠. '죄 짓지 말아야지' 그 것으로 천국 못가요. ? 죄가 안되질 않거든요, 죄가요. 죄는 본능적이예요. 죄는 본질적이래도요. 늘 마음에서 죄가 올라온 대도요. 교만과 훼방과 미움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미련한 것이 올라온대도요. 이것이. 이거를 못 벗어나요. 이거를. 이게 어떻게 안 올라오느냐? 내가 죄를 많이 사함 받으면 나중에 그게 안 올라오는 단계가 와요. 성결한 단계가 온대도요. 성결. 그게 바로 깨끗해진거예요.

 타종교가 뭐라고 그럽니까? 타종교는, 막 억지로 뭘 해서 죄를 안짓게 생각해요. 죄가 안 떠 올라와요. 생각 가운데. 그게 성결이 아니예요. 예수님의 물로 사함 받다보면 나중에 이상하게 평강할 때가 와요. ? 인간의 모든 죄는 {씻어지는데} 그 때가 와야 깨끗해지는거예요. 그 때 우리는 계속 회개가 나오는겁니다. 드디어 죄에서 자유롭게 돼요. 편안하게 됩니다. 많은 죄에서--, 물론 소죄는 있죠. 하지만 뭐예요? 많은 죄에서 벗어나요. 드디어 영적인 평안함 가운데 드디어 자유를 누리고, 은혜의 생활로 진입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식 회개생활 이예요. 이제 죄를 다 사함 받고 깨끗해졌습니다. 어린애처럼 된거예요. 하나님도 우리를 만나실 때, 이쁘니가 껴안습니다. 신부처럼. 이제 우리가 하나님의 품에 안겨서 살아갑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하나님의 존재가 실제 나한테 아버지가 되시고, 실제 나한테 신랑이 되고, 내가 신부가 되는 실질적인 것이지, 가상이 아니예요. 이건 실제예요. 실제입니다. 실제 나에게 아버지가 되시고요. 실제 나에게 신랑이 되십니다. 난 실제로 예수님의 종이 됩니다. 이건 실상이예요. 이건 만든게 아니예요. 예수님은 살아계시기 때문입니다.

 이제 이 문둥병자는 드디어 그가 문둥병을 통해서 자신의 죄를 깨닫고, 더 나아가서 죄 짓지않는 그런 {삶을} 살다가 자기가 마음이 겸손해져서 죄를 사함받는 {과정을} 통과해서 예수님 앞으로 나아옵니다. 2절이지만 많은 시간이 걸린겁니다. 많은 시간들. 신령함은, 많은 세월이 걸립니다. 우리는 금세 좋아지질 않아요, 사람은 조금씩 조금씩 좋아집니다. 드디어 합당한 변화가 되어서 드디어 {하나님} 앞에 설 때, 그 설 때까지는 우리는, 그때까지는 애써 반복적인 죄사함이 필요한 것입니다

마치겠습니다.

사복음교회 박경호목사의 헬라어번역성경 마가복음 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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