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복음교회 박경호목사의 헬라어번역성경 마가복음 강해 30절

 사복음교회 박경호목사의 헬라어번역성경 마가복음 강해


30절

시몬및 그 분과 함께한 자들이 그 분을 뒤따럈습니다. 그 분을 발견하고 그 분께 말합니다. "모든 자들이 당신을 찾습니다.

 오늘은 마가복음 30절 말씀입니다. "시몬및" 시몬이 지금 앞에 와있어요. 시몬과 안드레와 야고보와 요한이죠. 그런데 시몬이 지금 수제자로 불려지는데,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시는데 이름을 부르는 일이 드뭅니다. 예수님께서 "시몬아! 바요나 시몬아!" 부르죠. 다른 사람은요, 없어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부르죠. 딴 사람은 없어요. "야곱아! 야곱아!" 부릅니다. 딴 사람은 없어요. 야곱이 은혜 가운데, 예언 가운데 "유다야!"하고 부릅니다. 12명 가운데. 이름 밖에 안불러요.나머지는 부르지않습니다. 호격이 없어요. "사무엘아, 사무엘아!"했지만 엘리를 부르지않아요.

 하나님께서는. 이상하지않습니까? 엘리를 안불러요. 사울 왕을 부르지않습니다. 한번도 안불러요. "스룹바벨아!" 부릅니다. 여호수아 부릅니다. 그런데 성경에 있는 인물들 부르는 경우가 없어요. "다윗아,다윗아" 부릅니다. 그러나 안불러요. 요셉을 부르죠. "요셉아!" 부르죠. 예수님의 아버지. 사가랴를 부르죠. "사가랴, 사가랴" 부르죠. 사울도 불러요. "사울아!" 부르죠. 고넬료 부릅니다.

 우리들을 하나님께서 보실 때 이 시몬은 누구냐? 시몬은 이런거예요. 우리는 베드로라는 사람이 그냥 베드로죠. 12사도 중의 하난데. 하나님 입장에서는 시몬이라는 사람은. 보통 사람이 아니예요. 굉장히 사랑하는 대상이예요. 어마어마하게 사랑하는 대상. 그 때 하나님이 이름을 부릅니다. 성경에 이삭도 안불러요. 물론 지옥을 말하는게 아니죠. 그리고 어려운거예요. 이름 부른다는게.

하나님이 우리 부를 때 그 말씀은. 우리처럼 부르는게 아니예요. 그 우릴 부를 때 그 말 속에는, 쉽게 말하면 영구불변적인 사랑이 있는거예요. 우리 사랑은 인간 사랑은 일시적인데, 하나님 사랑은 안그래요. 하나님 사랑은요? 영원한 사랑이예요. 사랑이 내가 조금 좋아하거나 싫어하는게 아니라 그 사랑은요, 태초부터 사랑한 사랑이예요. 그리고 용서하는 사랑이예요. 사랑으로 우리를 부르는거예요.

 12제자 가운데 누가 제일 수제자냐? 당연히 시몬이예요. 왜냐고요? 12제자 가운데 시몬을 많이 부릅니다. "바요나 시몬아 날 사랑하느냐?" 그렇게 부른 사람이 없어요. 시몬은 베드로는 허물이 많죠. 다혈질적입니다. 그러나 그건 우리 입장이예요. 하나님은 그를 너무 사랑하셨어요. 그래서 불린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고, 불린다는 것은 영원한 사랑에 근거한 부름으로 생각됩니다. 지금 여기서 " 시몬과 그분과 함께한 자들이 그분을 뒤따랐습니다." 했죠. 이것은, 시몬이라는 베드로가 예수님을 따르는 일에 앞장 선 것입니다. , 우리가 볼 때는 사도요한이나 야고보나 안드레나 비슷해보여요. ? 겉으로 볼 때 똑같으니까. 그런데 뭐가 다르냐? 내면세계가 다릅니다. 내면세계가.

 우리가 주님을 따를 때 말이죠, 우리는 행동을 따릅니다. 내가 예배를 드리고, 기도를 하고,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 중심을 보십니다. 중심을. 이 중심이 예수님을 따라가는 거예요. 우리는 제자라는 것이 내가 훌륭한 공부를 한다거나, 어던 모임에 참석하는 것이 아니라 온 마음과 온 정성과 온 영혼이 예수님을 바라보는거예요. 이게 따른다는거예요. 어떤 사람이 와서 '예수님 내가 장사 드릴께요.' 장사가 죄가 되질 안찮습니까?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가지마! 넌 따라야 돼" 하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이상하시다. 아버님 장례에 왜 못 가느냐? 뭐예요? 중심이예요. 제자란 것은 말이죠, '내가 예수님 따를께요. 그런데 장례식이 있거든요. 소를 팔아야 되거든요.' 소 파는게 문제가 아니라 중심이예요. 사람은요,

 결국은 중심이 나중에 결정합니다.중심이. 이런거예요. 성도들한테 '목사님과 전도사님이 {이렇고 저렇고}' 거짓말을 막 하는거예요. '그래? 목사가 그래?' 거짓말인데, 중요합니다. 중심이 안 따른 사람은 그 말을 믿어요. '그럴 수가 있어?' 하고 그만두는 거예요.우리는 웃죠. 그런 거짓말을 믿냐? 간단해요. 중심이 잘 못되면 미혹되는거예요. 미혹은 마귀가 우리를 꼬이는거죠. 그렇찮아요? '목사가 그렇게 했어?' 하고 믿을라면, 내가 이미 미혹이 되고있던 거예요. 내가 믿는 자는 미혹이 안돼. 이미 믿으면. 그렇찮아요. 똑같이 하나님 믿으면 미혹 안되요. 다시 봤다 그럽니다. 안 믿어서. 미혹은 따로 있는게 아니라 하나님을 안 무서워하는 현상이예요.

 그런데 그게 뭐냐? 믿음이라는게. 그게 바로 중심이예요. 중심. 이 중심이 딱 되어있으면 절대 안 흔들려요. 흔들리질 않아요. 신앙생활 할 때, 흔들리는 이유가 안 믿기 때문에 오는 현상이예요., 사무엘이 어린데, 사무엘을 부르십니다. 왤까요? 아직 다 안 살았는데. 중심이 된거예요. 이 중심이 엄청 중요해요. 이게 주님을 따르는거예요. 희한한 일이 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이라고 불러요. 느부갓네살 왕을 불렀으면 구원 받았죠.

 그런데 뭐예요? 왕 뭐예요? 그런데 구원 받았어요. 물론 불렀는데. 불렀죠? 유다야 부르진 안않지만 12아들 가운데 유다가 천국 갔죠. 당연히 구원 받은 사람이죠. 유다가. 비록 2차적인 선지자 야곱이 불렀지마는. 이 부른다는 것은, 영구적인 사회에서 부른 것입니다. 뭐냐면 제자가 뭐냐? 제자는, 내가 예수님을 중심으로 따라가는걸 말하고, 그냥 예수님 부르는게 아닌거예요. 그래서 예수님을 따라가는 삶이 이유고 목표가 되는거예요존재의 이유라 그러죠, 존재의 이유. 내가 왜 사느냐예요. 내가 왜 사느냐? 예수님을 따라가는게 존재의 이유가 되는거예요.

 우리는 때로는 교회에서 직분을 얻기도하고요. 또는 신학해서 목사가 되기도합니다. 그러나 그런 표면적인 것이 본질은 아니예요.본질은, 내가 왜 존재하느냐예요. 그러면 때로는 음악 할 수도 있고, 봉사할 수도 있고. 기도할 수있고, 설교할 수 있고, 양상만 다른거죠. 뭐예요? 본질은 똑 같아요. 나는 하나님으로 존재한다. 그게 제자예요. 어떤 제자는 인도가서 선포하고 어떤 제자는 첫번부터 봉사할 수도 있구요. 하나님은 중심보시죠. 형태 안 봐요. 어느게 가치있다는게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세상은. 다 다양한 세상인데 누가 훌륭한 제자냐? 왜 시몬이 우수하냐? 시몬이 가장 중심에 예수님을 두었기 때문이예요. 그리고 하나님은 이걸 아시고 가장 먼저 부르신 것입니다. 이것을 아시고요. 드디어 그분을 발견하고. , 아침에 새벽에 살아 있었어요. 같이 잤는데. 그러니까 시몬 베드로와 안드레 동생하고, ', 이봐! 예수님 안 계셔' 하고 뭐예요? 드디어 가보니까 저기서 기도하시는거예요. 발견하고 뭐예요? 그분께 말합니다.

 자 이제 집에 있었는데, 집에서 늦게까지 밤까지 야간으로 축사해서 고쳐주셨는데, 잠자다 보니까 예수님은 멀리 딴데 가서 기도하고 계시는데. , 사람들이 찾아왔는데, 안 계시니까 뭐예요? 주님을 찾으러 다니는거예요. 그리고 뭐라고 말합니까? "모든 자들이 당신을 찾습니다." , 예수님이 지금 피곤하시죠. 피곤하셔서 주무시는데, 따라온거예요. 뭐예요? , 제자가 뭐냐? 제자는요, 예수님의 생각과 뜻과 예수님의 방향에 날 맞추는 사람이예요. 뭐냐하면? 예수님은 우리에게 어떤 생각을 하시는지 알 수없습니다. 그렇죠? 인간이.

 그런데 놀랍게도, 4명은, 예수님을 발견했다는 사실이예요. 인간은 누구도 하나님을 볼 수없습니다. 그런데 제자가 뭐냐? 결국 제자들은요 예수님을 발견합니다. 어떤 모습으로? 기도하는 것을 발견하는거예요. 딴 사람들은 몰라요. 못 찾아서 몰라요. 못 찾아요, 딴 사람들은. 그냥 집 주위를 둘러 봤는데, 안 계실 뿐입니다. 그런데 뭐예요? 제자는 아는거예요. 발견합니다. 하나님 뜻을 알 수있느냐? 모른다 그래요. 맞아요. 우리는..... 하지만 그건 정답이 아니예요. 왜요? 열망하면 간절히 찾으면 하나님을 만날 수가 있습니다. 뜻을 알 수가있습니다.

 우리는 뜻을 모른다는게 정답이예요. 그건 정답이 아니거든요. 하나님 뜻이라는 책들이 많이 있습니다. 다 이렇게 정리가 돼있어요. 꿈으로, 환상으로, 설교로, 뭐 이런 단행본 책으로, 어떤 충고로서 뜻을 알 수있지만 진짜는 모른다고 말합니다. 그럴까요? 그것은 군중들이예요. 저희처럼 단순히 찾는 자들인 것이지, 제자는 아니예요. 제자는 압니다. 알아요. 제자들은. 왜요? 하나님이 직접적으로 간섭해 주시는데, 찾도록 만드시는거예요. ? 그 간절한 열망이 하나님을 감동시키는거예요.

 하나님은 우리에 대해서 감동을 받으시는 거예요. 예를 들면 우리가 회개를 왜 합니까? 회개를. 하나님이 내 회개의 눈물 때문에 감동을 먹으시고, 우리 죄를 사해주시는 거예요. 그렇죠? 실제 일어나는 현상이예요.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회개하는데, 감동을 하나님이 안 먹어요. 그건 뭡니까? 그건 회개가 안되는거예요. 똑같이 회개를 하는데 어떤 사람은 죄가 사해지고요. 어떤 사람은 죄가 안 사해져요. 왤까요? 하나님 마음이 움직이질 않는거예요. 그 차이입니다.

 여기 4명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발견했어요. 나머지는 발견 못하고 예수님을 통해서 축사는 받았겠죠. 병만 고침 받는데, 결국은 지옥에 들어갔다는 사실이예요. 모든 사람이 예수님을 찾았죠. 왜요? 고쳐주시니까. 내가 나아지니까, 그런데 천국이냐? 그건 아니래도요. , 하나님께서 하갈을 불렀어요. 물은 발견했지만 천사를 통해서. 천국 갔냐? 지옥 갔대도요. 유사 기독교가 뭐냐? 하나님을 만날 수가있어요. 그건 천국이 아니예요. 내가 하나님을 발견해야 됩니다. 내가 하나님을 찾아야 됩니다. 내가 하나님을 열망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감동으로 은혜 받을 수있으나, 그건 구원이 아니래도요. 내가 하나님을 발견할 때까지 그 때까지 가야되는거예요.

 결국은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 때까지 우린 나아가야 됩니다. 뜻을 알 수 있을 때까지 나아가야 되는거예요. 뜻을 모른다 뭐예요?뜻을 알 때까지 가는거예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발견해야되는데, 모든 책들은 뜻을 모른다는게 정답이예요. 반은 틀린 거래도요. 그렇다면 성경의 위대한 인물들은 어떻게 살았냐? 노아가 어떻게 방주 지었냐? 생각할 때, 운이 좋아서? 아니예요. 절대 아니예요.

 어떻게 아벨이 열납되는 제사를 드렸을까? 그냥 한겁니까? 그게 아니래도요. 거기 도달된 거예요. 도달. 우린 많은 사람들이 말이죠, 결승전에 도달 되야만 상 받는 것처럼. 우리 구원도 신앙도 중도 탈락이 엄청 많아요. 중도 탈락. 신앙은 맨 마지막까지 도달이 돼야돼요. 내가 구원에 이를 때까지. 내가 천국 가는 확신이 이를 때까지 도달 되야되는데, 다 탈락하는거예요. 미달됩니다. 미달. 왜 이들이 천국 갔을까요? 4명이. 그들은 모든 것을 버렸고 드디어 예수님을 찾습니다. 그리고 발견합니다. 뜻을 아는거예요.

 알면 이득 봤느냐? 천만의 말씀이예요. 인생이 날아갔어요. 그렇찮아요? 이들이 얻은게 뭡니까? 직업을 얻었습니까? 행복을 얻었습니까? 정 반대예요. 우리가 하나님을 발견하면 우리에게 좋은 일 생기느냐? 그렇질 않아요. 여기에 사람들이 미스가 오는거예요. 하나님 발견하면 좋은 일 생길 줄 알아요. 아니예요. 핍박이 오죠. 손해가 옵니다. 불명예가 옵니다. 그런데 이걸 하는거예요. 다른 사람들은? 이 사람들은 예수님을 왜 찾을까요? 뻔해요. 이득이 오니까 찾는거예요. 이득이 오니까. 유익한거니까. 유익을 얻는 상태라면요, 절대 천국 못 가요. 왜 기복주의를 비난합니까? 그건 완전히 이단이예요. 기복주의는.

 우리는, 하나님이란 놀라운 분을 발견해서 자체적으로 영광이기 때문에 아까울게 하나도 없어요. 아까울게. 아쉬울게 한개도 없어요. 뭐 구원이라는 은총을 떠나서. 너무나 하나님이 위대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것 만으로도 영광이래도요.다 지불하는거예요. 뭣 때문일까요? 그것은 인간이 하나님을 발견하는 한 인간은, 누구든지 다 헌신자가 됩니다. 당연한거예요. 인간이, 하나님을 발견하는 한, 예수님을 발견하는 한, 누구든지 인생을 드리게 되어있어요. 원리가. '너 드려야지' 하지않아도 상관 없어요. 누구든지 예수님을 보게 된다면, 인생이 아깝지 않게 돼있어요. 원리가요. 원리예요. 원리.

 쉽게 말하면, 제자란 것은, '나 제자 돼야지'가 아니고, 예수님을 발견하면 아까운게 한개도 없게되있어요. 예를 들어서 가다가 이마한{주먹만한} 다이아몬드를 내가 발견을 했어요. 가상입니다. 그러면 값이 얼마입니까? 이게 한 뭐, 100억 되겠죠. , 예수님이 나에게 100억 밖에 가치가 없냐? 그겁니다. 그렇찮아요? 인간이 그깟 100억 가지고도 완전히 뒤집어지는데, 그렇찮아요? 예수님은 100억 정도가 아니라 측량할 수없는 어마어마한 무한가치를 갖고있는 분이예요. 내가 이분을 위해서 뭘 못하겠냐 그겁니다. 반댑니다. 내가 그분을 위해서 했는데, 아깝다? 가짜란 얘깁니다. 가짜란 얘기예요. 우린 예수님을 따라가는건 말이죠, 따라가는 것은, 상당히 많이 이론적으로는 이해가 안되는거예요.이 상식으로는. 왜냐하면, 결국은 우리는 바치는거예요, 그게 본론이래도요.

 그런데 그게 뭐예요? 그거를 성경에서는 산 제물이라 합니다. 산 제물로. 너희는 이제 영적 예배를 드려. 산 제물이 뭐냐? 우리는 물론 헌금을 드리죠. 시간을 드립니다. 그럼 모세는 뭐냐? 일부가 아니라 나를 다 드리는거예요. 쏟아 붓는거예요. 그런데 하나 안 아까워. 그리고 그렇게 제자인 자에게 뭐예요? 영광의 면류관을 씌워주는거예요. 하나님께서. 왜냐구요? 하나님의 아들을 위해서 일했기 때문에.

 정부는, 공무원은, 국가를 위해서 일합니다. 돈 주니까 일합니다. 봉급이 나와요. 공무원 월급이 나와요. ? 내가 누구를 위해서 일하며는 다 봉급이 와요. 군인 공무원 , 교육 공무원, 공무원이죠. 우리가 회사에서 사장을 위해서 일하면, 사장에게서 월급이 나와요. 그러죠? 집에서 남편에게 보좌하면 남편에게서 돈이 옵니다. 그죠?

 , 이제 우리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느냐예요. 존재가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 내가 존재하기 위해서 일하는 거예요.그게 뭐예요? 그게 일이예요. 바치는게. 일하는거예요. 그럼 굶어죽냐? 아니예요. 하나님이 책임져 주시는데, 역사가 증명했습니다. 하나님을 잘 섬길 때 굉장히 국가는 부흥하게 돼있습니다. 증명돼 있어요.

 뭐냐하면, 하나님은 자기를 위해 일할 때, 그걸 외면하질 않아요.물론 기이하게는 않죠. 그러나 외면하진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부어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할 때 많은 돈이 들어가고요, 그래서 불신자들은 욕하잖아요. '저것들 다 갖다 바친다' 고 그들은 하나님을 못 만나서 그래요. 그래서 그런다구. '지꺼 다 갖다 바친다'고 하나님을 못 만나서 그래요. 하나님을 만나면, 이게 아까운게 아니라 더 못해서 그래요. 더 못해서, 얼마나 하나님이 위대하신데. 예수님이 얼마나 위대하신데, 그깟 내 인생하고 비교를 합니까?

 거꾸로 말이죠, 황송한거예요. 나같은 죄인을 사랑하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어저께 창세기를 번역하면서, "하갈아!" 있을 수없어요. 하나님이 어떤 분인데, 사람을 이름을 불러? 내 이름을 불러 주셨는데, 하나님께서. 얼마나 감사한지. 날 사랑하시는데, 얼마나 감사한지. 날 용서하시니 얼마나 감사한지. 그렇찮아요? 날 사랑해 주셨고, 날 용서해 주시고, 그리고 나에 대해서--,지금 제자들은 말이죠, 제자들을 찾아가서 불러주셨죠. 이게 너무 감사한거예요. 나같은 죄인을 불러 주시다니?얼마나 감사합니까? 이 눈에 뵈는게 없어요.

 이제 군중은 아닙니다. 그들이 찾는 이유는 이익에 있었지만 제자들은 그렇지 않아요. 예수님이 너무 좋아서 따로 찾는거예요. 이런 차이가 뭐예요? 구원과 아닌 것을 구분해 주는겁니다. 제자는, 구원 받은 자입니다. 군중은, 구원을 이루는 자예요. 구원을 이루는 자. 누구나 군중을 거쳤죠. 하지만 우리가 제자가 되어서 구원에 들어가면, 똑같이 우리는 예수님을 위해서 죽음을 각오할 수있는 것입니다. 아깝지 않은 것입니다. 인생이 안 아까워요. 오히려 내가 못 드려서 아쉬운거예요.

 우리는 때로는 교회에서 직분자가 왜 저럴까? 의아해 할 수도있어요. 저렇게 연약할가? 아니예요. 중심은 깊은거예요. 중심은 깊대도요. 사람은 겉만 보지만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기 때문에--, 중심으로 선택하시는데, 중심이 굉장히 좋은거예요. 결국은 중심이 만들어냅니다. 우리는 제자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내 중심을 바치면, 다 바친겁니다. 우리는 제자들처럼 예수님을 만난 자로서 예수님을 발견하고 그 뜻을 수행하고 하는데, 그것이 즐거움이 되고, 행복이 된다면 우리는 세상에서도 다른 직업을 얻지 않는다 할지라도- 이들이 직업이 없었죠. 다 버렸죠, 직업을요.- 할지라도 우리는 얼마든지 인생을 잘 살 수가있습니다. 이들이 말이죠, 어부를 버렸어요. 어부를. 잘 살았어요 그래도. 직업이 없다 할지라도,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존재하는 제자 된 삶. 그거는, 무한가치 있고, 그거는 최고의 보람이 있는 것입니다. 하루의 모든 시간과 정력과 모든게 하나님을 위해 살아가는 것입니다. 거저 바치는건 없어요. 그래서 제자는, 최고의 직업입니다

마치겠습니다.

사복음교회 박경호목사의 헬라어번역성경 마가복음 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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