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복음교회 박경호목사의 헬라어번역성경 마가복음 강해 29절

 사복음교회 박경호목사의 헬라어번역성경 마가복음 강해


29절

그 분은 새벽 미명에 일어나 나가셨으며, 한적한 장소로 가셨으며, 거기서 기도하셨습니다.

오늘은 마가복음 29절 말씀입니다. "그분은 새벽 미명에 일어나" 분명히 어제 안식일날 설교하시고, 놀라운 가르침을 주신 다음에 또 더러운 영, 귀신들린 사람을 쫓아내주시고, 오후에 또 베드로 장모 병을 고쳐주신 다음에, 밤에 또 사람들이 몰려와서, 귀신들린거 고쳐주신 다음에 새벽에 또 미명에 일어나--, 미명은 6시 넘어서는 아니죠. 미명은 빛이 올까 말까한 상태기 때문에 빠르면 한 4시 될 것 같고요, 하여튼 5시는 안됩니다. 4시 무렵으로 이해됩니다.

그래서 전통적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옛날에, 일제시대 때 새벽기도는 항상 4시였습니다. 그래서 새벽기도 시간이 4시였고요. 나중에 5시로 미뤄집니다. 새벽기도가. 그 다음에 80년대 중반에 들어와서, 일부 교회들이 6시로 미뤄요. 새벽기도를. 지금은 새벽기도가 4, 6시 사이가 많이있죠. 원래는 새벽기도는 예수님을 우리가 흉내내서, 미명. 그러니까 4시 정도가 유효하다고 볼 수있습니다. 3시 반일 수도 있고요. 하여튼 뭐, 4시를 미명이라 부릅니다.

 "새벽 미명에 일어나 나가셨으며" 집 밖에 나가신거죠. 왤까요? 집에서 하시면 되는데 왜 나가실까요? 딴게 아닐겁니다. 기도라는 것이, 이것이 조용히 할 수도 있지만 사실 기도는 원래는 조용히 할 수는 없는겁니다. 기도는. 왜냐하면 기도는 어던 감흥의 부딪힘인데, 감흥. 우리가 노래 부를 때  어떤 순간에 감흥에 젖습니다. 노래할 때. 그렇찮아요? 그래서 노래 부르다가 소리가 확 나올 때가 있습니다. 또 소리를 지를 때가 있죠. 안 지를 수가 없죠. 노래가 어느 순간 막 북받혀 올 때가 있어요.

 마찬가지로 기도도 이게 감흥에 휩싸여서 눈물이 나고, 울음이 나고, 통곡이 나오고--, 감흥이 안 오기 어렵습니다. 물론 이런 것이 없는 기도도 많이 있지만 그러나 진짜 기도는 성령의 감동이 오거든요. 감동이 오는데, 내가 맨정신으로,{라라라라라--}그렇게 되질 않아요. 안 오고 어느 순간부터는 막 깊이 들어가서, 다른 사람의 소리도 안 들리고, 그냥 막 안에서 회개가 터져 나오기도하고, 또 어떤 하나님의 감동으로 막 부르짖기도 하고, 되거든요. 그러니가 성령의 감동이 오기 때문에 그러니까 집에서 하는게 한계가 있는거예요.

 그러니까 나가시는겁니다. 나가셔서. "한적한 장소로 가셨으며" 한적한 곳은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지 않는 장소죠. 그리고 내 소리가 들리는 장소를 말하죠. 그래서 기도는 집에서 할 수도 있지만 그러나 사실은 교회에서 밖에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 당시야 인구가 많지 않았으니까, 지금은 장소가 없어요. 지금은 어디나 사람 많아요. 그래서 지금은 교회 밖에 안돼요. 그래서 교회 만이 유일하게 조용한 장소죠.

지금은 어디 한적한 장소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뭐 산이 있죠. 산에 한적한 장소가 있을 수있죠. 그런데 그것도 산 밑에서 다 들어요. 소리를. 지금 다 듣습니다. 소리를. 그러니까 산도 없어요. 그러니까 지금은 산도 없고 동리도 없습니다. 할 수있는 데가. 그나마 할 수있는 데가 차 안입니다. 차 안. 차는 아무 소리도 못 들으니까. 그러니까 집도 조용할 수있으면 되는데 한계가 있고, 차 안이 참 좋습니다. 차 안이. 그래서 현대인이 가장 좋은 기도처는 사실 승용차 안입니다. 거기서 문 닫고 하면 들리긴 들리는데, 좀 덜 들리죠. 덜 들립니다. 그래서 차 안에서 소리가 아주 커지면 물론 듣습니다. 듣는데, 그래도 차가 덜 들립니다.

 한적한 장소로 가셨으며 거기서 기도하셨습니다. 기도가 뭐냐? 기도는, 내가 어떤 존재로 바뀌는 시간이예요. 기도가 뭐냐? 내가 어떤 존재로 바뀌는 시간이 기도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사람은 뭘 좋아하느냐 하면, 뭐 형통을 좋아하고, 무슨 뭐 직분을 좋아하고, 장관, 대통령, 국회의원, 판사, 의사, 뭐 목사, 전도사, 이런 직분을 좋아하고요, 사람은 어떤 쾌락을 좋아합니다. 쾌락을. 직분, 쾌락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이런 소유적인 삶은, 소유로는 인간이 만족이 안됩니다.

 인간은 소유로 만족이 안돼요. 어떤 직분을 얻고, 어떤 은사를 행하고, 내가 많이 소유하고, 여기에 만족이 없어요. 여기서 만족을 누리는 것이 인본이예요.이게 세속이예요. 이게 인간세계예요.어떤 사람도 이 소유를 누리고 만족을 누리고 싶어하지. 어떤 사람이 처음부터 존재를 누리고 싶어하는 사람 아무도 없어요. 신앙은 이런 소유적인 삶에서 존재적인 삶으로 대전환이 있게됩니다. 대전환.

 우리가 사막에 들어가서 기도를 왜 합니까? 초대 교부들이. 그것은 세상적인 명예나 이런 것을 원치 않을 단계가 오게 돼있습니다. 만약에 아직까지 마음 속에, 세상에서 내가 어떤걸 만들어서 유명하게 되고 , 내가 어떻게 되어서 알려지고, 원한다면 아직은 기도로 온건 아니예요. 그 세계가. 기도가 안된거예요. 쉽게 말하면 하나님 못 만난거예요. 그 사람은. 하나님을 대충 만나는거예요.

 기도 세계는, 쉽게 말하면, 내가 소유적인 삶에서 완전 탈피예요. 뭘 원하느냐? 하나님을 원하는거예요. 하나님을. 하나님 이외에 내가 어떤 좋은 교회당을 원하고, 부흥된 장소를 원하고, 하나님 이외에 내가 이 땅에서 무슨 뭐 어떤걸 원하는건 뭐예요? 아직은 기도가 덜 된거예요. 기도가 좀 들어가면요, 이걸 원치않게 돼있어요. 하나님 이외는 원치않게 돼있어요. 이게 기도예요. 왜 크리스찬들이 기도로 못 들어가느냐? 기도해서 뭐하느냐? 맨날 달라 그래? 그건 뭐예요? 기도가 아닌거예요. 그게. 그거는 기도가 아니예요. 기도가 진입이 안된거예요. 기도가 진입되면, 뭘 원하는게 없어요. 달라는게 없어요. 하나님을 원하게 돼있습니다. 이게 기도예요.

 하나님이 내안에 들어와야만, 강해져야만 내게서 귀신이 나가는거예요. 귀신은 마귀, 귀신 이런 악한 존재들이죠. 하나님과 귀신은 정 반대인데, 기도는 내게 무엇이 이루어지거나 하는 그게 아니라, 기도는 내가 존재가 하나님을 소원하는데, 하나님이 나를 향해서 맘에 들어하는 변화가 기도예요. 존재론적 변화. 존재가 바뀌는거예요. 우리가 천국에 합당한 자가 된다는걸 많이 썼죠. 천국에 합당한 자로 변화시키는게 기도예요.

 바른 기도 안하면 거꾸로 마귀가 들어가요. 그래서 마귀가 들어가는 기도가 꽤 많아요. 그래서 마귀가 들어가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이 들어오는 기도--, 하나님도 내가 원해야 들어오죠. 그렇찮아요? 내가 원하는게 들어옵니다. 하나님을 원하는게 기도예요. 하나님을 소원하는거. 그럼 하나님이 내 안에 들어와요. 그게 뭐예요? 성령님이 채워지는거죠. 성령님은 하나님의 영이시죠.

 우리는 예수님의 영이 우리 안에 계시고요. 우리는 보혜사라 그러죠. 또 하나님의 영이 있죠. 성령님이 두분이예요. 하나님의 영도 성령님이라 불러요. 하나님의 영. 또 우리 안에 들어오신 예수님의 영도 성령님이예요. 예수의 영. 그런데 내 안에 들어오신 분을 보혜사라 부릅니다.그래서 초대교회는, 보혜사가, 예수님의 영이, 내 안에 들어온 사건이예요. 원래 구약은 뭐예요?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들어왔어요. 우리 몸속에. 영 안에는 못 들어와요. 내 영 안에는 오직 예수님의 영만 들어올 수있어요. 예수님은 인간, 사람의 모양으로 돼있죠. 예수님의 영만 우리 영에 들어올 수있어요? 그래서 둘 다 성령님이라 불러요.

 , 예수님이라 부를 수있고, 하나님이라 부를 수있죠. 하나님, 하나님의 영을 성령이라 부르죠. 예수님, 예수님의 영을 성령이라 부르죠. 둘 다 성령님이라 불러요. 다른 분이냐? 같은 분이예요. 그런데. 같은 분이예요. 그런데 좀 달라요. 위치가. 내 영에 들어오시는 그 성령님은, 예수님의 영이고요. 내 몸에 들어오시는 분은 하나님의 영이예요. 그 뿌리가. 그래서 그것이 신약 시대에만 예수님의 영이 우리 영에 들어오시게 되기 때문에, 신약 시대는 다른 시대예요. 구약 때랑.

 구약 때는, 예수님의 영이 우리 영에 들어 올 수없었어요. 우리 영 안에는. 신약 때는 우리 영 안에 들어와요. 요한복음 14장 말씀이예요. 그래서 우리가 우리 안에 있는 예수님의 영이 강화 되는거.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의 영이 강화되는거. 이게 뭐예요? 이게 기도예요. ? 결국 우리는,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서 귀신을 쫓아 내는 것인데, 성령이 뭐냐? 성령이. 성령님의 영은 하나님의 영 혹은 예수님의 영이예요. 그래서 예수의 영 혹 성령의 영이 강할 때 귀신이 우리 말을 쉽게 듣는거예요. 그리고 추방되는거예요.

 기도가 뭐냐? 하나님의 영이 내 육체에서 강해지는 거예요. 예수님의 영이 강해지는 거예요. 다시 말하면 기도가 뭡니까? 기도가? 기도는 결국은 하나님을 원하는데서 출발하는거예요. 기도는 하나님을 소원하는거예요. 하나님을 만나고 싶어하고, 보고 싶어하고, 알고 싶어하고 ,뜻을 알고 싶어하고, 이게 하나님께 집중하게 되는거예요. 내가 누구랑 오피스텔에 있다가 전화가 옵니다. 인제 커피숖에서 누구를 만나죠? 그 사람을 만나죠? 그 사람이 갖고있는 뭐예요? 시계 만납니까? 아니예요. 그 사람 만나는거예요.

 우리가, 기도가 뭐냐? 기도는, 시계나 목걸이가 아니예요. 만나는 대상이. {차고있는}걸 은사라 부릅니다. 시계나 목걸이. 은사가 목적이 아니예요. 기도는. 상대방 하나님을 만나는게 기도예요. 어떻게 됩니까, 그러면? 그 사람에게서 나오는 말을 듣죠. 욕을 듣든지. 얘기를 듣죠. 그러면, 들으면 그 사람에게서 노래를 듣든지, 노래가 나오는거예요. {예수로 나의 구주 삼고} 노래가 나오는거예요. 그 사람 말을 들어요. 어떤 말을 듣습니까? "부모를 공경하라! 주일을 성수하라! " 들으면 그 사람의 진리가 나오는거예요.

 그 사람이 만난 그 사람을 통해서 내가 들은 웃긴 얘기가 나오는거예요. 농담꺼리들이.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주리라" 사실은 농담으로 말씀하셨어요. 그런데 이게 진리예요. 지난 토요일날 안대기도하는데, 진리예요. "너희가 원하는대로 구하라!" 이게 나오는 거예요. 내가 만나서 들었으니까, 내가 누굴 만나면 그 사람을 통해서 진리가 나오고, 노래가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찬양이 있는 것이예요. 하늘에 찬양이 있으니까. 진리가 있는거예요. 이 진리가 나한테 뭐예요? 절대화 되는게 믿음입니다.

 하나님이란 분이 나한테 뭔가를 감동 줬는데,나는 이걸 절대화시키고 살아가요. 절대화. 다른 것을 절대화하지 않아요. 그래서 믿음이 어려운거예요. 믿음은 하나님이라는 분에게서 나오는걸 내가 절대화시키는거예요. "내가 네 자손을 별처럼 만들어 줄께" 절대화예요. "이 땅을 네게 줄께" 절대화예요. 다른 사람의 얘기는 절대화가 되질 않아요. 다른 사람의 얘기는 절대화 되지않고 그냥 아는 지식인데,하나님 얘기는 지식이 아니라 절대화예요. 그러니까 신앙이 절대적이 되는거예요. 이게 아브라함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어디서 믿음이 자라느냐? 믿음은 기도할 때 자랍니다. 맘대로 오해해요. 믿음에 대해서. 왜 이렇게 믿음이 없느냐? 기도를 안해서 그런거예요. 기도를 잘 못해서 그러는거예요. 하나님이 내게 가까워지면, 생각과 꿈과 감정과 계획이 내게 절대화 된데도요. 이것이. 그게 믿음이래도요. 그런데 우리는 믿음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성경을] {다다다다다---} 암기하고, 그거 믿음 아니예요. 믿음은 지식이 아니예요.

 믿음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그분이 영을 통해서 만나질 때, 내안에서 믿음화되는거예요. 그냥. 아는게 아니예요. 그래서 믿음의 행동을 하는거예요. 믿음으로 사고하고. 하나님이 좋아보이는 사람한테 가까이 가는거예요. 칭찬하고 그 사람한테. 그래서 참교회를 가는게 믿음이예요. 하나님은 영이시니까, 이해가 되시죠? 믿음은 출발이 하나님이예요. 하나님이 우리 믿음을 주시는데, 내가 만날 때,--, 그렇찮아요? 만나면 믿음이 생기죠. 누구랑 데이트할 때 어떻게합니까? 처음엔 그냥 만났는데, 어 그 사람이 맘에 드는거예요. 이 사람이. 그래서  결혼하게 될 맘이 생기는거예요. ? 믿어지니까. 믿음은, 반드시 믿는 대상에 대해서 내가 나중에는 결단까지해요. 결단까지. '내가 절대로 이분을 신뢰해야지.' 그죠? 그런 마음이 생기는거예요. '내가 이 분한테 평생 충성해야지.''평생 봉사해야지' 이런 결단까지 오는거예요.

 ? 믿으니까.우리 기도는, 많은 결단을 만들어냅니다. 그래서 기도할 때 뭐가 옵니까? 자기도 모르게 서원기도하게 되는거예요. 자기도 모르게. 내가 이렇게 살꺼예요. '어 나 괜히 했네. 안하면 되는데' 왜요? 그게 오게되는 거예요. 믿으니까. 나도 모르게--, 제가 중학교3학년때, 기도합니다. "하나님 내가 평생 수요예배, 금요철야, 저녁예배 평생 안 빠지겠습니다." 중학생인데. 학생은 물론이고 나오는거예요. 어우 그때 얼마나 당황했는지 몰라요. 내가 막 하는게 아니예요. 기도하는데, '하나님 내가--,{ 어린애잖아요, 중학생인데}, 평생 수요예배와 금요 예배와 저녁예배 평생 안 빠질게요'.나오는 거예요. ? 하나님의 영이 오니까, 나한테 감동 주니까 나오는거지, 내가 뭐 원하겠습니까? 학생예배도 아닌데..... 

기도의 세계는 하나님의 영이 가까이 오셔서, 내가 드디어 영이 채워지면서 내 생각들이 치환되는게 이게 믿음이예요. 믿음은 '내가 믿습니다!' 그게 믿음이 아니라 물론 그것도 믿음으로 올 수있어요. 하지만 믿음은, 하나님의 생각이 내게 들어오는게 믿음이래도요. 그래서 뭐냐? 존재가 바뀌는거예요. 어떻게 하나님처럼. ? 하나님의 영이 내 안에 들어와 계시고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시니까 드디어 내가 그 힘에 의해서 내가 조절되는데, 내가 통치 받는데, 그러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땅이 되는거죠.

 나는 통치 받으니까 땅. 하나님은 나에게 주인되고, 그래서 내가 땅으로서 믿음으로 변화되어서내일 또 축사를 행하는거예요. ? 영을 통해서 하는거예요. 축사는 인간의 결단이나 무슨 주문이 아니예요. 축사는 물리적 힘이 아니예요. 축사는 오직 영으로 하기 때문에 앞에 놓고 하는거예요. 안 건드리고도. 축사할 때 막 이렇게 {머리를 눌러대지 않아도}됩니다. 앞에 놓고하면 하나님이 역사하시는거예요. 어둠이 제압되는거예요.

 우리는 다른 사람을 인도하는 단계에 성장시켜 주시죠. 그래서 뭐합니까? 우린 나중에, 중보기도를 할 수도 있는데, 우리는 축사할 때, 예수님의 이름으로 안수해야 되나요? 아니예요. 손잡고 일어나기도하고, 그냥 말로 쫓아버리기도하고, 어둠을 향해서 . 우리는 하나님의 영이 얼마나 많이 있느냐에 따라서 능력을 행하는데, 능력이 뭡니까? 능력은 하나님의 능력인데, 거룩의 능력입니다. 거룩의 영. 거룩이 능력이예요. 우리가 어두우면, 죄가 있으면 당연히 귀신 붙죠, 누구든지. 다 오는 거예요. 죄가 귀신 이예요. 붙는거예요. 그럼 뭐예요? 내가 귀신이 바글 바글한데, 어떻게 귀신이 나가겠습니까? 그러니까 내가 먼저 죄가 없어야만 거룩해야만, 죄가 없어야만 남에게 있는 귀신을 쫓아내기가 쉬운거예요.

 쉽게 말하면 오늘날 축사는 대부분 가짜래도요.인간은 죄를 짓고 불의하면 절대 귀신 안 나갑니다. 내것도 안 나가요. 남의 것을 떠나서. 거룩해야 귀신 나가는거예요. 그래서 기도는 하나님이 나한테 많이 스며드는 시간인데, 우리가 스펀지가 있으면 물이 스며들죠. 똑 같아요. 기도를 하는데, 그 바른 기도를 통해서 자신 안에 예수님이 스며들면 뭐합니까? 하나님이 일을 하시는거예요.

 일이 뭡니까? 일은 다른 영혼을 빛으로 오게 하는게 일이예요. 그래서 죄를 벗어버리고, 빛이 있으면 거기 참 만족이 있으니까요. 세상에는, 소유로는 절대 만족이 없어요. 그런데 존재가 만족됩니다. 그래서 존재를 위해서, 그렇찮아요? 맨날 기도합니다. '그거 해서 뭐하냐?' '기도해서 뭘 얻냐?' 얻는거 없대도요. 신앙은 얻는 세계가 아니예요. ', 내가 뭐 은사를 얻고' 은사 없어도 돼. 뭐 주시면 받지만, 뭘 얻는게 기도가 아니고, 바뀌는게 기독교래도요. 바뀌는게. 내가 바뀌어야돼요. 그게 목적이예요. 바뀌기 위해서 시간을 드리는거예요.

 그런데 하나님은 돈 만 받고 천국으로 인도하는 분이 아니잖아요? 하나님은 우리가 바뀐 존재를 좋아해요. 우리가 바뀐 상태에서는, 가다가 휴지만 주워도 하늘에 상이 쌓이는데, 내가 안 바뀌면 목숨을 내걸어도 하늘에 상이 안 쌓여요. 하나님의 평가는, 왜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귀히 보시느냐? 어떤 사람은 천히 보시느냐? 딴거 아니예요. 하나님께서는 원칙이 존재로 보기 때문이예요. '어떤 존재냐?'예요. 그 사람이 무슨 뭐 설교를 억수로 잘해서 기뻐하는게 아니라 한편을 한다 할지라도, 그 사람이 바뀌었으면 그걸 기뻐하시는 분이예요.

 제가 하나님 앞에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하나님 나 찬송도, 내가 목소리 안 좋은데--, " 내가 찬송 부르는 걸 하나님이 원하시는거예요. 그런 고민을 엄청 많이 없어요. , 내가 찬송 좋아하지도 않는데. 그런데 어느날 어떤 감동을 주시느냐하면, "나는 너의 찬양을 듣고싶다."하시는거예요. 희한 하잖아요? 아니 세상에는 찬송 잘하는 사람 엄청 많은데, 아니 그러시는거예요. "나는 너의 찬양을 듣고싶다." 는 거예요. 세상에는 수 많은 노래가 있습니다. 하지만 뭐예요? 하나님은 내가 볼 때, 좀 맘에 드는 사람의 것을 듣고싶어해요.

 설교의 분량, 찬양의 분량, 이런 분량이 중요한게 아니라 어떤 존재냐가 훨씬 중요하기 때문에 다윗을 사랑하신 거예요. 다윗이 나가서 무슨 일했습니까? 아니예요. 그냥 존재예요. 그 존재가 우리 목표가 되는거예요. '내가 어떤 하나님의 일을 해야지' 안해도 돼요. '어떤 직분을 가져야지.' 안 가져도 됩니다.내가 어떤 존재냐가 중요한거예요. 그러면 그 존재가 뭐예요? 그 존재가 모든 일을 만들어내는거예요. 진짜 일들을요.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갈 때, 기도할 때마다 우리는 물론 많은 것을 구할 수가있죠. 죄가 되는게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는 기도의 목적은 존재의 변화임을 알아야되는데, 이걸 사람들이 모른다는거예요. 기도의 세계에 대해서. 자꾸 기도를 뭐가 이루어지고, 뭐가 나타나고, 아니예요. 모든 기도의 목적은 존재의 변화,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닮아가는데, 영이 오면 변화가 와요. 그래서 기도는, 믿음을 주는 시간이예요. 그래서 내가 영이 강해지면 자생적인 만족감이 와요. 인생 만족감. 뭘 안샀는데, 일이 안됐는데, 일이 막혔는데도 고통스럽지 않아요. 일의 상황에 의해서 이 마음이 움직이질 않아요.그냥 평강이 오고요. 평안함이 와요. 그리고 그 위에 플러스로, 금상첨화로 일이 되는 부가적인 복을 또 주시는거예요. 하나님께서. ? 내가 됐기 때문에.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를 하나님 앞에 드릴 때마다 왜 내가 한번 드리고, 또 드리고, 또드리느냐? 그것은 내가 할 때마다 변화되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존재의 온전한 변화, 이것이 축사의 힘이고 파워입니다

마치겠습니다.

사복음교회 박경호목사의 헬라어번역성경 마가복음 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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