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복음교회 박경호목사의 헬라어번역성경 마가복음 강해 26절
사복음교회 박경호목사의 헬라어번역성경 마가복음 강해
26절
그분이 나아오셔서 그녀의 손을 잡아, 그녀를 일으키셨습니다. 열이 곧바로 그녀를 떠났으며, 그녀가 그들을 섬겼습니다.
오늘은 마가복음 26절 말씀입니다. "그분이 나아오셔서" 장모가 옆에 누워있는 상태고, 침대에 있는 상태고, 제자들이 병들었다고 말을 듣고, 나온다는 얘기는 장모가 있는 쪽으로 나온거죠. 그리로 가서, "그녀의 손을 잡아" 손을 잡아? 우리 같으면 그냥 안수를 하거나, 침대 옆에 몸에 손을 얹고 기도하거나 또는 그냥 멀찌감치 기도할텐데, 예수님은 그게 없어요. 과정이 없어요. 그냥 바로 손을 잡고, 그녀를 일으키신거예요. "와!""와우, 와우" 자, 고민 하지않죠? 심방갔어요. 갔는데 아픈 사람이 누워있어요. 누워있는데, 기도도 하지않고, 명령도 하지않고, 쫓지도않고, 그냥 손잡고 일으킵니다. 놀라지 않습니까? 쉽게 말하면 우리가 알고있는 과정이 없어요. 옆에서 손잡고 기도하거나, 안수하거나, {귀신을}쫓아내는 축사도 없고, 그냥 손잡고 일으키신거예요.
그러면 이런 파워power가 어디 있느냐?예요. 이런 파워. 이런 파워가 우리에게 있다라는 믿음을 갖기를 원하세요. 하나님께서는...... 내가 갖고있는 병이나, 남이 가진 병이나, 우리는 상대할 때, 너무 과정을 이해할 때, 과정에 충실 하려고 애쓰는 경우가 많아요. 열심히 방언으로 기도하고, 열심히 해요. 그런데 그런 과정이 멈추는 경우가 굉장히 많아요. 멈추는 경우가. 지금 목적은 뭡니까? 일어나라는거 거든요. 그럼 뭐예요? 그냥 일으킬 수있는 거예요. 그럼 그냥 하는거냐? 그건 아니예요. 못 일어납니다. 못 일어나는 분을 일으켜 주는거예요.
만약 우리가 갔는데 아픈 성도가 있습니다. 예배드리러 갔는데, 제가 가서, 손잡고 일으키면 못 일어나요. 절대 못 일어납니다. 예수님은 가능해요. 우린 안되냐? 그건 아닙니다. 뭐냐하면 내가 손잡고 일으킬 수있다는 믿음이 왔다면 뭐예요? 일으키면 되는거예요. 자, 성령님께서 나한테 감동을 줘야돼요. "손잡고 일으켜라!" 감동이 오면 하는거예요. 성령님이 감동을 줘서, "안수해라!" 안수하면 되는거예요. 명령하면 되는거예요. 지금 예수님의 행동양식이 지금 이해가 안되죠? 사실은. 하지만 그 행동양식 뒤에 뭐가 있습니까? 성령님의 음성이 있는 것입니다. 성령의 내적인 음성, 감동은, 이것은 모든 하나님의 일에 있어서의 메인 파트main part입니다.
어떻게 해야 되느냐? 차타고 가면서, '이걸 어떻할까? ' 하는게 아니라, 가면서 감동이 오는겁니다. '손잡고 일으키면 되겠다.' 하고 확신이 왔을 때, 일으키는 거예요. 되는거예요. 쉽게 말하면, 모든 치료와 모든 축사의 원칙은 뭡니까? 외부가 아니라 내게 주신 말씀을 따라 행동하는 거예요. 말씀을 따라...... 그 말씀이 뭐예요? 오늘도 살아계신 하나님의 음성인 것입니다. "성경 봅시다. 써있죠? " 라는게 아니라, 그게 아니라, 오늘도 과거에 이 말씀을 주신 하나님께서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시는데, 그 말씀을 하시는 그 말씀에 근거해서, 우리는 누구를 일으킨다는 거예요.
이런 경우가 있습니다. 몇년 전이죠. 왔는데 손을 딱 얹었는데, "내가 1년 안에 널 일으킬 것이다." 말씀이 나왔어요. 음성이 나왔죠. 실제로 1년 안에 휠체어 타던 분이 걷고--, 일어나 걸어요. 근데 본인이 생각할 때는 "어, 완치될 줄 알았는데" 그거 자기 생각인데, 막 머리를 굴려요. 왜? 하나님 명령사항을 관심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와꾸(=생각의 틀)가 돌아가는거예요, 인간의 틀. 하나님 말씀에 기초해야되는데, 자기 생각이 돌아가는거예요.
하나님이 우리를 치료하실 때는, 절대적으로 누구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 만 들려줘요. 말씀 만.명령만 들어야 됩니다. 명령만. 명령에서 모든게 운행 되는거예요. 하나님 말씀에 의해서 모든게 돌아갑니다. 그래서 말씀만 붙잡아야 되는데, "어, 완치 될 줄 알았는데" 내가 병을 뭐라고 합니까? 저는 몰라요. 대언자죠. 대언자. "일어나 걸을 것이다."걷게해주면 끝나는 거예요. 근데, 완치가 왜 안되냐? 생각하는거예요. 이게 뭐예요? 이게 마귀 역사예요. 마귀 역사. 자기가 막 연구해. 막 자기가 연구하고, 자기가 막 답을 찾아내고.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서, 성령님의 음성이 개입되면서, 우린 혜택을 누리는데, 분명히 예수님께서 잡아 일으키면 일어나는거예요. 거기 아무 것도 없어요. 그런 행동을 왜 하느냐? 성령의 음성이 오면서 행동화된 거예요. 축사도 없고, 신유기도도 없고, 회개도 없어요. 이해가 되시죠? 성령의 음성은 우리를 초월하는거예요. 때로는 회개 시킬 때도 있고요, 또 무슨 죄 때문이야 하고 죄를 지적할 때도 있고요.
성도님 한분이 상담을 청했는데, 하나님 답변이 이상합니다. 예외적이예요. "자기 비하하지 말라!" "괘념치 말고 그 때마다 이겨라." 이게 하나님의 음성이예요. '그런말 하지말고 고쳐봐요' 새로 온 사람들이 그럽니다. '왜 난 못고쳐요' 인간이 고치는게 아니예요. '아, 그분 능력이 없어. 아, 못고쳐. 나보고 어떻게 하래.'그게 아니라 하나님 음성은 동일합니다. 하나님 음성이 치료하는거예요. 음성이. 치료 원리는 인간이 아니고요. 음성이 뭐라 할지라도, 그냥 받아들이는 거예요.
하나님의 치료 방법은 너무 다양합니다. 그러면 그 음성 붙잡고 나가는건데, 사람은, 자기 틀이 있어요. ' 기도 받고 날줄 알았는데' 근데 그게 아니예요.자기 보고 싸우라는거예요. 그 생각과 싸우라는거예요. 여기서 우리 인간은 당황하는거예요. 우리가 지금 이것을 받아야 될지. 얼마나 당황되겠습니까? 옛날에도 사람들이 분명히 안수할 줄 알았는데, 또는 막 기도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고 그냥 일으키는거예요. 하나님 방법이예요. 우리는 우리의 뇌가요, 사실 다 무너져야되요. 인간의 뇌가..... 왜냐하면요, 우리 인간은, 이제까지 해왔던 습관이 있고요, 해왔던 틀이 있어요. 그게 무너지지 않으면 절대 신앙생활이 안됩니다.
신앙생활이. 하나님께서 때로는, 바로 즉각 치료해 주기도 하고요, 회개시키기도 하고, 약 먹으라고할 때도 있고요. 병원 가라고 할 때도 있고요, 너무 다양하거든요. 때로는 너 지은 죄를 회개하라고 할 때도 있고요. 몇개월 동안. 어떤 때는 금식하라는 경우도 있고, 하나님 음성이라는게. 지금처럼 뭐예요? 그냥 손잡고 일어나시라는 거예요. 그게 뭐예요. 이게 진리가 되는거예요. 왜? 성령의 음성이 개입된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치료의 역사 가운데, 벌떡 일어나는 경우가 있죠? 그것도 가능한거예요. 아무 것도 안했어요. 그런데 일어나는 거예요. 가능한 거예요. 때로는 하나님께서는 병을 치료 못한다고 말씀하실 경우도 있어요. 당황돼요. 뭐가 중심입니까? 성령 하나님이---, 말씀이 중심이 되는거예요.
그래서 이런 경우는 어떻게 됩니까? "열이 곧바로 그녀를 떠났으며," 자, 장모가 누워있는데, 예수님이 손잡고 일으키니까, 힘이 나면서 일어나는거예요. 물론 반반이죠. 몸이 아프고 고통스러운데, 못 일어나는데, 뭔가 힘이 주어지면서 자동적으로 일어나는겁니다. 중요합니다. 환자에게 믿음이 있어야 됩니다. 어떤 믿음? 순종의 믿음이 있어야 됩니다. 순종의 믿음.
누가 날 일으킵니다. 일으키는데, '나 못 일어나' 하고 버티는 거예요. 근데 억지로 일으키니까, 자의 반 타의 반이죠? 억지로 일어나는데, 이게 매우 중요한 거예요. 일어났는데, 신기한 일이 일어납니다. 병은 치료됩니까? 병이요? 아직 안 나은거예요. 열병이 있는데, 일어나면 나은겁니까? 나은거 아니예요. 그렇죠? 나은게 아닌데. 그때 신기한 일이 일어나는데, 나는 그냥 그분이 손잡고 일으켜서 몸을 일으켜서 일어났는데, 놀라운 일이 일어난 거예요." 곧바로 열이 그녀를 떠났으며." 드디어 완치된 거예요.
일어날 때가 완치 아니예요. 자, 중요합니다. "1년 뒤에 너를 걷게할 것이다." 걷는다고 치료됩니까? 아니예요. 하지만 그 다음에 하나님께 나아가면 진찌 치료가 일어나는데, 치료를 못 받는거죠, 왜 못 받느냐? 진짜는 뭡니까? 완전한 건강이거든요. 왜 그렇게 되느냐? 순종이 문제예요. 순종이 문제인데 누구한테 순종 합니까? 하나님께 순종하는거예요? 아니야! 하나님 눈에 안보여. 하나님의 대변인 그 사람에게 순종하는거예요.
오늘날 기독교가 왜 문제냐? 하나님을 직접 상대하려해요. 하나님을..... '오세요.' '하나님 어딨어요?' 해서 기독교가 망가지는 거예요. 안된대도요. 날 잡아 일으킨 그분께 순종하는거예요. 순종했더니 뭐예요? 드디어 병이 완치된 거예요. 왜 사람들의 병이 안 나을까요? 근본적으로. 증상개선은 돼요. 치료가 왜 안되느냐? 마음에 순종이 안돼. 순종이 왜 안되느냐? 나를 잡아일으킨 그분을 하나님의 말씀의 대언자로 받아들여서, 전폭 순종해야 됩니다.
천국을 어떻게 갈까요? 천국으로 인도하는 하나님께 보냄 받은자, 선지자의 말을 순종해야 되는데, 전부 다 직접 상대하려 해요 하나님을. 교회 목사, 전도사, 이게 자기에겐 똑같이 보이는거예요. 같은 레벨level로..... 예수님만 그리스도고 우리의 인도자가 되시니까, 같은 거라는 거예요. 하지만 뭐예요? 예배가운데, 모든 진행가운데는, 그 인도자가 하나님을 대신해서 역사하기 때문에 그 말씀에 순종하는게 하나님께 순종하는게 되는겁니다.
그죠? 근데, 이게 순종이 안되는 거예요. 나를 일으킨 그분께 순종하면, 근본적인 치료가 일어나는데, 인간은 순종을 통해서 어둠이 떠나가는거예요. 어둠은. 우리는 어둠이라 말하죠. 어둠은 마귀의 표현이 아니예요. 어둠은, 불순종의 영입니다. 아무것도 아니예요. 마귀는 순종을 못하는게 마귀예요. 그런데 마귀는, 내가 순종할 때 떠나가요. 웃기죠. 우린 마귀를 다 내보내고 싶어해요.{나가! 나가!} 안나가요. 내가 예수님께 순종할 때 마귀는 나가는 거예요.
그래서 순종의 세상은 기쁨과 즐거움과 행복과 건강이 넘쳐나요. 반대로 불순종의 세상은, 침울함과 우울함과, 대인공포와 대인기피와 공황장애와 갈등과 미움과 원망이 넘쳐 나요. 이 세계는..... 그 때에 인간은, 이상하게도, 마귀에게 순종했던 이 습관이 강해서, 순종을 거부합니다. 싫어하고. 치료 역사 가운데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순종입니다. 믿음이 아니예요. 순종이 팩트fact예요. 누구에 대해서 내게 말씀을 전하고, 질병을 치료하는 그분에 대해서 내가 순종할 때 되는데, 지금 만약에 이 장모가 속으로 일으킬 때 "날 왜 일으켜? 기도도 안해주고. 안수 한번 안해주고 그렇찮아요?"하고 했으면, 거부감이 있죠. 이 거부감이 마귀래도요.
자기 왁꾸가 마귀예요. 이 왁꾸가. '아, 저 사람 왜 저렇게 행동해? 낫게 하지 못하고 ' 이 왁꾸가 마귀래도요. 이게요. 그렇찮아요? 날 위해서 기도하러 온 사람이 명령할 때 해야되는데, 인간은 왁꾸가 다 있어요. 인간은 모두가요. '저렇게 밖에 안돼? 일으켜서 나았다 말하려고?' 거부감이 인간에게 있어요. 순종은 이게 없는거예요. 보십시오, 장모가 전에 예수님 말씀을 들었을까요? 모릅니다. 하여튼 중요한 것은 그 순간적인 순종은, 우리가 순종성이 있단 얘기예요.
순종성. 그 순종성이 뭐예요? 그게 믿음인겁니다. 믿음은, 순종성이 믿음이예요. 일으키는데, 믿음으로 일어납니다. 믿음으로 일으키니까 일어났어요. 그런데 놀랍게도 그 때 열이 떠났어요. 열이란 것은 뭐예요? 드디어 열병을 주는 인자가 떠나간거예요. 열병. 열이 있으니까 열병이었죠. 못 일어나는 것은 뭐예요? 이것은 증상이었죠. '나 못걸어.' 이것은 증상이예요. 근데 뭐예요? 어떻게 됩니까? 그 그본적인 원인인 열병이 다 나가니까, 드디어 자유를 얻은거예요. 치료가 일어난겁니다.
"그녀가 그들을 섬겼습니다." 자, 지금 장모가 말이죠 내가 볼 때는 자기 사위나 시몬이나 또 시몬의 동생 안드레 같이 온 사람이 요한과 야고보 예수님. 다 남자들이예요. 남자들. 그래서 제가 볼 때는 여자가 없을 수도있고요. 또 여자는 있는데, 제가 볼때는 장모가 드디어 밥을 해 줄 수있고요. 접대를 할 수있고요. 또는 도울 수있겠죠? 여자가 할 수있는 일이 있죠. 그걸로 섬기는겁니다.
하나님께서 내 딸을 왜 고쳐주실까요? 나를 왜 낫게 하실까요? 목적이 뭘까요? 건강을 위해서? 그것이 미혹입니다. 우리의 건강이 목적이 아니예요. 우리의 부요함이 목적이 아니래도요. 돈 가지고 뭐하려고? 돈 가지고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 물복을 주시는 거예요. 물복이 목적이 아니예요. 건강을 가지고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 건강을 주시는거 예요. 날 왜 치료해 주셨냐?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한거예요.이 목적이 없으면 뭐예요? 그 모든 치료는 뭐예요? 오히려 이것이 사단적이 되는거예요. 거꾸로.
만약에 장모가 일어났어요. 여행 다니고, 쇼핑 다니고 뭡니까? 거꾸로 지옥 갈 형벌만 쌓는거예요. 장모가 일어나서 뭡니까? 드디어 예수님을 섬깁니다. 예수님을 섬기는게 뭐예요? 교회에서 기도로 섬기고, 헌금으로 섬기고, 전도로 섬기고, 봉사로 섬기는거예요. 이게 뭐예요? 이게 목적입니다. 목적. 교회는, 여기에서 내가 문제해결이 목적이 아니예요. 문제해결이. 우린 많은 경우에, 문제 해결의 목적으로 기도를 하고요. 문제해결의 목적으로 교회에서 안수 받고요, 문제해결의 목적으로 자기 스스로 기도합니다. 이게 뭐예요? 걸국은 누굴 만나느냐? 마귀를 만납니다. 마귀를. 마귀를 만나요.
문제해결이 목적이 아니래도요. 우리는 다 문제가 있어요. 목적이 아니예요. 뭡니까? 목적은 내가 하나님을 섬기는게 목적이예요. 문제 해결 안돼도 돼요. 섬기면 되는거예요. 근데 언제 나가 떨어지느냐? 내가 이 세상에서 왕 노릇 하고싶어. 인간은 누구든지, 이 땅에서. 내가 잘 되고. 잘 살고 떵떵거리고 싶고요. 빛나고 싶고, 이게 뭐예요? 이게 바로 사단적인 거예요. 우린 예수님을 섬길 때만이 비로소 사람은, 행복할 수있는 거예요. 하나님, 예수님, 남자, 여자, 자녀라고 기록되있어요. 에베소서에. 구도가. 일단 여자가 남편을 섬길 때 기쁨을 느낍니다. 그죠? 그렇게 돼있어요. 마찬가지로 남자는 예수님을 섬길 때 기쁨을 느끼게 돼있어요.
자, 우리가 교회에서 섬길 때 기쁨을 느끼게 돼있어요. 기쁨은, 설교 들을 때 오는게 아니예요. 내가 섬길 때 옵니다. 기쁨은. 이제 장모님은 어떻게 됐습니까? 드디어 참 만족을 누리는데 어떻게 됐습니까? 건강 때문에? 아니예요. 섬김으로 만족을 누리는겁니다. 우리 모든 신유와 축사는 왜 존재하느냐? 내가 드디어 이 자유함과 이 기쁨과 건강 가지고 하나님을 마음껏 섬기는 방법입니다. 우리는 골골 하면서도 공부할 수있어요. 그렇찮아요? 그렇지만 우리가 건강 가지고 심부름할 수도 있고요, 그리고 봉사할 수도 있고, 해서 섬기는겁니다. 이 섬김이 뭐예요? 하늘에 상으로 쌓는거예요.
만약에 몸이 아프면서도 우리는 천국 갈 수있어요. 그런데 나으면 어떻게 됩니까? 그 건강 가지고 하나님의 일을 하는거예요. 음악적인 일도 할 수있고요. 하늘에 상이 쌓이는 거예요. 자, 어떤 길을 원하느냐예요. 내가 아플 수있어요. 회개하면서 누워서 죽으면 천국 갑니다. 근데 하나님께선 뭐예요? 더 나은 길이 있어요? 치료 받아가지고 섬기는 거예요. 더 나은 길이죠. 우리는 가난할 수도있어요. 하지만 물질을 가지고 섬김을 통해서 하늘에 상급을 쌓는거예요. 이 섬김의 삶이 치료의 목적입니다.
그래서 교회 와서 치료 받으면 떠나갑니다. 하나님을. 대부분 그래요. 이상하게도, 몸이 아파서 교회 와요. 나으면 다 가요. 그게 바로 오늘날의 문제예요. 아니 아플 때는 그렇게 낫게 해달라고 붙습니다. 막 눈물로 나와요. 나으면 언제 봤냐고 나가고요. 나았냐 물어보면 약 먹어서 나았대. 약 먹어서. 그리고 치료를 예수님께 영광 돌리지않고 하는거예요. 이런게 뭐예요? 장모가 누워 있다가 일어나니까, 원래 나을 때 낫는다는거예요. 나을 때 나았대요. 결국 지옥 갑니다. 이 사람은. 하나님이 고쳐 주는 경우도 그 때 나을 때 낫는다는거예요 그러니까 치료에 있어서 많은 회의감이 있는거예요. 왜? 나중에 딴소리하니까. 그런게 몇번이냐? 7,80번. 딴소리를 해요. 딴소리를. 나을걸 낫는데, 목사님이 그 때 기도했다는거예요. 그 때. 나을건데 기도했다는 거예요. 목사님이 그 때. 딱 고 때. 나을건데, 그 때 기도했다는거예요. 이게 답이 없는거예요.
그래서 신유 현장에서 우리가 갈등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음성이 있는데,항상 그게 있는거예요. 나은 다음에 어떻게 할것인가? 그 뒤를 모르는거예요. 왜요? 많은 경우에 나은 다음에, 회복된 다음에 오리발 내밀어요. 오리발. 환상의 세계에서 오리가 나오거든요. 그러면 지옥 가는 사람이예요. 오리는 원래 천국 가는 사람인데, 오리가 되는 경우가 있어요. 그 사람이. 그러면 그 사람은 육에 싸인 상태예요. 나중에 물론 돌아올 수있죠. 다시 원 모습으로. 하지만 오리는, 그것은 육에 휩싸인 상태예요. 오리발, 오리발[ㅎ ㅎ]그 모든 치료와 은혜가 하나님 일 하라고 줬는데, 그거를 거꾸로 자기 영광으로 돌리는 경우, 오리발 내미는거예요.
우리는 내가 자신이 갖고있는 과거의 정서적인 고통, 마음의 아픔, 어떤 육체적인 질병상태에서 회복되었습니까? 우리는 은혜를 잊으면 안됩니다. 반드시 은혜를 갚아야됩니다. 갚고 평생 주의 군사로서 산다면, 우리가, 내가, 죽었을 자가 살아났으니 예수님께서 기뻐할 것이고요. 또 교회 목사님도 기뻐할 것아닙니까? 우리가 그 낫는 얄팍한 어떤, 절대적인 기쁨보다도, 나중에 봉사의 기쁨이 큰 것이고요, 하나님 앞에 영광 돌리는게 큰 것입니다. 우리는 몸이 좋아진 다음에 절대로 오리발 내밀면 안됩니다. 저는 많은 병이 나은 사람입니다. 하나님 앞에.전 늘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있죠. 저는 많은 병을 고침 받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저는 늘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내가 몸이 부서져도 할 말 없어요. 왜? 내가 하나님 앞에 고침 받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많이 고침 받고 또 영혼이 고침받은 우리는, 절대 오리발 내밀면 안되고요. 끝까지 이 건강 가지고 충성을 다해야됩니다.
마치겠습니다.
사복음교회 박경호목사의 헬라어번역성경 마가복음 강해
thddycjf572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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