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복음교회 박경호목사의 헬라어번역성경 마가복음 강해 17절
사복음교회 박경호목사의 헬라어번역성경 마가복음 강해
17절
곧바로 그들을 부르셨습니다. 그들은 품꾼들과 함께 배에 있는 그들의 아버지 세베대를 버리고, 그분을 따라 갔습니다.
오늘은 마가복음 17절 말씀입니다 . "곧바로 그들을.부르셨습니다" 그물을 깁고 있는 요한과 안드레, 야고보가 깁고 있는데 부르신거예요. 뭐, 끝나버린 것도 아니고요. 일하고 있는데 부른겁니다. 성격도 급하셔라. 부른 겁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막 하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 입장에서는 그물을 깁는 것보다는 빨리 제자가 되어가지고 영혼 구령이 더 낫다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내가 그일을 안하는 것도 아니고 열심히 하고있는데, 또 효과도 보고있는데, 근데 하나님께서 나를 부를 때 당황할 수가있죠. 근데 예수님께서는 안그래요. 불러 버리십니다. "그들은 품꾼들과 함께 배에 있는 그들의 아버지 세배데를 버리고," 자, 배에 있는 품꾼들. 쉽게 말하면 이 어업이 잘 되서, 성공했어요. 그래서 아버지가 선박회사, 어업의 사장이고 당연히 또 아버지 밑에서 일하는 품꾼들도 있으니까, 뭐예요? 꽤 굉장히 번성한--, 배도 컷을 것이구요, 성공한 사업이예요.
베드로와 안드레는 성공한 사업은 아니예요. 안드레는 약간은 좀 열악한 자영업자인데, 지금 요한과 그리고 이 야고보는 자영업자가 아니예요. 중소기업이예요. 중소기업. 유망한 사업이예요. 유망한 사업. 나중에 부모를 이어 받을 수있는 겁니다. 아, 이거 정말 쉽게 말해서 금수저예요, 금수저. 가만 있어도, 가만 있어도 유복한 삶을 사는 상황인데, 더 나아가서 일이 맘에 들어요. 적성에 맞아가지구 열심히 일하는데, 그 때 인제 뭡니까? 부르신 거예요. 근데 아버지를 버리고 집을 버리고 그분을 따라갔습니다. 세상에 그렇게 좋은 조건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간 것입니다. 쉬운걸까요? 엄청 어려운겁니다.
그런데 사실 따라가는게 어려운건 아니예요. 따라가는 것이 어려운건 아닙니다. 그럼 뭐가 어려운 것입니까? 이제 왜 예수님 따르는 것이 어려운 것인가를 설명해 드릴려고합니다. 왜 어려운 것인가? 예수님 따르기가. 우리는 말합니다. 나에게도 말씀하시면, 순종하겠다고. 근데 말씀 안하십니다. 그게 어려운 거예요. 하나님이 말씀을 주시면 우리는 하겠다지만 말씀 안하신대도요. 왜 안하시느냐? 순종을 못해서 안하시는거예요. 못하긴요? 얼마나 열심인데요. 아니예요. 성령의 음성이 들려오며는, 그 과정이 있습니다. 성령의 음성은 그냥 들려오는게 아니예요.
아브라함 때 사람이 엄청 많았죠? 왜 아브라함만 들려왔을까요? 음성이. 하나님이 딴 사람한테는 말을 못해요. 왜 못하느냐? 감동도 못하는데, 무슨 순종을 해? 감동도 순종 못하는데, 감동. "교회가라! 가지마라!""에이 가지 말아야지" 이게 인간인데. 어떻게 음성 들려줘요? 감동도 못해, 감동도. 처음엔 감동으로 옵니다. 성령의 음성이. 감동으로. 절대 귀에 음성으로 안와요. 근데 순종 못합니다."이거 하지마라!" 하고 싶어. 그런데 뭘 음성 들려주겠어요? 그런 수준에서 그렇찮아요? 아니 감동도 못해? 심지어 목회자가 명령합니다. "이거 합시다." 그러면 "아이 내가 뭐, 그거 뭐 목사님이 틀릴 수도있죠.--"하고 안해. 아 이럴 때 무슨 음성이 들려 오겠어요?
감동도 순종 못하고 목회자의 뜻도 순종 못하는데, 무슨 음성이 들려오겠습니까? 성경은, 성경은 성령의 음성의 연속이예요. 성경이라는게. 근데 그게 도달 될 때까지는 많은 과정이 있는데, 이미 다 떨어지는거예요. 그 과정 까지는요. 못하는거예요. 감동도 순종 못하고, 목회자의 말에 순종 못하는겁니다. 그래서 이거 볼 때 먼 얘기예요. "아니 나 안불렀는데?--."당연히 안 부르죠. 왜 안 부르느냐? 먼저 기초적인 토양이 되야되는데, 기본적인 훈련이 안된겁니다. 뭐예요? 작은 것의 순종이죠. 작은 것. 무엇에 순종합니까? 설교 말씀에 순종해야죠. 그렇찮아요?
설교는 저리가라! 나는 음성 필요해. 이러면 끝나는 거예요. 그런 사람은 길이 없는거예요. 항상 작은게 있어요. 설교에 순종하고, 목사님 말씀에 순종하고, 감동에 순종하는게 많이 될 때, 뭡니까? 나중에 음성이 들려옵니다. 처음엔 그런게 안와요. 쉽게 말하면 지금 야고보와 요한이라는 사람이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할 때까지는, 엄청나게 많은 시간과 과정이 있었다는 것이거든요. 요한도 세례요한에게 가서 많이 영적으로 단련 받은 사람이고요, 우리는 신앙생활 할 때, "어우 뭐 아브라함은 가난안 땅 가라 그랬으니까 갔지." 그 과정까지가 많은게 있대도요. 데라에게 순종하구, 교회 목회자니까. 가나안 땅 가라 그래서 순종하고, 순종해서 따른 결과들이지,그것이.
그래서 우리는 제자 되는 것은 뭐예요? 순종인데. 순종도 어떤 단계가 있는 것입니다.십계명에 순종해야 됩니다. 산상수훈에 순종해야 됩니다.성령 음성에 순종해야 됩니다. 이게 우리의 구원관이예요. 그러면 성령의 음성? 틀리면 어떡하냐? 이런 수준에 있어요. 십계명 안 따르면 산상수훈 못 따르죠.산상수훈은 십계명보다 높은 단계죠. 그죠? 성령 음성은 산상수훈 보다 높은 단계에 있는게 성령의 음성이예요.뭐냐하면 내가 기초적으로 십계명 안 지키면 산상수훈은 더 못 지키니까, 마찬가지로 성령의 음성은 산상수훈을 넘어서야 오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과 코드code가 맞아야 되니까.
뭐냐하면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아이, 나도 좀 예수님이 오시지!" 그럴 수가 있어요. "나도 할 수있는데." 하긴 뭘하냐? 하긴 뭘해? 조그마한 것도 순종 못하는데. 자기 자아도 못 이기고, 조그만 자기 판단으로 하는데 어떻게 순종이 됩니까? 우리는 조그만 것을 순종하는데, 우리 임 목사님이 그러더라고요. 자기는 기도원이나 교회 갈 때 참 두려워한대요. 갈 때마다 딴게 아니라 몽땅 헌금하라 그러신대요. 몽땅. 그 열악한 가난한 목사님이 돈이 얼마 있겠어요? 몽땅 드리고 오시는거예요. 어딜 가던지. 이거 왜 하느냐? 순종이예요. 순종. 하나님이 돈이 없으시겠어요? 거기다 우리 사정 모르시겠어요? 근데 때로는 헌금에 순종하고, 쉽게 말하면, 성령의 음성이라는 내용은 정말 참 우리에게 고난도 어려운 것이지만 이것을 얻는데까지 과정을 이해해야만 우리는 신앙을 이해할 수있는 겁니다.
음성이 들려오고 심지어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을 봤다구 돼있어요,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보이시니라. 자기를" 그럼 우리는, "아, 구약에--" 아니예요. 신앙이 당대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을 직접 봤죠, 등을. 모세는요. 그러면 "선생님 말이 돼요? 등이, 하나님이 등이 어딨어?" 그러면 할 말 없는거예요.그럼 뭘 믿겠어요? 그러면? 신앙은요, 내가 있는 단계에서 내가 할 수 있는게 있어요. 할 수있는거. 순종 할 수있는게 있대도요. 그걸 하는거예요. 그 작은 순종이 점점 큰 순종을 낳는겁니다. 나중에는 음성이 들려오고, 감동이 잦아지고, 말씀이 점점 정확해지고, 뭐예요? 이게 그냥 일상적이 되는거예요.
그래서 성령의 음성에 순종하며는 딴 사람들은 성령의 음성 자체를 이해를 못해요. 그런게 있나? 왜? 맨날 죄만 짓는데 음성이 들려오냐? 의미가 없지. 성경에 순종해야지. 여기에. 성경에 순종 안 하는데 무슨 음성이 들려와? 말도 안돼지.들으면 잘 못된것이죠. 그쵸? 아니 이것도 순종 못하는데 음성 들으면 잘 못된 것이죠. 마귀가 들려주죠. 쉽게 말하며는요, 신앙은 단계가 있어요. 단계가. 그래서 성령의 음성에 순종해야 천국갑니다. 그러면 "어우 성령의 음성도 들려오지도 않는데, 야 그 구원이 그런거야?" 몰라서 그래요. 성령의 음성이 가득 차있죠? 성경에는. 근데 다 순종했대도요. 전부다. 요나한테 욥바로 도망 갈려는데, "너, 니느웨로 가라!" "어우 그거 안 들으면 되잖아요?" 들려온대도요. 안 들으면 되는데, 들려와요. 안 들으면 되는데, 마음으로 들려옵니다.
이제 우리가 책이 나오는데요. 블라인드 프로피시blind prophecy 성령의 통변한 것이 책에 나오죠. 우리가 놀라죠. 왜? 성령님이 각자에게 말씀한 내용들이니까. 근데 그거를 들으면서,"에이 뭐 틀릴 수도있지, 뭐 아닐거야" 하면 길이 없는거래도요. 쉽게 말하면 우리가 하나님이란 분을 만나고 깨닫고, 일어나는 모든 과정 가운데 깊이란게 있습니다. 있는데, 지금 이 베드로와 안드레나 요한과 야고보란 사람은 갑자기 어느날 갑자기 은혜 받는게 아니란 얘기입니다. 우리는 생각할 때 "아, 나도 말이야, 그때 삼각산에 가가지구, 은혜 받으면 되는데" 이거 미친 놈이예요. 한번의 은혜로 되는게 아니예요. 많은 과정들을 통과해야만 음성도 있고, 통과해야만 또 뭡니까? 순종도 가능한 것이구요. 더 나아가서 통과해야만 깊이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구요.
근데 우리는 너무 신앙을 쉽게 봐서, "언제 한번 은혜를 많이 받아야지" 해서 한번 했다가 아니면 그냥 치워 버립니다. 신앙은 연속 선상이지, 주가 와도 같아요. 같은데, 그냥 어느 한순간 뿅! 해서--. 대박 심리가 인간에게 있습니다. 신앙에 대박은 없습니다. 우리가 제자의 길을 가야되는데, 그 제자의 길을 가는 과정 가운데 있는 우리가 작은 것들, 아내의 권고, 순종합니다. 남편의 권고, 순종합니다. 그게 시작 되는거예요. 담임 선생님의 조그마한 권고, 그거 순종하는 거래도요. 하나님이 짝 나타나가지고 부르지 않는대도요. 우리는 조그만 것에 순종을 통해서 점점 순종이 커지면서 점점 그분이 나에게 크게 나타나지는 겁니다.
나중에 여호와 이레를 불렀다 나오죠. 아브라함이.그러면 여호와 이레를 처음부터--. 그게 아니죠. 하나님이 임재하니까, 당연히 여호와를 부른 내용이 드러나는거죠. 임재를 통해서. 드디어 아브라함에게 예배가운데 나타나시는거예요. 직접적으로, 그러면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시지. 그게 아니래도요. 진짜 하나님이 나타나신대도요. 진짜 하나님이 나타나세요. 방문하신대도요. 비지트 , visit 영어로 '방문' 방문이 있대도요. 직접. 실제로. 그 방문은 이해할 수 없어요. 근데 그런게 존재한데도요.
우리는 성경에 있는 내용들을 가지고, "그건 구약이니까?" 아닙니다. 그것이. 신약 구약 똑 같아요. 하나님 역사는 똑 같습니다. 단지 우리에게 없는 이유는 내가 영적으로 성장이 안돼서 그런 것입니다. 우리는 구약에 있는 내용들을 보고는 도전을 받습니다. '저렇게 되야 되는데.' 우리는 앞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되느냐? 우리는 나의 순종에 따라 결정됩니다. 그래서 신앙이 다시 꺽어지면 나중엔 음성도 안 들려와요. 감동도 없어요. 나중에 무뎌집니다. 신앙이. 그게 신앙이 약화되는거예요.
신앙은, 올라가고 내려가는게 있는데, 성령의 음성이 강하면 신앙이 좋아지는 거예요. 나중에는 약해져요. 내가 다시 또 말 안들으며는 하나님께서 또 잘 안 나타나십니다. 그래서 엘리 때, "이상이 희미하더니" 엘리때. 왜? 말 안들으니까.엘리가 말 안들으니까 하나님의 이상이 희미해진 거예요. 근데 사무엘을 통해서 이상이 밝아진 거예요. 애기때부터 음성 듣습니다. 사무엘은. 나중엔 하나님과 교통하죠. 하나님과 교통한다는 것이 그것이 엘리에겐 없었던 내용이예요. 그죠? 엘리는 40년 동안 쓰임 받았어요. 그런데 없었어요. 교신이. 왜? 신앙이 약하니까 그런거예요. 신앙이 좋으면 하나님과 교신이 돼요. 그리고 그 내용이 애매하질 않아요. 매우 선명합니다.
그러니까 음성이 있고 순종이 되는데, "성령의 음성?" 뭐? 요즘 뭐라 그럽니까? 이단이라 그러던가? 뭐라 그러죠 그거를? 성령의 음성을. 직통계시라 해가지고 ---, 자기가 안되니까 왜 그걸 이단화 시킵니까? 자기가 안되는걸 가지고..... 성경 자체를 부정하지. 사도행전도 부정하고, 사도행전도. 다 성령의 음성 듣고, 하나님의 음성 듣고 환상 보고 다 했는데 그걸 부정하지. 뭐예요? 자기가가 안되니까 이단화시키는거예요. 이제 점점 더할겁니다. 왜냐고요? 이상이 희미해지는 것입니다. 왜 희미해지느냐?
엘리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집트 갔을 때도 마찬가지예요. 이상이 없었어요. 애굽에서. 또 크리소스톰도 이상이 없었어요. 왜 없느냐? 신앙이 약해지면 이게 없어요. 하나님 음성이 없대도요. 그리고 하나님과의 만남이 없대도요. 그냥 있는 교과서 성경책 가지고 예배 드린다는거지, 이상이 없대도요. 우리는 아고보와 요한 , 이 단순한 한마디의 순종. 아버지를 버리고 배를 버리고 이런 좋은 기업을 버리고 순종했는데, 이 과정 가운데 많은 순종이 거기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고요. 이것들이 모여 만든 것이지 어느날 갑자기 나타난게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 신앙은, 이 신앙의 과정들이 단계적으로 차고 올라와야 됩니다.이것을 성장이라 부르죠. 차고 올라와서 그 다음에 점점 올라가는데, 심지어 아브라함은 어디까지 왔느냐? 끝난게 아니예요. 아브라함은 끝난게 아니예요. 하나님을 봤으면 끝난겁니까? 아니예요. 세상에! 자기 아들을 제물로 바칩니다. "야! 그게 뭐 기독교가 그러냐? 아들을 바치고-" 하나님이 절대자예요. 하나님이. 잘 보는 사람 앞에서, '너 빨리 신학하려면 그만두라" 고. "아! 내가 왜 그만두고 어려운 길 택하느냐"고, 옛날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절대자예요. 절대자. 순종을 왜 하느냐? 절대자래도요.
기준이 뭐냐? 왜 하느냐? 하나님 말씀이 법이예요. 우리는 헌법이 있죠? 헌법.그게 법이죠. 거기서 판단 내려요. 마찬가지예요. 하나님이 법이래도요. 하나님이. 그래서 우리는 순종하는거예요. 하나님이 법이예요. 옛날에 누가 그랬잖아요. 자기가 국법이라고. 왕인데. 심지어 어떤 사람은 자기가 국가래. 국가. 내가 국가래. 하나님이 국가고 왕이세요. 우리는 절대 순종하는거예요. 그게 신앙입니다. 절대순종. 그게 믿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절대 순종합니다. 이해가 되건 안되건. 타당하건 타당치 않건. 관계 없어요.
최근에 우리 베다니에 제3의 물결이 흐르고 있는데, 원래 11시부터 1시 까지 기도를 하셨거든요. 최근에는 2시까지 하시고 요번 주같은 경우는 뭐 철야를 하시는 것같애요. 철야. 이게 맞는거예요. 원래 70년대는요, 각 교회마다 거의 철야했는데, 새벽기도 말고 보통 사모님이나 교회 권사님들이 소수가 모여서 철야를 많이했죠. 밤새. 그런데 그런 조짐이 있고요. 또 지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가 있다구 믿고있는 겁니다. 이게 뭐예요? 요것이 교회라는 본질의 메인 파트에 있는거예요. 메인파트main part. 메인파트는 쉽게 말하면 순교적인 결단에 의해서 자기의 온 삶을 드리는 그런 소수에서 일어납니다.그래서 밤새 철야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공동체 교회의 원동력이 되는거예요. 원동력이.
설교를 할 때, 설교자의 역량이다? 천만의 말씀이요. 설교라는게 제가 뭐 IQ가 높다? 그게 아니예요. 이게 그러한 설교가 남한테 회개와 은혜를 끼칠만큼 영적인 것이 쌓여야 됩니다. 개인이 하는게 아니예요. 교회 전체가 하는 것입니다. 복음전파는 개인의 사역이 아니예요. 교회 전체의 사역이예요. 중보기도자, 철야기도자, 또 전도자, 많은 것이 집성돼 나오는 것이 복음전파의 능력인 것입니다. 초대교회가 말이죠, 매일 모였죠? 그리고 매일 하나님께 기도했죠? 초대교회는. 부흥했죠. 그 초대교회가 사도들 때문에 이뤄졌냐? 그런게 아닙니다. 교회 전체에 의해서 사도들이 빛을 발한겁니다.
이런거예요. 영화 찍는데, 남자 주인공 여자 주인공 나오죠? 그들이 잘하면 영화 성공합니까? 아니예요. 그남자 주인공, 여자 주인공이 액터actor로서 연기할 때, 많은 스탶staff들의 많은 눈물이 있는 것입니다. 감독과 연출가와 그외 기술이 필요한 것이고요. 뒤에 자본가가 있어서 넉넉한 자금이 있는 것이구요. 그리고 많은 엑스트라의 열정적인 연기가 뒷받침 되가지구 연기가 살아나는 것이지, 아무리 연기 잘해도 그렇죠? 안돼요. 성공 못합니다. 그 성공한 그 영화가 드디어 뭐예요? 전세계를 지배하는거예요. 세상에 영화 하나가 지금은, 뭐, 10억 달라 이상의 수익을 창출합니다.
뭐냐하면 중요한 것은 우리의 영적인 힘이고 파워power입니다. 뭐냐하면, 우리가 전도할 때, 하나님의 일을 할 때, 어떻게 해야 되느냐? 신경 쓸거 없어요. 그것도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서 움직인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조차도. 하나님 명령에 의해서 우리는 교회를 다닙니다.신앙생활 합니다. 순종합니다. 어떻게 사역하느냐? 마찬가집니다. "배 오른 편에 그물을 던져라!" 하나님 명령에 의해서 우리는 움직일 때 영혼도 얻을 수있는 거예요. 그것이 찬양이든 하나님 말씀이든 뭐예요? 절대 명령에 의해서 움직이는거 그게 제자인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해서 사람 오게해야지." 그게 아니래도요. 그것도 명령에 의해서 움직이는 거예요. 명령에 의해서요. 절대 명령에 의해서 움직이는 거예요. 사나 죽으나. 그게 바로 제자란 거예요.
제자는요, 사람 많이 모은다? 그게 아니예요. 사람 없을 수도 있어요. 안 모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뭐예요? 중심은 명령에 의해서 움직이는 거예요. 교회 목적이 뭐냐? 부흥? 천만의 말씀입니다. 교회의 목적은 존재도 아니예요.생존이 아닙니다. 교회 없어도 돼요. 상관하지 않습니다.명령 순종이 교회 목적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왜 사느냐예요? 명령 순종이예요. 교회가 왜 존재하느냐? 명령 순종입니다. 이게 우리의 사는 목적이 되는 것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말이죠, 그렇게 생각 안해요. 내가 삶을 잘 영위하는데 교회가 필요하고, 교회의 어떤 유익한 것을 찾는 거예요. 인본주의 됩니다. 신본은 뭐예요? 신본은? 신본은 나 자신의 생사, 나 자신의 희노애락, 여기에 관여하지 않고 명령에 의해서 살아가는거예요. 망하고 흥하고 관심 없어요. 잘 되는거 관심 없어요. 오직 명령 순종입니다. 이것이 교회의 목표이고 우리 인생의 목표가 되는 것입니다.그래서 이들은 뭐예요? 나중에. 다 순교 당했대도요.그게 결론이래도요. "내가 목회를 해가지고 많은 사람들을 끌어 모아가지구, 위대하게 해야지" 안됐대도요. 다 죽었대도요. 핍박 가운데.
제자가 뭐냐? 제자란 우리가 이름 날리는게 아닙니다. 내가 영광 받는게 아니예요. 날 구원하신 하나님을 위해서 명령을 온전히 순종하고, 드디어 우리가 소망하는 천국에 들어가는게 목적인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목사들이 왜 그렇게 저게 많은지, 뭐죠? 그 수입이. 부자는 지옥 간다고 돼있는데 왜 그렇게 많아? 목표가 되게 세속적 이예요. 목표가 세속적 이예요. 성공을 목표로 합니다. 목사들도. 그거 잘못된 거예요. 목사나 교회 목적은, 성공이 아니예요. 실패해두 된대도요. 안돼도 된대도요. 망해두 된대도요. 관계하지 않아요. 오직 명령 순종입니다. 거기에 목을 걸어버리는 거예요.
자기의 삶의 유복함이나 남에게 받는 인정이라든가, 명예라든가 그런거 중요하지 않아요. 왜? 우리가 섬기는 분은 세상 사람이 아니예요. 우리는 내가 믿는 예수님을 섬기는 거예요. 따르는 겁니다. 예수님에게 인정 받으면 되는거예요. 왜 이렇게 혼탁합니까? 목사들의 세계가? 그것은 세속적인 성공학이 들어왔기 때문이예요. 마케팅marketing. 기독교 내에.그래서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방법들을 연구합니다. 그게 잘못된 겁니다. 모으면 뭐할라고요? 우리는 절대명령에 순종하고 목표로 살 때, 우리는 당당한 것이고요. 담대한 것이고요. 그리고 우리는 주님의 뜻을 행함으로 말미암아 우리도 주님처럼 영광가운데 우리가 왕권을 가지고 천국에 입성합니다. 우리의 목표는 이 땅이 아닙니다. 우리는 천국에서 예수님과 같이 그런 왕권을 가지고 다스림의 소망을 가지고 살아 가는 것입니다.
마치겠습니다.
사복음교회 박경호목사의 헬라어번역성경 마가복음 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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