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복음교회 박경호목사의 헬라어번역성경 마가복음 강해 4절

 사복음교회 박경호목사의 헬라어번역성경 마가복음 강해


4절 

모든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인들이 그에게 나와, 자기들의 죄들을 자백하며, 모두가 요단강에서 그에게서 세례 받았습니다. 

4절입니다." 모든 유대지방과 예루살렘인들이 그에게 나와 " 요한의 사역지가 사해가 있으면 왼쪽에 유대 광야가 있고, 유대광야 바로 밑으로 예루살렘과 유대가 있는겁니다. 같이 인접지역이죠. 그래서 당연히 인접한 유대지방 사람들이 오게될 수 밖에 없었죠. 

"자기들의 죄들을 자백하며." 왜 요한에게 죄를 자백하게 될까요? 왜 요한에게는 죄를 자백하는 일이 일어날까요? 그 이유가 뭘까예요? 우리는 죄의 자백이 어떻게 일어나냐? 그겁니다. 죄의 자백이.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사고의 전환 때문입니다. 

우리는 죄가 자백될 때," 너 잘못했지?" " 다음부터는 안 그럴께요!" 하지만 인간은여전히 죄를 짓습니다, 그런데 진짜 죄로부터 자백하고 변화되는근본적인 이유가 사실은 요한이 깨달은 하나님 때문입니다. 

거짓 선지자는 하나님을 모릅니다. 하나님을 모른다? 그게 뭘까요? 하나님의 마음을 모르는거예요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사람은 회개하게됩니다. 모르는 사람은 회개를 가짜로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요? 그것은 딴게 아니라 분노의 마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이해할때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라고 시작됩니다. 천국 못갑니다. 가짜이기 때문이에요. "하나님은 당신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천국 못갑니다. 가짜이기 때문이에요. 

하나님은 인간이 행하는 조그만 동기 하나에도 열 받아하시고요 분노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내뱉는 그 악독한 말 한마디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운명을 바꿔 놓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품은 그 죄 하나 가지고, 그 분노를 감당 못해서 심지어 우리를 버립니다. 

그게 심판이예요. 뭐예요? 심판이 뭡니까? 끝나는거예요? 아니예요. 맘에서 이름을 지워버리시구요. 영원히 불에 타게하는거예요. 그게 지옥이예요. 하나님의 분노가요 지옥에서 드러나는데, 영원히 불타게 하는거예요. 죽지도않게 만들어서요. 하나님께서. 그러면 이러죠," 아이, 하나님이 나쁩니까?" 반문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분이예요. 

하나님이 우리를 대할 때, 우리는 생각할 때, "! 하나님은 참 자비가 많으셔. 하나님은 참 좋으셔." 라고 이해한다면 천국 못가요. 하나님은요 인간이 큰 계명을 어기면 바로 그냥 심판에 던져버립니다. 그게 구원상실이예요. 

심지어 하나님의 사람을 대적한다? 하나님이 이건 봐줄 수없는 내용들이예요. 바로 지옥이예요. 성경에서요, 한건도 당신의 사람을 대적할 때 천국 간 사례가 한명도 없어요.요즘은 이 선지자를 미행해요. 무슨 죄 없나? 그리고 막 만들어요 스토리를. "건물을 사고, 돈 받아가지고", 많이 만듭니다. 그리고 그걸 또 상부기관에 보고해서 마치 맞는것처럼 서류를 꾸밉니다. 하나님께서 그거를 봐주겠습니까? 웬만하면 봐주겠어요? 그런 내용들을...... 

그러면 그런 짓을 왜 하냐? 인간이 왜 악하냐? 인간이 못 들어서 그러느냐그것은 하나님의 분노를 이해하지 못해서 그래요. 하나님은 우리의 죄악을, 그것을 봐주질 않습니다. 학교에서 수업시간에 떠들면, 반드시 떠들지 못하게합니다. ? 수업에 법이 있어요. 그죠? 만약에 학생이 "나 떠들어도 선생님은 참 좋은 분이야." 하면 항상 떠들겁니다. 

인간이 왜 죄를 짓느냐예요. 인간이 왜 죄를 자백하지 못하느냐에요. 그것은그 분노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기식으로 이해하는거예요. 자기식으로......그러니까 거짓 선지자의 말에 오히려 귀를 기울이는데, 거짓 선지자는 말하기를 그렇게 말합니다."당신은 구원 받았습니다. 당신은 천국에 들어갑니다. 당신을 축복합니다." "그것 보십시요. 우리 교인들은 하나님께 축복 받아 잘 살거든요." 하고 뭐예요? 엉뚱한걸 말하는겁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분노하시는지 분노를 표출하지 않아요..선지자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선지자는 하나님의 분노를 표출하는데 심판을 말합니다. 그러면 일반 대중들은 군중들은, 거짓 선지자들은 그런말 안하거든요, 축복을 말하거든요. 그러니까 뭐예요? 참 선지자를 핍박하는거예요. 심판을 말한다고. 그런데 그분이 하나님이예요. 

하나님은 심판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죄를 용납하지 않아요. 우리가 설사 회개했다할지라도 지은 죄에 대해서는 우리를 징벌을 하는 하나님이십니다. 얼마나 무서운지 몰라요, 하나님께서는요. 하나님은 얼마나 무서운지 모릅니다. 

미국의 부흥운동의 스타트start가 죠나단 애드워드Jonathan Edward. 애드워드가 미국의 부흥운동을 시작한 첫 주자입니다. 그가 처음에 설교한 설교의 제목이 "죄인들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진노."그게 제목입니다. 아마 깜짝 놀랐을거예요. 

그 당시나 지금이나 하나님을 이해할 때, 뭡니까? 그냥 우리가 십자가를 믿으면 용서받고 그 공로로 말미암아 우리가 구원 받는게 당연히 일반적인 종교현상입니다. 그런데 애드워드가 하나님의 분노를 설교할 때 그때 회개의 역사가 나타나고, 드디어 부흥이 일어나는겁니다. 미국에서. 왜요? 그게 진실되기 때문입니다. 그게 맞기 때문이예요, 

하나님은 죄를 용납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죄인을 용서하지 않습니다. 지옥에 보냅니다. 용서 하신다면서요? 용서 받을려면 길이있어요. 근데 그길이 어렵다는걸 모릅니다. 하나님은 그냥 "용서해줄께" 그게 아니예요. 용서 받으려면 죄를 다 버려야돼요그래서 어려운거예요. 내가 마약 먹다가 안 먹는게 회개가 아니라, 내가 바람피다가 안피는게 회개가 아니라, 하나님의 표준과 샘플인 율법이라는 어마어마한 것을 통과해야만, 우릴 받아주는 분이예요. 우릴 받아주질 않아요. 이미 심판을 받은겁니다. 

그럼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회개하고 자백하면 우리를 정말 분노 안할까요? 그렇지도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 당시에 분노하셨죠? "저들을 쓸어버리리라!" 그럼 노아는 평안하게 노아 방주에서 쉬었을까요? 아니예요.온통 물바다가 되가지고 그냥 다 죽었을 때, 당연히 지옥에 들어가서 고통 가운데 있었겠죠. 그때 노아방주 속에서는 거기도 150일 동안 파도 때문에 배가 오르락 내리락하고 얼마나 멀미했겠습니까? 물 때문에. 그 속에서 8명이 멀미하고, 동물들 악취가 진동 하는것 때문에 고통을 당했을겁니다. 

그리고 110일 만에 217일날 비가 내리고 다음해 217370일 만에 드디어그들은 자유를 얻은거예요. 얼마나 고통을 당했을까요? 우리가 뜻대로 산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분노한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분노를 이해하지 못하면 진정한 애통은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 분노를 이해하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공의와 사랑으로 표현하는 것이고, 하나님께서는 이 공의와 사랑이 같이 융화 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중에 온 지구와 그리고 태양계와 현재 갤럭시galaxy 은하계와 우주를 다 없애버리십니다. 왜요? 분노 때문에. 

나중에 새 천국이 오죠. 새 예루살렘이 오죠. 왜요? 분노하시는거예요. 노아홍수, 분노의 한 표현입니다. 소돔과 고모라, 분노의 표현입니다. 이제 소돔 고모라처럼 온 우주가 불타버립니다. 분노하시는거예요. 

하나님의 분노의 가장 큰 표출 장소가 지옥입니다. 나중에 불의 연못으로 들어갑니다. 불의 연못은요, 우리가 통신도 안돼요. 지금 음부 지옥은요, 통신은 됩니다. 영계에서.

하나님께서는, 자기 말 안 듣는 사람, 뜻대로 못 사는 사람, 죄인들을 어떻게 합니까? 그들을 마음에서 지워버리시고, 그게 뭐예요? 벌써 이름이 지워지는거예요. 생명책에서 이름을 지워요. 하나님이 이름을 지웁니다. 가끔 그런 말 있잖습니까? 인터넷에서 떠도는데 누가 글자를 쓰는데 뭐 기역만 남았다고. 이름 다 떨어지고. 물론 그게 뭐 무슨 뭐 상징적인 얘기지만 틀린 말도 아니예요. 우리 이름을 지우시는데 기역만 남았데. 다 떨어지고. 왜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는 분노하기 때문입니다. 

그 분노 앞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와서 죄를 자백하는겁니다. 이 자백은 진실의 자백입니다. 하나님을 분노케 한 내용들. 우리 사람은 화를 내요. 왜 화를 냅니까? 잘못에 대해 화를 냅니다. 화는 누군가의 잘못에 대한 인간의 반응이예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화를 내는데 화가 우리랑 비교가 안돼요. 하나님 목소리가 얼마나 큽니까? 그냥 구름 부딪치면서 천둥 치듯이 우르르 하지요.그 소리가. 

하나님은 분노가 엄청 크십니다. 그 분노 앞에 우리는 죄를 자백하는겁니다. 자백이 끝도 안나요. 이 죄를 자백하면 저 죄가 또 있고, 저 죄가 또 있고 끝도 안납니다. 그러나 점점점 변화됩니다. 점점 변화되가지고 드디어 점점점 의로와지는 것입니다. 그거를 회개라 그럽니다. 

회개는 많은 시간이 걸리는데, 죄를 자백하면서, 죄를 사함 받으면서, 또 자백하면서 또 사함 받으면서 계속 나아갑니다. 아직 받아주질 않습니다. ? 우리를 받아주면, 뭡니까? 구원인데 구원의 길은 요원합니다. 아직도 마귀의 역사는 많습니다. 또 우리는 이걸 또 고치고 나아갑니다. 또 고칩니다. 그래서 이뻐집니다. 그래서 이뻐져요. ! 분명히 냄새 나고 아주 그냥 꼴도 보기싫은 그 얼굴이 변화 되면, 점점 이뻐집니다. 그래서 "내가 쟤를 신부로 맞이하겠다!" 이쁘니까. 

그래서 노아라는 사람을 신부로 맞고, 그리고 복을 줍니다. 왜요? 하나님 마음에 합당하니까. 하나님 마음에 분노가 일어나지 않는 단계. 쉬운게 아닙니다. 마음에 들어도 인간에게 분노하십니다. 하지만 분노하셔도" 내가 쟤랑 함께해야겠다. 내가 쟤와 살아야겠다." 결혼이 뭐예요? 내가 살겠다는 결단이예요. 같이. 연애는요? 살아볼까? 떠보는거예요. 살아야겠다. 그래서 그 모든 과정 거쳐서 드디어 드디어 드디어 결혼하는게 구원입니다. 

죄를 자백하면 어떻게합니까? 모두 요단강에서, 요단강? 왜 요단강일까요? 강이라는 것은, 영적인 큰 사건을 의미합니다. 영적인 큰 사건......영적인 데에서도 샘이 있구요. 이런 냇물이 있고요, 그런데 큰강 이것은 바로 죄사함의 강입니다. 죄 용서의 강이예요. 

드디어 조그만걸 다 고쳐가지고 완전한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영적인 강입니다. 마치 지옥과 천국이 분리되는데 그사이에 구름이 있는 것처럼. 요단강은 우리가 하나님에게 구원 받지못한 상태에서 구원으로 넘어가는 구원의 강이 되는 것입니다. 

요단강에서 그래서 세례를 받습니다. 뭡니까? 용서 받은 것입니다. 죄사함 받은 것입니다. 씻겨진 것입니다. 한두개 죄가 아니예요. 받아줄 만큼의 죄가 다 사함 받은거예요. 우리는 죄를 평생동안 지은 죄를 사함받아야됩니다. 우리는 매일 죄를 짓습니다. 매일 죄를 사함 받아야됩니다. 우리는 죄사함이 구원 전 뿐만 아니라 구원 이후에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를 계속 사함받습니다. 

안타까운 장면이 나옵니다. 드디어 노아와 세 아들과 세 며느리들, 아내가 방주를 나왔어요. 나오니까 일조량이 많아지고 왜? 궁창 위의 물이 사라지니까 그러니까 포도가 잘 됐죠. 드디어 포도로 즙을 만들려고 넣었는데 발효 돼 가지고 너무 맛있는거예요. 그러니까 노아가 먹습니다. 그래서 취한거예요. 그래서 옷을 벗어버렸죠. 너무 취하니까. 

그런데 그때 그 노아방주에서 다 애통하고 회개한 자녀들 가운데 함이라는 자녀는 회개했는데 회개가 덜 됐어요. 그러니까 아버지의 그 내용을 발설합니다. 이미 노아는 600세가 넘었죠. 발설합니다. 함은 저주받아요. 가나안은 저주받아 드디어 지옥에 떨어집니다. 노아는 큰 죄 지은게 아니예요. 소죄예요. 노아가 얼마나 신령했느냐? 술에 취했다가 깨면서도 예언이 나와요. 예언이. 얼마나 신령하면, 그렇게 신령해요. 노아는. 얼마나 신령하면 술에서 깨면서도 예언이 나와요. 예언이. 예언이뭐냐? 하나님 음성이 들려오는거예요. 이 신령한 노아를 향해서 그를 험담하고 발설한 함은 당연히 지옥이 확정 돼가지고 저주가 선포됩니다. 

인간의 변화. 그것이 구원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구원의 결정은 물론 하나님의 이성이 있죠. 우리의 성화가 있죠. 하지만 뭡니까? 우리 인간의 변화. 우리가 변화되면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자로 세우는겁니다. 

야벳과 셈은 축복을 받게되죠. 왜요? 아버지 죄를 가렸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눈동자로 봐야만 진정한 회개가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그 시선이 아니면 우리의 죄의 자백이나 회개는 부분적이고, 그리고 어느 이상 진도가 나가지 않습니다. 왜요? 우릴 받아주는 분은 사람이 아니예요. 하나님이거든요. 

하나님 마음에 합할 정도가 되야 되는데 하나님 마음을 대변할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마음을. 그게 선지자입니다. 하나님 마음을 대변하는거예요. 선지자가. 대변하는 사람을 어떻게 합니까? 뒤를 파요. 그리고 시나리오를 만들어. 시나리오를...... 

예전에 어느 교회에 있었는데, 우리 교회는 신령한 교회였죠. 예배시간에 목사님이 본문설교를 하지 않고 맨날 죄만 지적합니다. 그래서 그 교회를 나온 사람들이, 그중의 한명이 인제 절 찾아왔습니다. 그분은 피아노 연주자였고 남편이 목사가 되서 목회를 시작하신다고 하시더라고요. 

저한테 와서 "집사님! 우리교회, --! 우리는 그런거 안해요. 그 목사님 맨날, 그냥 책망질이나 하고 지적질이나 하고, 얼마나 살기 힘들었어요? ! 공포스러웠죠. 우리 목사님은 로마서 강해해요. 하나님의 우리에게 대한 용서를 설명하고요. 그리고 죄사함을 말합니다. 성경대로 합니다." 이게 오늘날이예요. 

이것이 성경대로 한다는거예요. 성경대로.이것이 성경대로 한다는거예요. 이것이. 미친 사람들이. 뭐가 성경이냐? 뭐가? 지옥 보내는 걸 성경대로 한대요. 

로마서 강의 뭐예요? "이신칭의" 의롭다. 더 죄를 지적 안해요. 천국갈 사람을 지적을 뭐하러 해. 이러고 있어요, 지금. 우리가 변화 되지않으면 천국 못간데도요. 목사님이, 어떤 목사가, 어떤 목사가 성도들이 지옥 가길 바라겠어요? 누가 있겠어요? 아무도 없어요. 그런 목사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기 때문에 그걸 말해가지고, 돌이켜 가지고 천국으로 인도하는게, 그걸로 가야 되는데, 거기 있을 때 힘들었다는거예요. 내가 만난 남편, 목사 되가지고 그런거 안하고 좋은거 한다는거예요. 그래서 말씀대로 하고 말씀을 깨달았다는거예요. 마치 옛날에는 말씀을 깨닫지 못한 시대고 지금은 깨달음이 있다는겁니다. 이게 오늘날이래도요. 하나님을 대변하는 사람이 없다는거예요. 지금은. 그렇게 말하면. 거꾸로 뭡니까? 공격 들어옵니다. 

지금은. 목사가 없습니다. 지금은 설교자가 없습니다. 지금은 선지자도 없습니다. 하나님 마음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마음을 모르고 뭘 전합니까? 뭘 외치겠어요? 하나님의 분노를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분노를 말하지 않는데도요, 지금은. 욕을 합니다. 아까처럼 말씀을 모른다고 말하는거예요. 이게 분이 안터지겠어요? 열 안받겠어요? 

저는 목회를 상상한 사람도 아니죠. 운좋게 저는 많은 좋은 목사님들을 만났어요. 저는 거짓 선지자들을 압니다. 그들은 자기 얘기합니다. 자기 깨달음으로 얘기해요. 자기 배운거 말합니다. 선지자는 하나님 마음을 말합니다. 하나님 생각을 말합니다.우리가 말하면, 다 핍박 합니다. 다 등을 돌립니다. 나중에 그가 깨어집니다. 목사님이 드디어 코너에 몰려가지고 드디어 거꾸로 매장돼 버립니다.인본이 이기게 됩니다. 이게 오늘날 기독교예요. 

저는 깜짝 놀랍니다. 그리고 그렇게 앞장선 사람들이 영웅 대우 받구요, 남들 한테도 인정 받는거예요. 참으로 지랄같은 세상이예요. 지랄같은 세상.하나님의 진짜 대변인들은 남들에게 인정받지 못해요. 어떻게 사기꾼들이 세상에서 다 목회가 성공하는지? 뭐가 사기냐구요? 하나님을 대변 안하는게 사기죠. 

목회자가. 목회자가 뭘 대변해야 되겠어요? 하나님을 대변하지않아요. 뭘 대변합니까? 사람들을 대변해요. 사람들이 좋은걸 하는거예요. 그러니까 이렇게 이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죠. 해봤자 어느정도 멈춰버리고. 

지금 요한의 출현이 말이죠, 안타깝게도 4백년 만입니다. 4백년만. 말라기 이후로 성경에서는 아무 선지자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말라기 이후로 4백년 만에 나타난게 요한이예요.무슨 얘기냐면? 하나님을 대변하는 사람이 그동안 없었다는거예요. 4백년동안. 무슨 말이냐 하면. 하나님을 대변하지않는 사람을,선지자를 따라갔다는거예요. 이게 비극이래도요. 

하나님의 사람을 못 알아봐요. 더 나아가서요, 요한도 드디어 얼마 못합니다. 사역을. 왜냐구요? 헤롯이 그를 죽여버려. 트레지디tragedy,비극이죠. 하나님의 사람을 못 알아보고, 설사 나와도 바로 핍박들어가서 없애 버립니다. 왜요? 하나님의 마음을 대변하며는, 천국 갈 수있기 때문이예요. 

이 영의 세계는요, 딱 둘중의 하나예요. 천국과 지옥이예요. 그런데 지옥을 대변하면 사람들에게 인정 받습니다. 천국을 대변하면 항상 핍박 받습니다. 왜요? 마귀는, 세상 임금으로서 하나님의 사람인줄 알았기 때문이예요. 얼마나 마귀는 영악한지 모릅니다. 얼마나 머리가 좋은지 모릅니다.

우리는 앞에 나와서 하나님의 분노 앞에 서는 것입니다.그게 뭐예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거예요.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라는 말씀을 들을 때, 두려워한다 그래요. 근데 하나님의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아. "! 이거 집사아냐? 너 일반인 아냐?" 안 두려워해요. 

하나님 안 보이죠. 하나님을 향한 설교를 두려워하지 않어. 설교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의 사람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뭘 두려워하죠? 거꾸로. 세상에서 큰 목회 하는 사람을 두려워합니다. 큰 목회하니까. 

완전히 망가졌어요. 정말 자기를 천국으로 인도하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엉뚱한 사람을 두려워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의 분노 앞에 죄를 회개하고, 죄를 사함받고 온전히 변화 되어, 죄사함 받아서 천국 가는 사람이 많진 않지만, 그러나 이런 일이 드디어 사람에게 나타난 것이 오늘의 내용이예요. 

지금 요한은 없습니다. 요단강, 없어요. 옛날 일로 끝났습니다. 지금도 이런일이 일어나지 않는가요? 지금도 그 이스라엘이라는 그 넓은 면적 가운데 그 조그만 지역인 요단강에서 일어나요.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어디선가에서는 이런일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어디선가에서는 이를 나타내시고 재현하시는 것입니다. 

참된 선지자를 통해서 죄를 회개하게하고, 죄에서 돌아서게하고 살게합니다. 변화 받게합니다,그리고 새로워지게 합니다. 지금도 이런 일은 나타납니다. 물론 큰 규모는 아니겠죠? 우리는 하나님의 분노 앞에 서야되고,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되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 통회하고 애통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의 길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실체가 우리에게 오게되는 바로 앞의 준비되는 길이며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 쉬운건 아닙니다.그러나 이미 성경에서 만난 사람들의 스토리story를 통해서 우리는 만나게 되는데, 우리가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의 스토리를 통해서 우리는 또다른 내가 세례요한이 되야되고 우리는 또다른 구원자가 되야 됩니다. 

지금도 구원의 역사는는 나타나고 있습니다. 지금도 구원은 존재합니다. 우리가 이 구원 속에 들어가서 나중에 하나님의 영화로움과 그분의 영원한 은총을 경험해야 되는데 하나님은 자기에게 들어온 사람에 대해서 속죄를 적용한다는 사실입니다. 그게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공의로 대하십니다. 들어온 사람에게 사랑으로 대하십니다. 물론 사랑 안에 공의가 있죠. 다윗은 나중에 왕 된 다음에도 죄를 지으니까 7천명을 죽여버립니다. 백성 가운데 다윗의 죄 때문에 많이 죽습니다. 하지만 사랑으로 품어 주십니다. 그게 바로 속죄며 구원입니다. 

우리 사람들은 사랑을 말하며 전도합니다. 잘 못된겁니다.하나님의 진노와 분노를 통해서 전도해야 됩니다. 왜요? 그것이 맞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불신자한테 사랑을 말해? 말도 안됩니다. 불신자한테는 사랑을 말할 수없어요. 하나님 안에 있는 친자식에게 사랑을 말해야죠. 그게 사실이기 때문이예요.

오늘날 교리들, 많은 설교들.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 아닙니다. 마귀적이며 사탄적입니다. 하나님에게서 오는 사람들은, 그래서 항상 심판을 말하고, 죄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의를 말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천국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마치겠습니다.

사복음교회 박경호목사의 헬라어번역성경 마가복음 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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