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복음교회 박경호목사의 헬라어번역성경 마가복음 강해 5절

 사복음교회 박경호목사의 헬라어번역성경 마가복음 강해


 5절 

요한은 낙타의 털을 입고 있었으며, 그의 허리에 가죽 띠를 찼으며, 메뚜기들과 야생 꿀을 먹었습니다. 

마가복음 5절 말씀입니다. " 요한은." 물론 세례요한이죠. 사람들에게 은혜를 끼친 요한. 그리고 회개에 이르게한 요한. 선지자로서의 요한. 말라기 후 4백년 뒤에 나타난 정말로 귀한 요한이죠."요한은 낙타의 털을 입고있었으며" 참 부럽네요. 낙타의 털을 입으니 얼마나 부럽습니까?

춥단 얘기예요. 춥단 얘기. 추웠단 얘기예요. 요즘 사람들이 인제 옛날에 그 산에 있는 것 먹는다고 하면 사람들이 부러워하는데, 사실은 쌀이 없어서 먹는거예요. 쌀이 없어서. 마찬가지로 낙타 털을 입는 것은 유대광야는 너무 춥죠, 밤에 너무 추우니까 추위에 시달리면서 낙타 털옷을 어떻게 얻어 입었겠죠. 이 낙타털이 아니면 감당할 수없습니다. 유대지방의 사막의 추위를.

그리고 낮에는 엄청 뜨겁습니다. 낮에는. 그러니까 이제 낮에는 너무 뜨겁고, 밤에는 너무 추운데, 인간의 최고 고통은 추윕니다. 그렇게 고통스러운게 없어요. 너무 추우면, 이거 이 스트레쓰stress 가운데 가장 큰 스트레쓰를 콜드cold 라고 합니다. cold stress는 세포가 병이 납니다. 그래서 의학용어로 cold stress는 만병의 원인이란게 있어요. 그래서 추위는 세포로 하여금 작동이 안되게 만듭니다. 몸은 추위에 한번 노출되면 인플루엔자influenza에 감염 되기도 하고, 또 코로나 바이러스corona virus에 감염 되기도하고, 다른 모든 면역적인 어려움이 오는데, 털옷으로 추위로부터 오는 고통을 면했구요. 

"그의 허리에 가죽띠를 찼으며" 가죽띠를 찼으며, 뭐예요? 쉽게 말하면, 그는 모든게 다 야생이예요. 야생. 그러니까 그가 사는 삶은 문명과는 떨어진 삶입니다. 도시화는, 문명에의한 결과죠.지금도, 지금도 도시로 몰려듭니다. 전세계는. 도시 안에는, 거기는 문명이 있거든요. 문명 밖으로 사람은, 못 떠납니다. 

서울 집값이 요지역이 7년전, 5년전에 그때 5억이 안됐습니다. 아파트가. 그때 전세가 25, 2억이었습니다. 싼게. 요지역이, 아파트가. 이걸 잘 압니다. 7년전 5년전으로 기억됩니다. 근데 요지역이 고 45, 5억에 분양한 그 아파트가 지금 10억이 됐습니다. 그때 전세가 여기서 2, 25천이었는데, 그 전세가 현재 여기가 8억이 되었습니다.왜일까요? 그것은 사람은 이 문명에 대한, 문명에 대한 그런 그 욕망을 못 이깁니다.

왜 사람들은 도시로 모일까요? 문명 때문이예요. 이 문명에 대해서 그것을 사람은 못 잊습니다. 그래서 모이기 때문에 값이 올라가는 것이구요. 있는자가 돈을 더 내니까 값이 올라가는 거예요. 경매를 할때, 누가 "2! ""25!" "! 나는 1!" 그래서 올라가는거예요. 이 인간의 욕망 가운데요 이 문명에 대한 욕망은 대단한데, 지금 요한은 문명과 단절 된것 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메뚜기들과 야생꿀을 먹었습니다." , 빵을 먹고 고기를 먹어야 되는데, 생선을 먹어야 되는데, 메뚜기를 먹는다? 메뚜기. 꿀을 먹는다? 메뚜기를 누가 잡아서 요리 해줍니까? 누가 와서, 아니죠. 쉽게 말하면 요한은, 요한이 그렇게 된 이유는, 요한이 영성의 소유자가 된 이유는 다른게 아니라 이런 척박한 삶에서 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부러워하죠. 꿀을 먹으니까.3일 먹어보십시오. 밥 대신에. 우리는 부러워하죠, 메뚜기가 보양식이니까. 3일 먹어보십시요. 죽을 맛입니다. 

요한이 이렇게 선하게 나타난 이유, 그것은 그의 삶이 고통과 고난이었던 것입니다.우리는, 우린의 죄성이 잘 깨지질 않습니다. 우리 사람의 죄성은, 굉장히 단단합니다. 

죄성이 뭘까요? 미움, 음란, 교만, 탐욕, 탐심, 시기, 질투, 원망, 불평, 우리 내면에는, 우리가 볼 수없는 죄가 꽉 차있습니다. 단지 우리는 내면이 아닌 외면을 교정시킬려고 애를 씁니다. 그런데 밑엔 안 깨져요. 그게 바리세파 목사들이예요. 깨어지질 않아요. 

세례요한은 어릴 때 에센파에 들어왔죠. 사해 왼쪽에 있는 쿰란지역에서 거기서 교육 받았습니다. 거기서 회개를 배웠을 것입니다. 말씀을 배웠습니다. 나중에는 다시 그 에센파에서 그가 수장이 되죠. 수장 됐는데 보통 수장되면 뭡니까? 누려야죠. 축복들을. 그죠? 세례요한이 요단강가에서 세례 베풀 때 사람들이 나오는 것은요, 그가 이미 거기서 수장됐다는 얘깁니다. 에센파 가운데 밑에 사람이 일할 때, 누가 밑에 사람이 나와서 집회를 인도하겠습니까? 집회인데. 당연히 쿰란 거기서는요, 최고 수장이란 얘기예요.

수장이 아니면 절대 인도 못합니다. 집회인도를...... 이 세례요한은요, 수장이 되었는데 불구하고도, 그는 여전히 하나님 앞에 고통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례요한이 만들어진 과정이고 또 만든 다음에도 쓰임받은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고통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밑바닥에 있는 죄를 하나님께 토해내게합니다.

물이 있으면 밑에는 시커매도 위에는 맑을 수가 있어요. 때로는 우리는 은혜생활 좀 하면, 된것처럼 보여요. 하지만 다시 또 확 저으면, 죄성이 확 올라옵니다. 그쵸?

근데 위에 뜨는 죄성들이 없는 단계. 뭡니까? 마음이 청결한 단계. 우리는 입술을 조심할 수있고, 생각을 조심할 수있지만 마음이란 것은 혼탁합니다. 이 마음이 깨끗한 단계, 어디서 왔을까요? 그것은 수많은 고난과 연단과 고통에서 온 것입니다. 

우리는 인생 살면서 가난할 경우가 있고. 또 자식이 속 썩일 경우도 있고, 남편이 속썩일 경우가 고구요, 아내가 속썩일 경우도 있고, 때로는 회사생활할 때 윗사람, 상사로부터 꾸지람 당하고 혼나고 막 당할 경우도 있어요. 내가 바른 경우에도 불구하고도 엉뚱한 죄목으로 누명을 쓰기도하고. 많은 고통이 인생에게 옵니다. 그러나 그 고통들을 맞이할 때 우리는 그것을 우리는 비난하거나 고통 앞에 두려워하거나 원망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고통들은 나로하여금 그 죄를 깨게하는 바로 망치와 같은 것입니다. 망치가 말이죠, 이 금을, 은을, 철을 치며는요, 이게 깨집니다. 손으론 절대 안깨져요. 망치가 우리를 깨는겁니다. 누가 우리의 죄성을 부숩니까? 누가 우리의 죄성을 깨뜨립니까? 망치예요. 고난의 망치, 고생이라는 망치가 우리를 깰때 그때 우리는 드디어 눈물이 납니다. 마음이 고통이 옵니다. 그리고 통회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축복은 축복이 아닌것입니다. 

모든 축복들은 다 지옥으로 인도하는 통로가 됩니다. 과거 70년대 왜 교회들이 웁니까? 그것은 고통스럽기 때문입니다. 고통이 오면, 그것이 천국으로 인도하는 길이 되는데 그게 우리로하여금 깨어지게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고통을 무서워할 것 없습니다. 고통을 싫어할 것도 없어요. 고통을 맞이합니다. 그리고 그가운데 우리는 깨어지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더 큰 행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지금 세례요한은 지금 고통 속에 산다해도 나중에도 그것을 마다하지 않아요. 지금 그가 메뚜기들과 야생꿀을 먹었다, 이것은 그가 사역할 때 일입니다. 이것은, 분명히 그 다음절에 "그가 말하기를" 이예요. 뭐예요? 설교한 것입니다. 

세례요한이, 세례요한이 그렇게 살다가 수장 된 다음에는 잘 먹다가 사역한게 아니라, 세례요한은 고통스럽게 살다가 에센파 수장된 다음에도 사역 가운데도 이렇게 살았단 얘기예요. 이게 세례요한을 만든 것입니다. 

"그가 말하기를" 내일 나옵니다. 드디어. 지금 세례요한은 사람들이 와서 안수 받으러 와가지고 그에게 세례받고 그리고 설교 듣고, 변화 받는데 세례요한은 그중에도 자기는 거기서 호화스러운 걸 누리고 산게 아니라 그런 가운에도 야생꿀을 먹고 메뚜기를 먹는 비참한 삶을 산겁니다.이것이 우리 영성을 유지하는 비결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회개의 인생을 살 수있을까요? 화려함 속에서? 화려함에서는 우리가 깨어지질 않습니다. 우리가 화려함과 명성과 그리고 축복 속에서는, 깨어지질 않습니다. 천국에 가기가 어려운겁니다. 

천국은, 항상 고통이 수반되는 것입니다. 야곱이 가나안 땅에 들어왔을 때부터 문제가 시작 됩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올 스타트start부터 삼촌이 추격하고, 형이 죽이려고하고, 딸이 강간 당하고, 그리고 아내가 죽고, 막내를, 사랑하는 아들을 잃어버리고, 이런 위기들이, 고난들이 야곱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아니면 야곱도 지옥 갔죠. 

천국은 이세상에서 고통을 많이 당할수록, 고난을 많이 겪을수록 가는 곳이 천국입니다. 그래서 "우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저희가 웃을 것이요, 지금 웃는 너희들은 화 있으니" 뭐예요? 지옥에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웃는 자들, 지금 편안하게 사는 사람들, 행복을 누리는 사람들 화 있는 것입니다. 왜일까요? 그 자체가 저주기 때문이 아니라 그 웃음과 그복과 그런 좋은 문명들이 우리로 하여금 깨어지지않게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다 죄성을 갖고 태어납니다. 인간은 누구나 다 죄인입니다. 근데 누가 깨어지느냐? 누가 의인 되느냐? 인데, 그 의인 되는 과정에서 100% 수반되어야할 것은 바로 고통과 고난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고통이 올 때 내성이 생기죠. 고난이 고난스럽지 않습니다. 불평스러운 상황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세례요한이 그런걸 먹으면서 불평했을까요? 아닙니다. 감사했을 것입니다. 야생의 삶, 그리고 비문명의 삶, 그리고 하나 먹는 것 조차도 고통스러운 삶이라 할지라도 그는 그 가운데 눈물을 배웠고 회개를 배웠고, 겸손을 배웠을 것입니다. 사랑을 배웠을 것입니다. 그리고 낮아짐을 배웠을 것입니다. 이게 바로 세례요한이 된 이유인 것입니다. 

어떻게 우리는 살아가야 될까요? 점점 이세상은 문명화 됩니다. 점점 보기 좋은게 많고요. 점점 우리 눈에는 환락이 많고, 행복이 많습니다. 문명은 점점 발달될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행복에 취할 것입니다. 지금처럼 좋은 문명은 존재한 적이 없거든요. 

불과 100년 전만 하더라도 추운 날에 고통스러웠습니다. 제가 어릴 때 5살 땐가, 6살 땐가, 양수리에서 십리를 걸어가면 우리 고향이 나오거든요. 겨울에, 이 뭐죠? 보자긴가요? 엄마가 이렇게-- {보자기 같은거 씌워죠요} 피가 나와요. 너무 추워서. 불과 얼마 안된거죠. 50년 밖에 안된거예요. 그 고통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지금 있는 우리 70대는 일제를 거치고 6.25를 거쳤어요. 고통을 압니다. 근데 우리나라가 문명화된 80년대부터죠, 그때부터 우리나라가 잘 살게 됐죠. 80년대부터. 그때부터 기독교가 망한걸 아십니까? 기독교는요 80년대부터 망합니다. 왜요? 대한민국이 문명화 됐기 때문입니다. 만불을 돌파할 때부터, GNP, GDP입니까? 망해요. 2천년 이후부터 뭡니까? 80년대까지 잘 성장하다가 드디어 그때부터 이제 대한민국의 기독교는 몰락하는거예요. 

지금 기독교? 기독교 아닙니다. 착각하면 안됩니다. 무슨 교회 다니는데요. 기독교 아니예요. 우리 어릴 때 그건 이단들이었습니다. 분명히 이단들이었어요. 지금의 기독교가. 이단을 지금 믿고있는거예요. 사람들이 전부 다. 우리 어릴 때는, 다 일어나서 회개하고, 가면 다 죄 용서 받구요 설교는 전부 다 깨끗한 설교들이었습니다. 지금 설교들이 없었습니다. 그런 설교들이," 잘 된다. 복 받는다." 그런 설교들이 한개도 없었어요, 옛날에. 

미친 놈들이 나타나가지고 대한민국을 휩쓰니까, 잘 살아본 일이 있는 젊은 사람들이 다 쓸려갑니다. 옛날에는요 아무리 미혹돼도 그런 설교에 붙지 않았습니다. 엉뚱한 계절풍에 다 휩쓸려가는걸 모르는 사람들이, ? 고생을 안해봤거든요. 고생을 안했어요. 고생 안한 사람은요 밑바닥이 다 시궁창입니다. %예요. 고생 안한 사람은요 이 마음들이 다 시궁창들이예요. 얼마나 악한지 모릅니다. 왤가요? 깨어진 적이 없기 때문이예요. 

인간은, 깨어져야만 하나님을 만날 수있어요, 근데 고생을 해봐야 깨어지지. 요즘 사람은 싫은 소리하면 못 버텨요. 지금의 교역자들이 어떤지 아십니까? 싫은 소리 하나 안해요. 어떤 목사도요. 옛날에는요? 옛날에는요 목사님들이 칭찬을 한마디도 안했어요. 원래. 목사님들이, 맨날 혼내기만했어요. 목사님들이. 기독교 아니래도요. 이단이래도요. 현재 기독교가. 이단 속에서 태어나니까 그게 기독교인줄 알고 있어요. 

현대 기독교는 이단이예요. 내가 어릴 때 다닌 교회랑 전혀 다른거예요. 어릴때는요 담배, 술 말도 안돼요. 용납이 안돼요. 어릴 때는요, 기독교가요, 그땐 우린 원래 그랬어요.그렇게 깨끗했대두요. 모이면 회개하고, 기도가 일상이었고, 지금은요? 지금은 기독교 아닙니다. 이미 기독교가 뭐예요? 전체가 이단화 된거예요. 

지금 요한을 왜 세울까요? 당시 유대에 있는 바리세인들과 서기관들 다 지옥 갔지않습니까? 율법사들, 장로들, 대제사장들 다 지옥 갔지않습니까? 왜일까요? 기독교인데요? 정통인데요? 정통이 몽땅 이단화 된겁니다. 이단이 뭡니끼? 하나님을 떠나는게 이단이예요.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에 다 지옥 가는거예요. 

그리고 지금 에센파, 조그만 파입니다. 백성들에게는 인정 받지않아요. 수도원에 가가지고 가서 수양하는 장소입니다. 여기서 바로 세례요한이 탄생됐는데, 이유가 뭐냐? 그것은 수많은 환난과 고난과 역경 때문입니다.인간은 절대 고난 받지않으면 변화되지않구요, 새로워지질 않습니다. 왜냐하면 밑바닥에 악이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에게 밑바닥의 욕망이 사라질까요? 인간에게는 명예욕이 있습니다. 그깟 전도사 때문에 고소하고, 이게 인간입니까? 그깟 인정받는것 때문에, 혼낸것 때문에 열받아 하고 이게 인간입니까? 우리 기독교에 상상도할 수없는 일이 나타나고 있어요. 이건 기독교에 있을 수없는 일입니다. 왜일까요? 지금 기독교가 이단이란 얘기예요. 이단. 

얼마나 악이 강한지, 대화가 안돼요. 대화가, 사람은, 악해지면, 악이 굉장히 강해집니다. 그런데 몰라요. 이 악이요, 엄청 강해요. 우리가 깨어지고 부셔져가지고 선해지면, 설사 먹을게 없어도, 볼게 없어도,누릴게 없어도 행복을 얻는다는 사실입니다. 

인간은 문명 속에서 행복을 얻지 못합니다. 인간은 축복 속에서 행복을 얻지 못합니다. 왜 세례요한은 그런 생활을 계속했을까요? 세례요한은 문명 축복 없어도 행복을 누리기 때문입니다.인간의 행복은 선에 있습니다. 인간의 행복은 선에 있어요. 선하면 항상 행복합니다. 선하면 그 무엇이든지 해나갑니다. 

선하면 뭐 어느 사람을 만나도, 어느 환경에 있어도 불행스럽지가 않습니다. 선의 능력입니다. 세례요한이 왜 이런 것들에도 불구하고도 그냥 잘 살았을까요? 그가 선했기때문입니다 이제 우리가 깨어지고 부서지면, 이제 환경 때문에 고통스럽지 않습니다. 그리고 항상 좋게 돼있습니다, 불평이 사라지고. 행복이 넘쳐납니다. 왜요? 선 때문입니다. 

그래서 환난 가운데도 즐거워합니다. 축복이 있어서 행복한게 아니라 환난 가운데 즐거워합니다. 왜요? 선의 능력입니다.구원 받으면 분명히 구원 속에서도요, 곤고함이 있고, 환난이 있고, 적신이 있고, 거기도 위험이 있고, 칼이 있고, 그 속에도 가난이 있습니다. 핍박이 있습니다.

근데 그가운데도 즐거워합니다. 왜요? 선의 능력입니다. 선은 우리에게 최고의 행복을 줍니다. 인간의 행복은 절대 외적이지 않습니다.선할 때 행복합니다, 아무리 뭘 얻어도 뭔가 불행감이 인간에게 있어요, 아무리 쾌락을 즐겨도 인간은 불행감을 느낍니다. 그러나 선하면 불행감 자체가 없어집니다. 그렇게 놀라운걸 깨닫습니다. 세례요한이. 

이제 우리는 구원받으면 어떤일이 일어날까요? 구원 받으면 불평들이 다 사라지고. 환경 가운데 감사 밖에 안나옵니다. 인간은요 늘 불평합니다. "아내가 이걸 안했어." 불평합니다."남편이 이랬어!" 불평합니다. 아직 악인입니다. 선에 있으면 불평이 사라져버려요. 아직 악하단 얘기예요. "누가 뭘 어떻고" 선이 안돼서 그래요. 불평이 사라져요.감사 밖에 없어요. 사는게 감사하고, 먹는게 감사하고, 일하는게 감사하고, 살아있는게 감사하고 다 감사 밖에 없어요.

옛날에 다니는 교회에 전도사님 두분이 계셨는데 아주 친한 분이예요. 대학부 목사님이셨고, 타부서 목사님이셨는데, 설교 중에 이런 말합니다. 굉장히 어려울땐데, 신학교 다니실 땐데, 나이 다 되셔서 다니셔요 신학교를, 청년들이 아니예요 그분들이 학교 끝나고 라면을 먹는데 눈물이 주루룩 흘렀다고. 감사해서. 라면이 먹는게 그렇게 좋은겁니까? 그렇게 선하세요. 사람들이. 라면을 먹어도 행복하고. 

인간의 축복이 행복이 아닙니다. 인간의 잘 됨이 행복이 아닙니다. 명성이나 부귀가 행복이 아닙니다. 거기에 행복이 없어요, 행복은 선에 있습니다. 선하면 행복합니다. 세례요한이 경험자고 그러니까 이런 것에도 마다하지 않는거예요. 괜찮은거예요. 우리는 좋은것을, 복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물론 감사한 일이죠. 

하지만 때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을 강화시키기위해서 우리에게 고난을 또 줄 때가 있어요. 그때 우리는 고통을 느끼죠. " 어 이거 좀 불편한데" 하지만 괜찮아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인간의 마음이 선하다면 그거 문제가 안되는거예요. 반대로 밖에서는 으리으리한 교육관에 으리으리한 성전이라 할지라도, 선이 없으면 그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가증스러운 것입니다. 

제가 어릴 때 교회들은 다 가난했습니다. 저도 벽돌을 날라서 교회를 지었습니다. 우리가 지었어요. 초등학생 때. 그렇잖아요? 얼마나 가난하면 인부를 안써요. 우리가 짓는데도요. 옛날엔 교회들이 다 가난했어요. 그래서 목사들을 다 싫어했어요. 지금은요? 지금 다 목사되고 싶어해요. ? 교회가 돈이 생기니까, 교회가 화려해집니다. 교회가 막 떵떵거립니다. 목사가 지금은 정치가처럼 힘이 좋습니다. 이 법조계, 목사들이 잡고있어요. ? 돈이면 다 돼요. 세상은. 지금은 목사들이 굉장히 인기좋은 직업인겁니다. 이게 좋은거냐구요? 그래서 다 지옥가는겁니다. 목사들이. 그래서. 예수님 당시에도 바리세인과 서기관들은 뭐예요? 다 존경 받았어요. 그래서 지옥 가는거예요. 

오히려 에센파에 있는 사람들은 인정 받지 못하지만 천국에 들어갔겠죠. 우리가 추구할 세상은 문명이나 눈에 보이는 세계가 아닙니다. 눈에 보이지않는 세계, 우리의 마음의 변화, 죄사함, 하나님과의 교통 이게 추구할 세상인데 지금 교회가 죄사함이 있습니까? 지금 교회가 하나님과 교통이 있습니까? 

어제는 사도행전을 설교했죠  아나니아가 기도하는 가운데 "아나니아야!" 환상 가운데 나타나셔 가지고, "사울이 있는데, 사울이란 사람을 내가 앞으로 쓸거야. 이방인의 그릇으로, 문밖에 나가면 내가 알려줄거야." 라는 말씀을 듣고, 사울도 그시간에 기도가운데 그시간에, "아나니아 만날거야! . 너 눈 뜨게 해줄거야!" 듣고,"앞으로 너는 이제 이방인의 사도로 쓸거야." 예수님 말씀 듣고. 진짜로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나타나가지고. 이게 뭐예요? 교통이예요. 

이게 요즘 기독교에 있냐? 그거예요. 있으면 이단화시킵니다. 이단화. 죽여버립니다, 있으면...... 우리교회는 음성이 있죠. 환상이 있죠. 은사가 있죠. 이해 못합니다. ? 자기가 못하니까. 성경에 있는데, 성경엔 있는데 자기가 없어. 성경을 모르니까, 이단화 시켜버리는거예요. 

그렇잖아요? 방언 못하는 사람이 99명이고 하는 사람이 한명이면, 한명을 이단화 시키는거예요. 하는 사람을. 안되는 사람이 배워야 되는데, 안되는 사람이 더 악하고 힘이 좋아. 당연히 되는 사람-뭐예요?진짜를 {죽이는거예요}이게 뭐예요? 역사예요. 거짓이 이깁니다. 참을. ? 사람들은 뭐가 뭔지 몰라요. 성경 몰라요. 성경 모른데도요. 사도행전에 환상이 10번 나옵니다. 주님과의 교통이 무지 많습니다. 

직접 대화. 아나니아가 대화 했데두요, 직접 예수님과. 지금 예수님과 대화. 제가 어떤 분에게 "예수님께서 기도하는데 ----." 하면, "미친 놈!"하고 비웃습니다. 정말이예요. 어떤 사람도 "그래요?" 안그래요. "예수님 음성 들었어" 하면, 다 속으로 "저 미친놈"이렇게 여깁니다. 겉으론, "그래요?" 하지만, 이게 오늘날이예요. "예수를 만났다. 하나님 음성 들었다." 일단 이단화 시키는거예요. ? 자기가 못하니까. 교통이 없는 사람이 더 메인main이 되구요. 

지금 누가 웁니까? 교회에서. 울면 뭡니까? 문제 있어서 우는줄 알죠 .죄사함? 죄사함 받았는데 왜 우느냐는거예요. 죄사함 받았는데. 이런 정신이상자가 교수래두요. 신학대학교. 전 잊을 수없습니다. 제가 일본에서 오는데 , 다 우는데---제가 좀 늦었어요. 일본공항에 늦게 도착해서---

"! 속죄 받았는데, 아직 모르시나봐요?" 아주 깜짝 놀랐어요. 교수가 하는 말에. 성결이 뭔지 속죄가 뭔지 이해를 못해. 신학교수가. 그러니 그런 사람 밑에서 배운 사람들이 어떻게 가르치겠습니까? 지금. 그래서 교회에서 안 우는거예요. 죄사함 받았는데 왜 우느냐는거예요. 죄사함 받았는데. ! 할말이 없습니다. 

진짜 중요한 눈물과, 죄사함, 하나님과의 교통 그리고 뜻대로 사는 계명순종 이게 없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세례요한처럼 내가 구원 받으면, 변화되면 우리는 환경 초월합니다. 환경에 대해서 개의치 않습니다. 우리는 감사하게 됩니다. 우리는 기뻐하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교통하게 됩니다. 이것이 선하게 된 결과입니다

마치겠습니다.

사복음교회 박경호목사의 헬라어번역성경 마가복음 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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